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안은 낡은 천막 아래, 습하고 눅진 공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코를 찌르는 썩은 생선 냄새와 축축한 흙냄새가 섞여 구역질이 났지만, 익숙했다. 이곳은 수도 ‘카이론’의 가장 낮은 곳, ‘그늘진 아랫마을’이라 불리는 빈민가였다.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 태양이 제 힘을 쓰지 못하는 곳.
제국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빛, 희망, 그리고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예안의 손은 하루 종일 묵묵히 뼈와 살을 발라내는 데 익숙했다. 그의 직업은 생선 손질꾼. 어쩌면 제국이 부여한 가장 천한 직업 중 하나일 것이다. 핏물과 비린내가 배어버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예안은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을 꿰뚫을 듯 솟아 있는 황금빛 첨탑을 응시했다. 제국 황궁. 빛나는 황금으로 치장된 그곳은 이곳 아랫마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굶주림이나 추위가 무엇인지 알까. 고작 생선 한 조각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비참함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문득, 시장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삽시간에 싸늘한 침묵으로 변했다. 예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이 나타난 것이다. 제국의 감시병들. 검은 제복을 입고, 억압의 상징인 제국 문장이 박힌 흉갑을 두른 채, 길고 날카로운 창을 든 병사들.
그들의 발걸음은 절도 있었고, 시선은 차가웠다. 마치 독수리가 먹잇감을 찾듯, 군중 속을 훑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물건을 정리하는 척하며 그들의 시선을 피하려 애썼다. 공포는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이 작은 시장에서 숨 쉬는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했다.
예안은 손에 든 칼을 꽉 쥐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감각이 정신을 붙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손만 움직였다. 척, 척, 뼈와 살을 가르는 소리가 이 정적 속에서 너무나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병사들은 한 명씩 상인들의 좌판을 훑어보았다. 때로는 불쾌한 듯 발로 차 엎어버리기도 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상인의 얼굴에는 절망이 깃들었다. 예안은 자신의 차례가 올까 봐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눈은 단순히 물건을 검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역의 기미, 불온한 사상, 작은 불만이라도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봐, 너.”
낮고 거친 목소리가 예안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예안은 숨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국 감시병의 얼굴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험상궂은 인상에 잔뜩 불만이 서린 눈.
“누구의 허락을 받고 칼을 들고 있지? 설마, 반역이라도 꿈꾸는 건가?” 병사가 비웃듯 말했다. 그의 창끝이 예안의 칼날 바로 위를 맴돌았다.
예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제… 저는 그저… 생선 손질을 할 뿐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하! 제국의 은총으로 숨 쉬는 너희가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병사가 창끝으로 예안의 작업대를 툭 쳤다. 잘 손질된 생선 토막들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흙먼지가 튀었다.
예안의 심장이 끓어올랐지만,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생선을 보며 그저 눈만 감았다. 하루치 수입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다음에 다시 이런 불경한 눈빛을 보인다면, 네놈의 목을 이 칼로 베어버릴 줄 알아라.” 병사는 경고하며 지나갔다. 그의 동료들은 비웃으며 예안을 지나쳤다.
병사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시장에는 다시 웅성거림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더욱 깊어진 침묵과 체념이 깔려 있었다.
예안은 떨어진 생선을 주워 담았다. 흙이 묻어 더 이상 팔 수 없었다. 그저 버려야 했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분노, 치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억눌러야 하는 무기력함. 그것이 예안의 피를 타고 흐르는 독이었다.
밤이 깊어지고, 아랫마을은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잠겼다. 예안은 좁고 비좁은 방에서 쭈그리고 앉았다. 낡은 탁자 위에는 기름이 다 타들어간 등잔이 희미한 불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등잔 옆에 놓인 낡은 나무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표면에 거칠게 새겨진 문양은 단순했다. 겹겹이 쌓인 바위, 그 바위 틈을 비집고 자라나는 작은 새싹. ‘돌 틈 새싹’. 아랫마을 사람들이 은밀히 주고받는 암호였다. 제국의 억압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아 싹을 틔우겠다는 의지. 반란의 시작점.
예안은 그 조각을 품에 넣었다. 오늘 밤, 그는 ‘정자목’ 아래로 가야 했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랫마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곳은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동시에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탁, 탁.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 번 짧게, 한 번 길게. 약속된 신호였다.
예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숨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좁은 복도에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렌이 서 있었다. 렌의 얼굴에는 불안과 결의가 동시에 서려 있었다.
“왔어?” 렌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또 어떤 소식이 들려왔을까.” 그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함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매번 그들이 모일 때마다, 그들의 어깨에 얹히는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다.
렌은 주위를 한번 살피더니, 예안에게 바싹 다가섰다. “오늘은, 중요한 얘기가 있을 거야. 새로운 ‘계획’에 대한.”
예안의 눈빛이 흔들렸다. ‘새로운 계획’. 그 말은 항상 피를 부르고, 희생을 강요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둠 속을 헤맬 그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될 수도 있었다.
“시간이 없어.” 렌이 재촉했다.
예안은 낡은 외투를 걸치고 문을 나섰다. 밖은 고요한 어둠 속이었다. 달조차 구름에 가려 제 빛을 잃은 밤. 제국의 감시에서 가장 안전한 밤이자, 가장 위험한 밤이었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어둠 속을 걸었다.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꺾어 돌고, 썩은 내가 나는 하수구를 건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를 낡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그들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정자목 아래에 다다르자, 이미 몇몇 그림자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예안과 같은 아랫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늙은 노인, 젊은 청년, 상인, 노동자… 모두 제국의 억압 아래 신음하는 자들이었다.
중앙에는 키가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이들의 지도자, ‘칼날’.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었다. 그는 항상 두건을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늦었군, 예안.” 칼날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묘한 힘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예안은 고개를 숙였다. “감시병들의 순찰이 있었습니다. 피하느라.”
칼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지. 제국의 눈은 이제 사방에 깔려 있으니.” 그의 시선이 모인 사람들을 쭉 훑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숨어만 있을 수 없다.”
모두의 시선이 칼날에게 집중되었다. 예안의 심장이 더욱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제국은, 새로운 법령을 공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칼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모든 노동자는 제국의 등록제로 편입되며, 그들의 모든 수입은 제국에 귀속된다. 그리고… 병역의 의무가 여성에게까지 확대될 것이다.”
웅성거림이 일었다. 이전에 발표된 어떤 법령보다도 가혹하고 잔인한 내용이었다. 모든 수입의 귀속은 노예화나 다름없었고, 여성의 병역은 가정을 송두리째 파괴할 터였다.
“이건… 말도 안 돼!” 한 젊은 남자가 주먹을 꽉 쥐며 외쳤다.
“말도 안 된다고?” 칼날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제국이 언제 우리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 그들은 우리를 가축처럼 여길 뿐이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자들에게,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까지 짜내려는 것뿐이다.”
그의 말은 서늘한 진실이었다. 모두가 침묵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칼날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 제국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죽어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피를 뿌려서라도… 새로운 세상을 위한 씨앗을 심을 것인가.”
예안은 칼날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광기 어린 결의와 함께, 깊은 슬픔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예안의 머릿속에는 낮에 감시병에게 짓밟혔던 생선 토막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억눌렀던 분노가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우리는 싸울 것이다.” 칼날이 선언했다. “내일 밤, ‘성자의 길’에 모여라. 그곳에서, 제국에 맞서는 첫 번째 외침이 터져 나올 것이다.”
‘성자의 길’. 제국의 주요 보급로이자,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 반란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예안은 손에 든 ‘돌 틈 새싹’ 조각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과 함께,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뜨거운 무언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반란이었다.
피와 광기가 뒤섞일, 길고 긴 밤의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