## 푸른 눈의 그림자
째깍, 째깍, 째깍.
오래된 벽시계의 묵직한 추가 흔들리는 소리가 정적에 파묻힌 대저택의 서고를 가득 채웠다. 낡고 해진 고서들이 뿜어내는 쿰쿰한 냄새와 먼지 섞인 공기가 숨 막히게 나를 조여오는 듯했다. 미나, 스물세 살의 평범한 인간인 나는 이 유서 깊은 도서관에서 주말마다 고서들을 정리하고 목록화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바깥은 이미 깊은 밤의 장막이 드리워졌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검은 실루엣과 저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달빛뿐이었다.
오늘따라 서고는 유난히 차갑고 스산했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얼음장 같았고,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기운에 몇 번이나 어깨를 움츠렸다. 분명 난방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 텐데. 나는 낡은 가죽 장갑을 고쳐 끼고, 손에 들린 고색창연한 양피지 두루마리를 내려다봤다. 고대 언어로 쓰인 기묘한 문자들이 뱀처럼 얽혀 있었고, 그 끝에는 섬뜩하리만큼 정교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어딘가 일그러지고 기괴한 존재. 그림자의 경계에 서서 이쪽 세계를 응시하는 듯한.
“젠장, 대체 이게 무슨 내용이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이 그림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손가락 끝이 시큰거리는 느낌에 잠시 두루마리를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스르륵.
가늘고 낮은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마치 비단이 스치는 듯한, 혹은 늙은 나뭇가지가 벽을 긁는 듯한.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서고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혹시 고양이라도 들어왔나? 싶었지만, 이 저택에는 오래전부터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누구… 없어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겨우 속삭이듯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와 내 심장 소리뿐이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던 서늘한 기운은 마치 연기처럼 흩어진 듯했다. 착각인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다시 두루마리를 들려는 순간, 서고 저편, 가장 높고 오래된 책장 위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쾅!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비명 대신 가쁜 숨을 삼키며 그쪽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책 한 권이 떨어져 있어야 할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높은 책장의 가장 꼭대기 층에 꽂혀 있던, 고풍스러운 장정의 두꺼운 책이 허공에서 멈춰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책은 공중에 떠 있었다.
내 눈이 흔들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공중에 떠 있던 책이 천천히, 너무나도 느리게, 마치 누군가 책 제목을 읽어보라는 듯 나에게 앞면을 보여주며 회전했다.
*‘금기의 틈새에서 온 자들’*
손으로 한 자 한 자 새겨진 듯한 고색창연한 제목이 달빛 아래 희미하게 빛났다. 그리고 책은 이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비명을 참지 못하고 한 발짝 더 물러섰다. 이제는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이곳에는 나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그렇게 섬뜩하게 책을 떨어뜨릴 리가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고 문을 향해 달려갔다. 낡은 복도를 지나 현관으로, 이 저택 밖으로. 하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내 발걸음은 모래 속을 걷는 듯 느려졌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만이 귓전을 때렸다.
덜컥.
발이 멈췄다. 서고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내가 닫은 게 아니었다. 분명 열려 있었다. 내 등 뒤에서, 그곳에서.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어둠이 짙게 깔린 서가 사이로, 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는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키는 나와 비슷했지만, 비현실적으로 가늘고 길쭉한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달빛 아래에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하게 빛나는 것 같았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깊은 밤바다와 같은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마치 수천 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움과 쓸쓸함이 깃든 눈이었다.
숨이 멎었다. 아름다웠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마치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완벽한 아름다움.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본능적인 공포가 내 심장을 짓눌렀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 침묵이 서고를 지배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빛을 한 번 깜빡이자, 나는 그제야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누구…세요?”
내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입술을 아주 천천히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서고의 오래된 나무들과 공명하는 듯했고, 마치 먼 옛날의 노래처럼 아련하고 슬픈 음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너의 질문에 답할 이름이 없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느꼈다. 오래전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이 저택 아래에 잠들어 있는 틈새의 존재들에 대한 전설. 그들은 이름이 없고, 형체가 없으며, 오직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통해서만 이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다고 했다.
“도대체… 당신은 뭐예요?”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심연의 맹세처럼 차갑고 섬뜩했다.
“나는… 네가 이곳에 올 때마다 항상 너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내 눈에서 시작해 내 몸을 쓸어내렸다. 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소름이 돋았다.
“네가 이 낡은 지식들을 탐하고, 사라져가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일 때마다… 나는 너를 보았다.”
그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의 존재 자체가 공기를 압도하는 듯했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발은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듯 굳어버렸다.
“너는… 이곳에 갇힌 다른 이들과는 달랐지. 너의 생명은 너무나 강렬하고… 너의 영혼은 너무나 순수하여… 이곳의 죽은 먼지들을 뚫고 빛나는 별 같았다.”
그의 손이 천천히 내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그의 손가락은 길고 가늘었으며, 손등에는 푸른빛의 가는 핏줄이 비쳤다. 마치 차가운 대리석으로 조각된 듯 완벽했다. 본능적인 거부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이끌림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나는 그의 손길을 피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내 뺨에 닿았다. 차가웠다. 마치 얼음 조각이 닿은 듯한 싸늘함. 하지만 그 차가움은 동시에 묘한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푸른 심연 속에서 격렬한 감정이 파도쳤다. 갈망, 슬픔, 그리고… 고통.
“너의 온기… 내가 잊은 지 오래된 감각이구나.”
그의 목소리가 옅은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그의 손은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차가운 손이 닿는 순간, 나는 섬뜩한 환영을 보았다. 그의 뒤편 서가에 꽂힌 책들이 순식간에 시들고 썩어가는 모습, 낡은 나무 바닥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모습, 그리고 저 멀리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달이 시뻘건 피처럼 변하는 모습. 모든 것이 일그러지고 비명을 지르는 듯한 감각이 몇 초간 나를 덮쳤다.
환영은 이내 사라졌지만, 그 잔상은 내 마음에 깊은 공포를 심었다. 저것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저것은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뒤틀고 파괴할 수 있는, 어둠의 힘 그 자체였다. 그의 존재는 금기였고, 그의 손길은 독이었다.
“나는… 너와 닿아서는 안 되는 존재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 낮게 읊조렸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깊은 고뇌가 서렸다.
“나의 존재는 너의 세상에 균열을 일으킬 것이고, 너의 생명은 나의 어둠에 잠식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파멸이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내 뺨을 감싸고 있었다. 그의 말과 행동이 모순되었다. 그는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동시에 필사적으로 붙잡으려는 듯했다. 그의 갈망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져서, 그 섬뜩한 공포 속에서도 알 수 없는 동정이 피어났다.
“그럼… 왜 여기에 있어요? 왜… 나에게 나타났어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깊은 심연으로 변했다.
“너는… 내가 수천 년 동안 기다려온 유일한 온기였으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내 얼굴로 다가왔다.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내 눈동자 깊숙이 박혀들어왔고,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았다. 차가웠다. 죽음처럼 차가운 감촉.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서 수많은 감각이 폭발했다. 그의 쓸쓸함, 고통, 그리고 나를 향한 지독한 갈망이 전율처럼 나를 덮쳤다. 동시에 내 안의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이 키스는 파멸로의 초대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이제 나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것은… 시작이다, 미나.”
그의 목소리는 파도처럼 내 몸을 휘감았다.
“이제 너는 나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금기를… 함께 감당해야 할 테니.”
그리고 그는 옅은 그림자처럼 서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서고는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차가운 공기와 고서의 냄새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내 뺨에 남아있는 그의 차가운 온기와 입술에 맴도는 섬뜩한 감각은, 그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아니, 이제는 영원히 내 안에 자리 잡았음을 뼈저리게 일깨웠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설렘이 고개를 들었다. 나의 세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금지된 그림자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 영혼은 이미, 그 푸른 눈의 존재에게 사로잡혀 버렸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