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깨어진 거울의 파편
숨을 들이쉬자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창문 없는 좁은 방, 낡은 합판으로 얼기설기 짜인 벽은 시간이 빚어낸 얼룩과 습기로 뒤덮여 있었다. 천장에서 똑, 똑,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이준호는 삐걱이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앞의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그의 눈은 깊게 패여 있었고, 턱선은 날카롭게 깎여 있었다. 엉성하게 자란 수염은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더했고, 한때 빛나던 총기는 오랜 어둠 속에 갇혀 희미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제 이름을 들은 게 언제였던가. 이곳에서 그는 그저 ‘방 302호’였다.
모니터 속에는 화려한 조명 아래 선 한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 강민준. 대기업 ‘제네시스 코퍼레이션’의 최연소 이사. 혁신적인 인공지능 프로젝트 ‘오르페우스’의 성공을 이끌며 업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인물. 화면 속 민준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기자들은 그의 성공담에 열광했고,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확고했다.
그 확고한 눈빛이, 한때는 이준호 자신을 향해 있었음을 기억했다.
* * *
“준호야, 우리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어설프게 기른 수염과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한 강민준이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때는 7년 전, 낡은 원룸 한구석에서 빛바랜 벽지에 빼곡하게 적힌 수식들을 보며 이준호는 웃었다.
“우리가 못 할 게 뭐 있냐? 이걸 해내면, 세상이 바뀔 거야. 믿어봐, 민준아.”
그들은 스물여섯,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천재들이었다. 이준호는 이론을 설계했고, 강민준은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오르페우스’ 프로젝트는 그들의 꿈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전례 없는 인공지능. 밤샘 작업은 일상이었고,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로 버티는 나날이었다.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 실패하면 함께 좌절했다. 성공하면 얼싸안고 웃었다.
특히, 민준은 준호를 맹목적으로 따랐다.
“너 아니었으면 난 여기까지 못 왔다, 준호야. 네 아이디어는 언제나 한 발 앞서 있어.”
그렇게 말하며 민준은 언제나 준호에게 가장 먼저 결과를 공유했고, 가장 먼저 의견을 구했다. 준호는 민준의 성실함과 재능을 사랑했다. 그들은 단순히 동료가 아니었다. 가족보다 더 깊은, 영혼의 동반자였다.
그 믿음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프로젝트의 막바지, 투자 유치를 위한 대규모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밤이었다. 준호는 마지막 디버깅에 매달려 있었다. 민준은 일찍 퇴근하겠다며 자리를 비웠지만, 준호는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라도 쉬게 해주고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잠시 눈을 붙인 준호를 깨운 것은 비상벨 소리였다. 연구실 서버가 해킹당했고, 핵심 알고리즘이 유출되었다는 비보였다. 보안 시스템은 완벽했다. 외부 해킹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준호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익명의 메일 계정, 해외 서버로 알고리즘을 전송한 기록. 모든 증거는 준호를 가리켰다. 그는 순식간에 내부자로 몰렸다.
“이준호 씨, 당신이 밤사이 서버에 접속한 기록이 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예요.”
믿을 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였다. 민준이 침통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준호의 눈에는 미세한 떨림이 보였다.
“준호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준호는 그 절망 뒤에 감춰진 희열을 보았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너무나도 완벽한 연기였다.
“민준아, 이건 함정이야! 내가 아니야! 제발, 날 믿어줘!”
준호는 애원했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 영혼의 동반자라 믿었던 민준에게. 그러나 민준의 대답은 차가웠다.
“증거가 너무 명확해, 준호야. 난… 더 이상 널 믿을 수 없어.”
그 한마디가 준호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민준의 눈빛에서 읽어낸 것은 배신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이 그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모든 자료, 모든 증거, 모든 해킹은 그가 설계한 것이었다. 민준은 준호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그의 이름을 더럽혀, 모든 공을 가로채려 했다. 준호의 삶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제네시스 코퍼레이션은 이준호 씨의 모든 책임 회피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며, 프로젝트 오르페우스는 강민준 이사의 지휘 아래 차질 없이 진행될 것입니다.”
뉴스 속보가 준호를 조롱했다. 그의 이름은 ‘천재 개발자’에서 ‘파렴치한 산업 스파이’로 바뀌어 있었다. 민준은 그의 아이디어 위에서 찬란하게 빛났고, 준호는 차가운 감옥에서 썩어갔다.
* * *
차가운 시멘트 벽에 등을 기댄 채, 이준호는 굳게 다문 입술 새로 피 맛을 느꼈다. 찢어진 입술은 그의 고통을 대변하는 듯했다. 감옥에서의 3년은 그를 폐허로 만들었다. 육체는 마르고 병들었지만, 정신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갈렸다. 분노는 그의 심장을 불태웠고, 복수심은 그의 모든 세포를 잠식했다.
그는 민준이 한 모든 일을 꿰뚫어 보았다. 자신의 연구실 서버에 백도어를 심고, 자신의 계정으로 접속해 정보를 유출한 뒤, 모든 증거를 조작하여 준호를 범인으로 만들었다. 그 모든 과정은 치밀했고, 완벽했다. 단 하나의 예외만 제외하고.
강민준이 너무나도 확신했던 것은, 이준호가 그 배신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혹은, 설령 깨닫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준호는 깨달았고, 이제는 할 수 있었다.
출소 후, 그는 이름도 바꾸고 흔적을 지웠다. 낡은 컴퓨터 한 대와 끊임없이 돌아가는 생각만이 그의 전부였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힌 존재. 그가 원하는 바였다. 그는 그림자처럼 숨어들어, 민준의 모든 행적을 추적했다. 그의 사업, 그의 인간관계, 그의 습관, 그의 약점. 모든 것을.
모니터 속 강민준의 얼굴은 여전히 자신감으로 빛났다. 제네시스 코퍼레이션은 ‘오르페우스’를 통해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민준은 그 성공의 정점에 서 있었다.
“……좋은 날은 이제 끝났어, 민준아.”
이준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움직였다. 그의 눈동자에 희미한 불꽃이 타올랐다. 3년의 복역과 4년의 숨죽인 준비. 7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
그의 눈앞에는 복잡한 코딩 창이 열려 있었다. 수많은 숫자와 기호들이 얽히고설켜 하나의 거대한 거미줄을 형성했다. 그는 그 거미줄의 한가운데에, 작은 파동을 만들어 넣었다. 너무나도 미세하고 은밀해서,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파동이었다.
그 파동은 마치 깨어진 거울의 파편처럼, 민준이 쌓아 올린 견고한 성에 균열을 내기 시작할 터였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낼 파멸의 시작이었다.
이준호는 모니터 속 민준의 환한 미소를 응시하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야.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그 ‘오르페우스’가, 네 모든 걸 집어삼킬 거야.”
그의 손가락이 엔터 키를 눌렀다. 어둠 속,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얼굴을 섬뜩하게 비췄다. 오래도록 잊혔던, 차가운 복수의 서곡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