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칠흑 같은 바다와 같았다. 아르테미스 7호의 항해사, 강서준은 끝없이 펼쳐진 그 검은 바다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이놈의 우주는 끝도 없지. 끝이 없으니 지루하고, 지루하니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조각배처럼, 그들의 함선은 이름 없는 행성계와 소행성대를 스쳐 지나갔다. 인류가 이 미지의 심연을 탐사한 지 3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주 먼지 한 톨에 불과했다.
“서준 씨, 오늘도 여전히 낭만적이네요.”
의무 담당관 최유진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며 그의 옆에 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차분했고, 그 차분함은 아르테미스 7호의 긴장감 넘치는 생활 속에서 유일한 안식처 같은 것이었다.
“낭만은 얼어 죽을. 유진 씨 차가운 말차 같은 건데, 뭘 낭만적이라고 합니까.”
“그럼 뜨거운 말차라도 드릴까요?”
유진이 피식 웃었다. 서준은 그런 그녀를 흘깃 보고는 다시 메인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십 년간 수없이 봐 온 패턴, 예측 가능한 궤적들. 모든 것이 변함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이 미지의 공간에서 예측 불가능한 것은 곧 재앙을 의미했으니까.
그때였다. 찌르르륵, 하고 스크린 한쪽 구석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작고 미미한 소리였지만, 서준의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기엔 충분했다.
“뭐야, 이건.”
서준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손을 뻗어 해당 구역을 확대하자, 센서에 찍힌 낯선 파동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반응이었다.
“유진 씨, 함교로 캡틴이랑 박 박사 호출해줘요. 긴급 상황.”
유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신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함선 내부를 울리는 비상 호출음이 서준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
“강서준 항해사, 정확히 뭐죠?”
함교에 들어선 이하나 캡틴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그녀는 언제나 침착했지만, 그 침착함 속에는 강철 같은 단호함이 숨어 있었다. 그 옆에는 과학 담당관 박지호 박사가 흥분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이미 탐구심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현재 위치에서 0.5광초 떨어진 지점에서 미확인 에너지 반응 감지했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어떤 물질이나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파동 분석 결과… 인공적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캡틴.”
서준의 말에 이하나 캡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인공적이라고요? 이 깊은 우주에서?”
“그렇습니다. 그것도 극히 오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 수만 년 이상 된 흔적이에요.” 박지호 박사가 모니터를 확대하며 덧붙였다. “게다가 이 파동… 생체 반응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아는 어떤 생명체와도 다릅니다. 기묘해요.”
지호 박사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역력했다. 인류가 심우주 탐사를 시작한 이래, 이토록 명확한 외계 문명의 흔적을 발견한 적은 없었다. 그것도 인류의 기술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었다니.
“지호 박사, 흥분은 나중에 하고.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이하나 캡틴이 냉정하게 말했다. “서준 씨, 현재까지의 예측 궤도에 충돌 위험은 없나요?”
“직접적인 충돌 위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에너지가 불안정하게 진동하고 있어서…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음….”
이하나 캡틴은 잠시 침묵했다. 이 순간의 결정이 자신들의 운명을,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음을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다. 인류는 오랫동안 외로운 존재였다. 광활한 우주에서 홀로 지성을 가진 종족으로서, 그들은 늘 다른 존재의 흔적을 갈망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 염원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엔진 출력 최저로 낮추고, 목표 지점으로 접근합니다. 근접 탐색 모드로 전환하고, 모든 센서 최대로 가동하세요. 경계 태세 유지. 무슨 일이 있어도 함선에 직접적인 접촉은 금지합니다.”
캡틴의 지시에 따라 아르테미스 7호는 서서히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갔다. 함선 내부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서준은 조종간을 잡은 채 메인 스크린을 노려봤다. 흐릿한 점으로 시작했던 그것은 점점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그것은 별이 아니었다. 소행성도, 거대한 잔해도 아니었다.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칠흑 같은 우주의 심연 속에서,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검은 태양처럼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크기는 소형 행성만 했지만, 그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했다. 흡사 거대한 생명체의 뼈대나 장기가 기괴하게 뒤엉킨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정교한 기계 장치의 부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둘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표면 전체에 흐릿하게 깜빡이는 붉은 빛줄기였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그 빛은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하게 명멸했다. 그 빛이 깜빡일 때마다, 함선 내부의 모든 크루는 알 수 없는 진동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듯한, 혹은 뇌를 긁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었다.
“말도 안 돼….” 박지호 박사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경외심과 두려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건…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니에요. 문명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명은 들어본 적이 없어.”
“지호 박사, 스캔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하나 캡틴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스캔이… 제대로 먹히지 않습니다, 캡틴. 표면 재질은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미지의 광물과 유기체의 복합체입니다. 에너지 반응은… 설명이 불가능해요.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서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물리법칙을 무시한다고? 그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함선 내부에 알 수 없는 에너지 파동 감지. 크루들의 생체 신호에 미세한 교란이 있습니다.” 의무 담당관 최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의료용 스크린을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지호 박사, 심박수와 뇌파가… 평균치보다 높게 나옵니다.”
모두의 시선이 박지호 박사에게로 향했다. 박 박사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깊은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전 괜찮습니다. 그저… 압도돼서 그래요.” 그는 애써 웃으려 했지만, 그의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다.
“함선에 접근하는 것을 중단합니다. 현 위치에서 대기.” 이하나 캡틴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어떤 종류의 접촉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유진 씨, 모든 크루의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세요. 이상 징후 발생 시 즉시 보고.”
그 순간, 메인 스크린에 비치던 검은 구조물에서 붉은 빛이 더욱 강렬하게 깜빡였다. 마치 그들의 접근을 눈치채고 반응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빛이 가장 밝게 타오르는 순간, 함선 내부를 강타하는 강한 진동이 울렸다.
“젠장! 보조 전원 꺼졌습니다!”
“제어 시스템에 오류 발생! 메인 시스템도 불안정합니다!”
경보음이 귓청을 찢을 듯이 울렸다. 함선 내부의 조명이 깜빡거렸고, 크루들은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서준은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붙잡았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저놈이!”
그때, 박지호 박사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박 박사! 괜찮습니까?” 유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박 박사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이상하리만치 맑고 깊었다. 하지만 동시에 섬뜩하리만치 공허했다. 그의 시선은 메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이해할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기쁨이나 흥분과는 거리가 먼, 차갑고 낯선 미소였다.
“들려….” 박지호 박사가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계적이고 웅얼거리는 소리였다. “들린다… 그들의 속삭임이….”
그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서준의 귀에 정체 모를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수많은 벌레들이 한꺼번에 날갯짓하는 듯한, 불쾌하고 기분 나쁜 소리였다. 그 소리는 뇌를 파고들어 모든 사고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준은 보았다.
박지호 박사의 목덜미를 따라, 푸르스름한 핏줄이 기괴하게 솟아오르는 것을. 마치 피부 아래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지호 박사…!”
서준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박지호 박사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입이 기형적으로 찢어지며,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함교를 뒤흔들었다.
아르테미스 7호의 심장부에, 미지의 재앙이 그 첫걸음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