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어둠의 수확

눅눅한 지하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흙과 곰팡이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섞인 비릿한 철분 내음이 코를 찔렀다. 강이는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닦아내며, 횃불이 흔들리는 대로 그림자가 일렁이는 좁은 통로를 응시했다. 제국 병사들의 수색망을 피해 숨어든 이곳은, 과거 도시를 지탱하던 거대한 지하수로의 일부였다. 이제는 망각되어 버린 어둠 속에서, 반란군의 잔존 세력은 마지막 희망을 움켜쥐고 있었다.

“강이, 더 얼마나 가야 하는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강이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의 얼굴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눈은 공포와 피로로 흐릿했다. 겨우 열 살 남짓한 저 작은 아이의 어깨에도 제국에 대한 저항의 무게가 얹혀 있었다. 제국은 아이의 부모를 반란군 혐의로 끌고 가 며칠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아이에게 남은 건 이빨을 악물게 하는 증오와 복수심뿐이었다.

강이는 아이에게 애써 미소 지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는 무겁게 굳어버렸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낡은 영감님께서 말씀하신 비밀 통로가 곧 나올 거야.”

“그 영감, 길이나 제대로 아는 건지 모르겠어.”

아이의 퉁명스러운 말에 앞서 걷던 낡은 영감이 멈칫했다.

“쯧쯧, 이놈의 애송이. 내가 이 도시 지하를 눈 감고도 헤매던 때, 너희 부모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게다.”

낡은 영감은 허리를 펴며 으스댔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할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그는 제국이 이 도시를 건설할 때부터 노역에 시달린 노인 중 한 명이었다. 제국의 잔혹함을 뼈저리게 아는 이들이 모여 만든 것이 바로 이 이름 없는 반란군이었다.

그들은 이틀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도망쳤다. 제국 병사들의 추격은 끈질겼고, 때로는 초인적이었다. 단순히 병사의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놈들은 어딘가 ‘다른’ 힘을 쓰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 같았고, 절규가 울려 퍼지는 밤이면 그들의 그림자마저 생채기를 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갑자기 낡은 영감이 멈춰 섰다. 횃불을 높이 들어 올린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대체….”

강이와 아이는 영감의 시선을 따라갔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것은 거대한 지하 공동이었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들어서도 남을 만큼 넓은 공간. 그리고 그 안에는 기괴한 형태의 구조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쇠사슬에 매달린 거대한 돌덩이들. 언뜻 보면 평범한 바위 같았지만, 그 표면은 마치 살갗처럼 울퉁불퉁했고, 희미한 붉은색 맥박이 뛰는 듯했다. 돌덩이 밑에는 얕은 수로가 나 있었고, 그 수로를 따라 끈적하고 검붉은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역겨운 피 냄새와 썩은 내음이 섞인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게… 대체 뭐야…?”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본능적인 공포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이것은 단순한 하수도 시설이 아니었다. 제국은 이곳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때, 공동 안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륵… 스르륵…*

무언가가 돌덩이들 사이를 기어 다니는 소리였다. 강이는 재빨리 횃불을 내리고 몸을 숙였다. 아이와 낡은 영감도 그를 따라 벽에 바싹 붙었다.

어둠 속에서 형체가 드러났다. 처음에는 그림자가 움직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사람의 형체를 어렴풋이 띠고 있었지만, 온몸이 검은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팔다리, 움푹 들어간 눈구멍에서 붉은 빛이 희미하게 번득였다.

*수확자.*

강이의 머릿속에 섬뜩한 단어가 떠올랐다. 제국의 병사들이 아닌, 제국의 ‘어둠’을 지키는 존재들. 반란군 사이에서만 전해지던 소문 속의 괴물이었다. 인간의 절망과 고통을 먹고 자란다는, 그림자 속의 악마.

두 마리, 아니 세 마리. 그림자 괴물들이 공동을 서서히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소리 없이 유려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주는 위압감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한 수확자가 가장 큰 돌덩이 앞에 멈춰 섰다. 검은 팔을 뻗자 돌덩이의 표면이 꿈틀거렸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이 뛰는 것처럼 격렬하게 박동하며, 돌덩이 사이에서 붉은 액체가 새어 나왔다. 수확자는 그 액체를 움켜쥐고 입처럼 벌어진 형체 없는 얼굴로 가져갔다. 액체가 그림자 괴물 안으로 흡수되자, 괴물의 몸체가 더욱 진해지는 듯했다.

“젠장….” 강이는 이를 악물었다. “이곳이 바로 그놈들이 힘을 얻는 곳인가.”

낡은 영감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돌덩이… 저건 단순히 바위가 아니야. 저건… 놈들이 수확하는 ‘생명’을 응축시킨 거야. 제국의 백성들의 고통과 생명력을 저 안에 가두고… 그것을 먹이로 삼아 저 괴물들을 키우는 거지.”

그의 말에 강이의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제국은 단순히 백성을 착취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영혼까지 수확하여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끔찍한 부패가 있을까.

그때였다. 아이가 숨을 고르다 낸 작은 신음 소리가 고요한 공동에 울려 퍼졌다.

*휘익!*

수확자 중 한 마리가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빛이 정확히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을 꿰뚫었다.

“들켰다!” 강이가 외쳤다. “도망쳐!”

그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낡은 영감도 급히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 뛰었다. 하지만 수확자들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듯, 그들은 순식간에 강이의 뒤를 쫓아왔다.

*촤악!*

강이의 등 뒤로 날카로운 그림자 손톱이 스쳐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그의 낡은 옷깃이 찢겨 나갔다. 찢어진 틈새로 보이는 피부가 얼얼했다. 그림자에는 분명 물리적인 힘이 있었다.

“이쪽이야! 낡은 영감!”

강이는 아이를 안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좁은 통로로 들어서자 수확자들의 거대한 몸체가 통로를 거의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그림자를 좁혀 들어왔다.

“망할 놈들!” 낡은 영감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통로가 끝나는 곳, 낡은 영감이 가리킨 벽에 희미하게 돌로 만든 문이 보였다. 그들의 목표였다.

“서둘러! 저 문만 열면 돼!”

하지만 수확자들은 이미 강이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끈적한 어둠의 기운이 그의 목덜미를 덮쳐왔다. 아이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강이는 아이를 앞으로 밀어내며 소리쳤다. “아이 먼저 보내! 영감님, 아이 데리고 먼저 가세요!”

그리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횃불을 냅다 뒤로 던졌다. 활활 타오르던 횃불은 그림자 괴물의 몸에 닿자마자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꺼져 버렸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괴물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했다. 어둠의 존재들에게 불빛은 본능적인 위협이었던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이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녹슨 곡괭이를 뽑아 들었다. 광부 시절부터 그의 손발이 되어주던 유일한 무기였다.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들!”

강이는 온 힘을 다해 가장 앞선 수확자의 그림자 몸체를 내리찍었다.

*콰직!*

마치 단단한 뼈를 부수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수확자의 그림자 몸체가 일그러졌고, 검붉은 액체가 튀어 올랐다. 괴물은 비틀거리며 잠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곧이어 원래의 형체로 돌아왔고, 붉은 눈빛은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젠장… 죽일 수가 없어…!”

강이는 절망했다. 곡괭이는 분명 치명타를 입혔지만, 괴물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다가왔다. 그때, 낡은 영감의 외침이 들렸다.

“강이! 문이 열렸다! 빨리 와!”

강이는 뒤를 돌아봤다. 아이와 낡은 영감이 막 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남은 두 수확자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강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도망쳐!”

그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수확자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눈빛은 필사적이었지만, 더 이상 공포는 없었다. 오직 분노와 결의만이 타올랐다.

“이 더러운 괴물들아! 네놈들이 백성들의 고통으로 만들어졌다면, 내가 그 고통을 다시 돌려주마!”

강이는 곡괭이를 휘둘렀다. 그의 공격은 더욱 거칠고 무모해졌다. 수확자들의 날카로운 그림자 손톱이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가며 살을 찢었다. 팔과 다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국의 어둠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그의 분노 어린 저항이 잠시나마 수확자들의 진격을 멈추게 한 사이, 아이와 낡은 영감은 간신히 돌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낡은 영감은 문을 닫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강이! 어서 와! 강이!”

강이는 비틀거렸다.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두 수확자가 동시에 그의 심장을 향해 그림자 손톱을 겨냥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덮쳐왔다.

그 순간, 강이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자신을 희생할 결심을 굳혔다. 그의 눈은 낡은 영감이 닫으려 애쓰는 돌문을 향했다. 그 문 너머에는, 아직 싸울 의지를 가진 동지들이 있었다. 제국의 어둠에 굴하지 않고, 언젠가 빛을 되찾을 이들이.

바로 그때, 닫히기 직전의 돌문 틈새로 아이의 작은 손이 튀어나왔다.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누더기가 된 자신의 인형을 강이에게 던졌다. 낡은 천 조각으로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인형이었다.

“아저씨! 꼭 돌아와야 해…!”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그의 심장을 향해 뻗어오던 그림자 손톱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강이의 손은 본능적으로 인형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인형에 묻어있던 아이의 손때와, 작은 온기가 그의 심장에 닿았다.

*살아야 한다.*

죽음의 공포가 아닌, 생존의 강렬한 의지가 그의 핏속을 뜨겁게 달궜다.
강이는 마지막 발악으로 몸을 돌렸다. 그림자 손톱이 그의 옆구리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그 고통을 악으로 삼아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마치 튕겨 나가듯, 돌문이 닫히기 직전의 좁은 틈새로 몸을 던졌다.

*쾅!*

거대한 돌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닫혔다. 강이는 겨우 몸을 추스를 틈도 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숨을 헐떡이며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강이… 괜찮아?”

낡은 영감과 아이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부축했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강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음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돌문 너머에서 수확자들이 문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벽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젠장… 저놈들이 저 문도 부술 수 있을까….” 낡은 영감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이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 잠긴 새로운 통로를 향했다. 이 통로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제국의 진짜 얼굴을 보았다. 백성들의 삶을 ‘수확’하여 자신들의 괴물을 키우는 끔찍한 제국.

강이는 아이의 손에 들린 인형을 바라봤다. 작은 인형에서 풍기는 희미한 온기.
이 작은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문 너머의 짐승 같은 소리는 점점 더 거세졌다. 쾅! 쾅! 마치 돌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기세였다.
강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동자에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투지가 번뜩였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어.”
그는 중얼거렸다.
“놈들이 아무리 거대한 어둠을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그의 시선은 횃불이 비추는 낡은 통로 저편으로 향했다. 통로 끝은 여전히 깊고 검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제국의 지하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어떤 끔찍한 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어둠 속에서, 반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고작 녹슨 곡괭이와 낡은 인형, 그리고 꺾이지 않는 투지뿐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제국의 심장을 꿰뚫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