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젠장.”

현우는 식탁 위에 놓인 컵을 노려봤다. 분명히 어제 저녁에 물 마시고 바로 옆에 뒀던 것이, 지금은 식탁 중앙으로 두 뼘 정도 옮겨져 있었다. 딱히 누가 만질 일도 없는데. 그는 피곤에 절어 있었다. 어젯밤도 꼬박 새다시피 일했고, 아침에 잠깐 눈을 붙였다 깨어난 참이었다. 하도 잠을 못 자서 헛것이 보이나 싶었다.

“내가 미쳤나.”

그는 중얼거리며 컵을 다시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씻지 않은 컵 안에는 물기가 말라붙은 흔적이 희미했다. 어쩌면 밤중에 무의식적으로 물을 마셨을 수도 있지. 피곤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두 시간 뒤, 거실에 걸린 시계가 다섯 분 늦게 가는 것을 발견했을 때, 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벽시계는 스마트폰 시계와 정확히 동기화되어 움직이도록 해둔 터였다. 건전지가 다 됐나? 그는 시계를 풀어 건전지를 갈았지만, 시계는 여전히 다섯 분 느렸다. 고장 났나 싶어 다시 건전지를 빼서 책상에 올려놓았다. 째깍, 째깍, 침묵 속에서 시계추가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환장하겠네.”

밤이 깊어질수록 아파트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현우는 한참을 침대에 누워 뒤척였다. 이명처럼 맴도는 웅웅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환청인가? 아니, 분명히 들렸다. 아주 희미하고 낮게, 오래된 파이프 속에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혹은 멀리 떨어진 지하철 소리처럼. 그러나 이곳은 아파트 12층, 지하철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뭐야, 이거.”

그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모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환기구에서 들어오는 소리인가 싶어 귀를 대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거실 한가운데, 난방이 잘 되는 곳인데도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마치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구… 있어?”

떨리는 목소리가 빈 공간을 맴돌다 사라졌다. 당연히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등 뒤에서 ‘삐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닫혀 있던 베란다 문이, 아주 느리게, 그리고 작게, 스르르 열리고 있었다.

“야!”

그는 소리쳤지만, 문은 멈추지 않았다. 삐걱이는 소리는 마치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잠금장치까지 내려져 있던 문이었다. 현우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문이 완전히 열리는 것을 지켜봤다. 아무도 건드린 적 없는데. 창문도 닫혀 있는데. 어떻게?

두려움이 목을 졸랐다. 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아 도는 순간, 그의 시야 한구석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그가 아끼는 장식용 조각상이었다. 분명히 침대 옆 협탁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낙하’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천천히 미끄러뜨려진 것처럼, 협탁 가장자리에서 거실 바닥으로 옮겨져 있는 상태였다. 산산조각 난 채로.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현우는 넋을 잃고 조각상을 바라봤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소중한 기념품이었다. 부서진 조각상을 보는 순간, 그의 이성도 함께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액정 화면이, 갑자기 번쩍이며 켜졌다.
화면은 지지직거리는 잡음을 토해냈다.
채널은 연결되지 않은 채, 검은 화면에 하얀 점들이 폭풍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현우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화면 한가운데, 아주 천천히, 검은 글자들이 한 줄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화면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것처럼.

**‘돌아와.’**

글자는 단순했지만, 그 압도적인 무게는 현우의 심장을 짓눌렀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눈을 비볐다. 헛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명확하게, 화면에 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두 번째 줄이 나타나자,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입을 틀어막고 겨우 소리를 삼켰다. 차가운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누구야… 대체… 누가 장난치는 거야…?”

목소리는 쉰 듯 갈라져 나왔다. 그의 시선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글자들 사이의 잡음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마치 수억 년 전부터 존재했던 듯한, 인간의 입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불쾌한 파열음과 낮은 으르렁거림이 뒤섞인 소리.

그 소리는 현우의 뇌를 직접 긁어내는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바닥이, 벽이, 천장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글자가 아니었다.
희미한 그림자였다.
알 수 없는 형태였다.
인간의 눈으로 인지하기에는 너무나도 기괴하고, 뒤틀리고, 비현실적인.
그것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비명과 절규가 응축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아니었다.
어둠이 뭉쳐진 것이었다.
그것은 화면에서 서서히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며, 검은 형체가 액정 화면을 뚫고 나오려는 듯 일렁였다.

“제발… 그만…!”

현우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그 형체는, 이미 그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그것은 공포를 넘어선,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때, 화면 속의 뒤틀린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화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아니, 착시가 아니었다.
정말로, 아파트 거실의 한쪽 벽면이, 아니, 거실 공간 자체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벽에 걸린 시계가 사라졌다. 소파가 희미해졌다. 그의 눈앞에서, 현실의 풍경이 마치 물감이 번지듯 희미해지며 뒤틀린 어둠에 먹히고 있었다.
세상이 지워지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현우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을 감았다.
아니, 감을 수 없었다.
눈꺼풀조차 통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다시 그 불쾌하고 알 수 없는 언어가 속삭였다.
이번에는 더욱 선명하게,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처럼.
그 소리는 그에게 명령하는 것 같았다.
어떤 알 수 없는 장소로,
그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으로,
그의 존재 자체가 속박된 곳으로.

현우는 비명을 지르려 애썼다.
하지만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거친 숨소리만이 폐부를 찢을 듯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의 눈앞에서 아파트의 모든 것이 사라져 갔다.
자신이 서 있는 바닥조차, 아래로 꺼지는 듯한 아찔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파트 건물이 통째로 비명을 지르는 듯한, 으스러지는 소리.
그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이 우주의 것이 아니었다.
현우는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검은 액정 화면 깊숙한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희미한,
잔상이었다.
그것은 그를 향해,
보이지 않는 손을 뻗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