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별빛 뜨락의 창문을 집어삼키는 시간, 지아는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카페 문에 ‘CLOSE’ 팻말을 걸었다. 짤랑, 하고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지만, 그 소리는 낮의 활기찬 재잘거림과는 달리 아득한 고독을 머금고 있었다. 향긋한 커피 내음과 갓 구운 스콘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공간에서 지아는 습관처럼 찻잔을 닦았다.
손길은 분주했지만, 마음은 이미 저 너머의 숲을 향해 있었다. 어둠 속에 잠긴 숲은 낮과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지아의 시야를 압도했다. 그 숲의 가장 깊은 곳, 지아가 발을 들일 수 없는 그곳에 이솔이 있었다. 이솔이 떠올라 지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지만, 동시에 불안감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스르륵…**
창문 밖에 스치는 그림자에 지아는 고개를 들었다.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곧이어 익숙한 존재감이 어둠을 뚫고 카페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솔이었다. 완벽한 인간의 형상이라기보다는, 숲의 안개와 달빛이 빚어낸 환영에 가까운 모습. 이솔의 형체는 흐릿하게 흔들리며, 마치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만이 유일하게 현실의 단단함을 간직한 듯 빛났다.
“왔네요.”
지아는 저도 모르게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이솔의 존재는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늦었어. 당신의 불빛이 꺼질까 봐.”
이솔은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옅고 희미했다. 마치 속삭임이 바람에 실려 멀리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지아는 그의 모습이 평소보다도 더 창백해 보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푸른빛이 감도는 창백함.
“차 한 잔 마셔요.”
지아는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두 잔 따랐다. 한 잔은 이솔 앞에, 다른 한 잔은 자신의 앞에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바라보는 이솔의 눈빛에 찰나의 피로감이 스쳤다.
“숲이… 오늘 많이 시끄러웠어.”
이솔이 중얼거렸다. 손을 뻗어 찻잔을 감싸 쥐었지만, 그의 손은 투명하게 비치는 듯 불안정했다. 지아는 그 손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차가웠다. 평소보다 훨씬.
“괜찮아요? 요즘… 자주 기침하는 것 같던데.”
지아의 시선은 불안하게 떨리는 이솔의 어깨에 머물렀다. 며칠 전부터 이솔은 지아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옅은 기침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환절기 감기 같은 것이려니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솔의 몸은 더 투명해지는 듯한 기묘한 현상을 보였다.
“괜찮아, 지아.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야.”
이솔은 고개를 저었지만, 그의 눈빛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짙은 에메랄드빛 눈동자 속에는 감출 수 없는 고통과 피로가 어려 있었다. 찰나, 이솔의 몸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치 그의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작은 조각으로 부서졌다가 다시 모이는 듯한 섬뜩한 움직임이었다.
“이솔… 혹시 나 때문에…”
지아는 목소리를 떨며 물었다. 그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금지된 것이었다. 인간과 숲의 정령. 두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만남은 필연적으로 균열을 불러왔다.
“아니야, 지아. 당신은… 빛이야.”
이솔은 흐릿한 손을 뻗어 지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손끝이 닿는 곳마다 미세한 냉기가 퍼졌지만, 그 냉기는 역설적으로 지아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다.
**사르륵…**
이솔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얇고 마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지아의 카페 정원에서는 볼 수 없는, 오래되고 신비로운 문양이 새겨진 잎이었다. 지아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자, 잎은 마치 생명을 잃은 것처럼 순식간에 푸스스, 하고 부서져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건…?”
지아가 놀란 눈으로 이솔을 올려다보았다. 이솔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숲이… 내게 경고하고 있어. 우리가… 함께 머무는 것을 멈추라고.”
이솔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어떤 체념이 배어 있었다.
**팟! 팟! 팟!**
그 순간, 카페의 전등들이 일제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처럼 빠르게 명멸하더니, 이내 처참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꺼져 버렸다. 카페는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고, 유일한 빛은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뿐이었다.
**크르르릉…**
창밖의 숲에서는 낮게 깔린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거대한 존재가 숨을 쉬는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이 느껴지는 소리였다. 숲의 나무들이 거칠게 흔들리고, 그림자들이 요동쳤다. 마치 숲 자체가 분노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솔!”
지아는 본능적으로 이솔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닿기도 전에, 이솔의 형체가 다시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단순히 흐릿해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의 몸은 마치 물감처럼 녹아내리며, 주변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지아…”
이솔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지아를 응시했다. 그 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고통스러운 사랑이 가득했다. 그의 몸은 이제 완전히 투명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 당신 곁에… 오래 머무르기엔…”
마지막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솔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카페를 채우던 그의 존재감마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지아는 텅 빈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차갑고 비어있는 공간에서,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안 돼… 이솔…!”
지아의 목소리가 어둠 속을 헤매다 이내 쓸쓸하게 사그라들었다. 창밖의 숲은 더욱 거칠게 포효하는 듯했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지아는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차가운 빈 공간을 응시했다. 금지된 사랑의 대가가 이토록 잔혹할 줄은… 그녀는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