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소드 1: 핏빛 메아리
—
[장면 #1. 폐허가 된 도시 외곽.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빌딩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다. 거센 바람이 불며 먼지와 부서진 파편들을 휘몰아친다. 지훈은 망토처럼 너덜거리는 낡은 코트를 뒤집어쓴 채,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며 걷고 있다. 그의 오른쪽 뺨에는 깊고 길게 이어진 흉터가 핏빛으로 번진 낙인처럼 선명하다. 손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쇠파이프가 들려 있다.]
(바람 소리: 휘이잉-)
(부서진 잔해 굴러가는 소리: 드르륵…)
**지훈 (내레이션):**
숨 쉬는 것조차 사치인 세상.
모든 것은 변했다.
도시도, 사람도… 나조차도.
하지만 변하지 않은 단 하나가 있다면,
그건 내 안의 지독한 불꽃.
복수.
그 새끼를 향한 증오.
[장면 #2. 지훈의 시야에 멀리 떨어진 한 건물이 들어온다. 낡았지만 다른 건물들보다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유리창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깜빡이는 듯하다. 지훈의 눈이 매섭게 빛난다.]
**지훈 (내레이션):**
그 불빛이 너라면.
기필코 찾아낼 거다.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좀비처럼,
아니, 그 어떤 짐승보다 끈질기게.
[장면 #3. 지훈이 건물 안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한다. 내부에는 곰팡이 냄새와 썩은 내, 그리고 희미한 금속성 냄새가 섞여 있다. 복도는 어둡고 조용하다. 지훈은 쇠파이프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발걸음을 옮긴다.]
(발걸음 소리: 사박, 사박…)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똑, 똑…)
[장면 #4. 복도 끝에 다다르자 낡은 문이 보인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인기척이 느껴진다. 지훈은 벽에 바싹 붙어 몸을 숨기고 귀를 기울인다.]
(희미한 말소리: 웅성웅성…)
(물건 옮기는 소리: 덜그럭…)
**지훈 (내레이션):**
드디어…
이 지옥에서 감히 안식을 누리려는 놈들이 있군.
아니, 어쩌면 그 새끼일지도 몰라.
그 악마 같은 놈.
[장면 #5. 지훈의 눈앞에 과거의 한 순간이 플래시백처럼 스쳐 지나간다. 때는 종말이 시작되던 혼돈의 초기. 허물어져 가는 마트 안에서 지훈과 민준이 좀비 떼에 쫓기고 있다. 둘 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고, 민준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다.]
(총성 소리: 탕! 탕!)
(좀비들의 괴성: 끄어어어어-!)
**민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훈아! 더는 못 가겠어! 이대로는 죽어!
**지훈:** (이를 악물고 민준의 팔을 잡아끌며)
정신 차려! 민준아! 저쪽 비상구!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장면 #6. 둘은 필사적으로 뛰어가 비상구 문을 향해 돌진한다. 문이 열리는 순간,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복도 가득 밀려오는 것이 보인다. 절망적인 상황.]
(문 열리는 소리: 끼이이익-)
(좀비들의 울부짖음: 으아아아아아-!)
**민준:** (눈이 크게 뜨이며)
세상에… 저건… 말도 안 돼!
[장면 #7. 지훈이 민준을 보호하며 앞을 가로막는다. 쇠파이프를 휘둘러 좀비들을 막아서지만 역부족이다. 한 마리가 지훈의 어깨를 물려고 달려든다. 민준의 눈빛이 흔들린다.]
**지훈:** (이를 악물고)
민준아! 네가 먼저 나가! 내가 막을게! 빨리!
[장면 #8. 민준은 지훈의 뒤에서 망설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빛에 섬뜩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살기 위한 본능적인 악마의 속삭임.]
**민준:** (작게 중얼거리듯)
…미안해, 지훈아.
[장면 #9. 민준이 갑자기 지훈의 등 뒤를 있는 힘껏 밀친다. 지훈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좀비 떼 한가운데로 넘어진다. 동시에 민준은 비상구 문을 쾅 닫아 잠근다. 끔찍한 쇳소리가 울린다.]
(강하게 밀치는 소리: 퍽!)
(지훈 넘어지는 소리: 쿵!)
(문 닫히는 소리: 콰앙-!)
(빗장 걸리는 소리: 쨍그랑! 짤그락!)
**지훈:** (절규하며)
민준아!!!! 뭐 하는 거야!!!!
[장면 #10. 지훈이 좀비들에게 짓밟히고 물어뜯기기 직전, 문 틈새로 민준의 얼굴이 비친다. 민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죄책감 대신 안도감과 섬뜩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이내 그의 모습은 사라진다. 지훈의 귓가에는 민준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친다.]
**민준 (환청):**
미안해, 지훈아.
(좀비들의 뜯는 소리: 즈적, 즈적-)
(지훈의 고통스러운 신음: 끄으으으으…)
[장면 #11. 현재. 지훈은 다시 폐허가 된 건물 복도에 몸을 숨긴 채 굳게 닫힌 문을 노려보고 있다. 그의 뺨 위 흉터가 더욱 핏빛으로 짙어진다.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고, 온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지훈 (내레이션):**
그날, 너는 나를 버리고 살았다.
내 살과 피를 디딤돌 삼아.
나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어 나왔다.
오직 너에게,
그 죗값을 물리기 위해.
[장면 #12. 지훈이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고 돌린다. 잠겨 있지 않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쇠파이프를 고쳐 잡는다.]
**지훈 (내레이션):**
준비해라, 민준아.
네가 내게 남긴 악몽만큼,
아니, 그보다 더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
[장면 #13. 지훈이 문을 천천히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안은 넓은 창고처럼 보였고, 몇몇 사람들이 낡은 담요를 두르고 앉아 모닥불을 쬐고 있다. 그들 한가운데, 제법 멀쩡한 옷을 입고 다른 생존자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듯 이야기하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환하게 웃고 있지만, 지훈의 눈에는 그저 역겨운 위선으로만 비치는 얼굴.]
**생존자 1:** (들뜬 목소리로)
대장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남았죠! 정말 영웅이세요!
**민준:** (푸근하게 웃으며)
무슨 영웅은. 다들 함께 노력한 덕분이지. 우리는 동료니까.
[장면 #14. 지훈의 시선이 민준에게 고정된다. 민준은 아직 지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과거의 비겁함 따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지도자’의 가면이 씌워져 있다. 지훈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떨린다. 분노로 인해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감각.]
**지훈 (내레이션):**
동료?
그 더러운 입으로 감히 ‘동료’라는 말을 내뱉어?
네가 나를 좀비 떼 한가운데 버리고 도망쳤을 때,
그때 우리의 ‘동료’라는 말은 재가 되었다.
이제, 그 재를 네게 돌려줄 시간이다.
[장면 #15. 민준이 고개를 돌리다 문가에 서 있는 지훈과 눈이 마주친다. 민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경악과 공포로 물든다. 그의 눈이 크게 뜨인다. 지훈은 그를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어떤 좀비의 으르렁거림보다 섬뜩하다.]
**지훈:**
오랜만이다, 친구.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