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절대자의 유고: 묵월의 그림자

## 1화. 묵해의 부름

강무진은 낡은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스산한 골짜기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얇은 비단을 스치듯 검날 위를 지나갔다. 수십 년 세월이 응집된 검은 빛깔의 강철은 그의 손길 아래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계곡 깊숙이 박혀든 그의 초가집은 세상의 시끄러운 이야기들과는 담을 쌓은 지 오래였다. 낮에는 대나무 숲을 거닐고, 밤에는 별을 헤며 검을 닦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한때 천하를 흔들던 그림자 검객, 강무진은 이제 그저 검을 사랑하는 한 은둔자에 불과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철컥.

단정한 검날이 검집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안착하는 순간, 그의 귀에 낯선 소리가 들렸다. 돌 틈을 흐르던 작은 물줄기가 잠시 멈칫할 정도의 고요한 침입이었다.

강무진은 눈을 감았다. 감각은 이미 시각을 초월해 바람의 미세한 떨림과 땅의 진동을 읽어내고 있었다. 저만치 떨어진 숲 어귀, 찰나의 흔적. 그는 검을 고쳐 쥐지 않았다. 그저 왼손으로 낡은 탁자를 짚고 일어섰을 뿐이다. 문득 숲의 모든 생명이 숨죽이는 것을 느꼈다. 평화는 깨졌다.

이윽고, 그의 초가집 앞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을 검은 비단으로 감싼 사내. 얼굴은 깊게 눌러쓴 삿갓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허리에는 아무 무장도 없었다. 하지만 강무진은 알 수 있었다. 저 사내가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발걸음 하나하나에 숲의 기운이 휘둘렸고, 어깨를 감싼 검은 천자락은 존재하지 않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강무진 대협이 맞으시오?”

메마른 목소리였다. 돌이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에는 감정의 일말도 스며 있지 않았다.

강무진은 검을 쥔 채 사내를 응시했다. “그대가 나를 찾아온 연유는 무엇인가.”

사내는 대답 대신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펼쳐진 두루마리에는 붉은 인장 하나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글귀는 강무진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천하무림대전: 묵월의 그림자」**

그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감히 세상을 등진 자신을 찾아와 이런 글귀를 들이밀다니. 그는 수십 년간 무림의 대소사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대협께서는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스물여덟 명의 고수 중 한 분이십니다. 고(故) 절대무존, 천강(天罡)께서 남기신 유고에 따라, 묵해(墨海)의 섬, ‘검은 그림자’로 오셔야 합니다.”

절대무존, 천강. 그 이름이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천강은 분명 이십 년 전,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던 인물이었다. 무림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던 절대고수. 그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라니. 그리고 유고(遺告)라니.

강무진은 두루마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붉은 인장은 흡사 태양이 피를 토해낸 듯한 색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작게 새겨진 글귀가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천하의 운명, 검에 달리다.」**

“천강 노인이 정말 죽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의 유고가 천하의 운명을 건 대회를 열라 하였다고?” 강무진의 목소리에 감춰져 있던 비수가 언뜻 드러났다.

“그렇습니다. 이미 한 달 전, 그의 시신이 묵해의 절벽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검은 그림자 섬으로 향하는 배는 닷새 뒤, 벽해항에서 출항합니다. 대협께서는 참가 여부를 알려주시면 됩니다.”

사내는 더 이상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강무진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천하의 운명이라니. 무림의 고수들이 모여 칼을 겨눈다고 천하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그저 과거의 영광에 목마른 자들이 벌이는 덧없는 허상일 뿐.

그러나 강무진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잊었던 감각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미스터리였다. 천강이라는 인물 자체도 거대한 수수께끼였는데, 그의 죽음과 유고가 이토록 기이한 대회로 이어진다니. 무언가 거대한 음모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오랜 은둔 생활로 녹슬었던 그의 탐색 본능을 자극했다.

“알겠다. 내가 가도록 하지.”

강무진의 대답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추가 반응도 없이, 그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자국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강무진은 다시 검을 쥔 손을 내려다봤다. 손잡이에 새겨진 희미한 문양, 과거의 영광과 오명을 동시에 간직한 흔적이었다. 천강의 죽음, 천하무림대전, 그리고 ‘천하의 운명’. 모든 것이 거대한 퍼즐의 조각처럼 그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았다.

“젠장. 기어이 나를 끌어들이는군.”

그의 입에서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고요했던 은둔의 삶은 이제 끝이었다.

닷새 후.

벽해항은 평소와 다른 기운으로 가득했다. 항구의 활기찬 소음 속에서도, 그를 감지하는 강무진의 감각은 묘한 긴장감을 포착했다. 자신과 같은 검은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자들, 혹은 어딘가 비범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인물들이 부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각자의 야망, 의심, 그리고 간혹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강무진은 한적한 주점의 구석 자리에 앉아 탁주를 홀짝였다. 쓴맛이 그의 혀끝을 감돌았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아니, 대체 천강 노인이 어떻게 죽었단 말인가? 무림 역사상 최고 고수라는 이가 그리 허무하게 갈 줄이야.”
“쉿! 조심하게! 그분의 죽음은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네. 그의 시신에는 외상이 없었다지 않나.”
“외상이 없었다고? 그럼 병으로 죽은 건가?”
“아니. 기이하게도, 모든 내력이 응축되어 돌처럼 굳어 있었다는군. 마치 스스로의 힘에 짓눌려 죽은 것처럼.”

강무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력이 돌처럼 굳어 죽었다? 그것은 인위적인 힘으로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천강 정도의 고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마치 폭주한 내공이 역으로 육신을 파괴한 듯한 모습. 하지만 천강은 평생 단 한 번도 내공 폭주를 겪은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는 문득 주점 문을 들어서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그들은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도복을 입고 있었다. 가슴에는 날카로운 송곳니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흑룡문(黑龍門).’

강무진은 그들을 알아보았다. 무림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살수 집단. 그들은 어떤 무림 대회에도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그것도 천강의 유고에 따른 대회에?

그때, 그의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들어왔다. 은색 비녀로 상투를 틀고, 푸른색 도포를 입은 여인. 등에는 가늘고 긴 검이 단정하게 매달려 있었다. 강무진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설매화(雪梅花).’

빙하검문(氷河劍門)의 현 문주이자, 무림에서 손꼽히는 신세대 검객. 그녀 또한 은둔 생활을 하던 강무진이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였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이 대회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증거였다.

“모두 들으시오!”

갑자기 항구 중앙에 서 있던 검은 옷의 사내가 외쳤다. 그 사내는 닷새 전 강무진을 찾아왔던 바로 그 전령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항구의 모든 소음을 단번에 잠재웠다.

“묵해의 배가 도착했습니다. 참가자께서는 지금 즉시 승선해주십시오. 배는 해가 지는 동시에 출항할 것입니다.”

거대한 검은 돛을 단 배 한 척이 서서히 부두로 다가오고 있었다. 배의 선체는 일반적인 나무가 아닌, 짙은 흑철로 뒤덮여 있었다. 그 모습은 흡사 거대한 상어가 바다를 가르고 다가오는 듯했다. 뱃머리에는 커다란 용머리 조각이 음산한 눈으로 항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어떤 깃발도 휘날리지 않았다. 그저 검은 배,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각자의 야망과 호기심에 이끌려 하나둘씩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흑룡문의 무리도, 설매화도,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고수들도. 그들의 모습에서 강무진은 과거 자신이 보았던 무림의 그림자를 읽어냈다. 어두운 욕망, 숨겨진 재능, 그리고 폭풍 전야의 긴장감.

강무진은 탁주 잔을 내려놓았다. 쌉쌀한 탁주 맛이 혀끝에 여운을 남겼다. 그는 삿갓을 고쳐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피할 수 없었던 건가.”

그는 조용히 배를 향해 걸어갔다. 흑철로 된 거대한 배의 입구, 그 안은 마치 심연으로 향하는 동굴 같았다. 발을 들이는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배 안은 이미 수십 명의 고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를 경계하는 눈빛, 침묵 속의 무언의 대결. 강무진은 익숙한 얼굴들을 여럿 발견했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노장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들. 모두가 무림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인물들이었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무진. 당신도 여기에 올 줄은 몰랐군요.”

돌아보니 설매화가 서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강무진의 삿갓 그림자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놀라움, 그리고 경계심.

강무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었다라… 당신답지 않은 대답이군요.” 설매화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하지만 그 미소는 금세 사라지고, 그녀의 눈은 다시 차가운 얼음처럼 변했다. “이 대회가 정말 천강 노인의 유고에 따른 것이라고 믿으시나요? 저는 어딘가 섬뜩한 기운을 느낍니다. 마치 거대한 함정에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에요.”

강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설매화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그의 시선은 배의 심연 속으로 향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 모든 것은 너무나 기이했다.

쿵!

그때, 배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묵직한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배가 출항을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흑철선은 묵해의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육지의 불빛은 점점 희미해졌고,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사방은 오직 밤바다의 짙은 어둠과, 흑철선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등불 빛으로 가득했다. 배 안의 고수들은 침묵에 잠겼다. 묵직한 파도 소리만이 그들의 긴장된 침묵을 깨뜨렸다.

강무진은 갑판 위로 나섰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그의 도포자락을 휘감았다. 망망대해의 한가운데, 그는 문득 섬뜩한 예감을 느꼈다. 이 배에 탄 것은 단순히 천하의 운명을 건 대결을 펼치기 위한 고수들이 아니었다.

마치, **제물**처럼.

그의 등골을 차가운 전율이 훑고 지나갔다. 묵해의 깊은 어둠 속, 배는 정체불명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천강의 죽음보다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 순간, 그의 눈에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녹색 섬광이 포착되었다. 섬광은 어둠 속에서 마치 거대한 눈동자처럼 깜빡였다.

강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것은 섬광이 아니었다.

**섬이었다.**

검은 그림자. 바로 그곳이었다. 하지만 그 섬의 형체는 너무나도 기이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불규칙하고도 뾰족한 암벽들이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봉우리들 사이사이, 기이한 녹색 빛이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강무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저것은 절대 평범한 섬이 아니었다.

그리고 섬의 중앙, 가장 높은 봉우리 위에서, 거대한 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달이 아니었다.

**새까만 달이었다.**

마치 모든 빛을 집어삼킨 듯한, 거대한 묵색의 달. 묵월(墨月). 그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검은 달은 기이한 녹색 섬광을 내뿜는 섬의 그림자를 더욱 길게 드리웠다.

강무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대회의 진짜 목적은, 천하의 운명을 가르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죽음으로 가는 초대장**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