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수백 미터 아래, 고대의 어둠이 켜켜이 쌓인 미지의 공간 속. 류진의 헤드램프가 뿜어내는 가느다란 빛줄기가 눅눅한 공기를 갈랐다. 코끝을 찌르는 곰팡내와 흙냄새,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비린,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이 뒤섞여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뒤따르던 하윤이 마른침을 삼켰다.
“류진 씨, 정말 괜찮은 거죠? 이 정도 깊이면… 구조도 힘들어질 텐데.”
하윤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헤드램프 빛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거대한 돌기둥들이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완벽한 대칭과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와 정교함이었다.
류진은 대답 대신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그의 눈은 이미 탐욕스러운 학자의 광기로 번득이고 있었다.
“하윤 씨, 봐요. 저 기둥들… 이 돌의 재질, 이 절단면. 이건 단순한 석재가 아니에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흐릿하게 맥동하는 것 같지 않아요?”
하윤은 차마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그저 차갑고 거대한 돌덩이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류진의 말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 공간 자체가 그녀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좁고 긴 회랑을 지나, 마침내 거대한 원형 홀에 다다랐다. 헤드램프의 빛으로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공간이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기이한 별자리들이 흐릿한 형상으로 새겨져 있었다. 홀의 중앙에는 지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제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단은 마치 통째로 깎아낸 듯 매끄러운 검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표면에는 섬뜩하리만치 정교한 부조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세상에…” 하윤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것은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었다. 심장을 옥죄어오는 불쾌감과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을 뿜어내는 존재였다. 부조들은 인간의 형상을 닮았지만, 동시에 전혀 인간적이지 않았다. 물고기의 비늘이 달린 팔, 곤충의 날개가 달린 등, 문어 같은 촉수가 얽힌 얼굴… 그리고 그 비인간적인 존재들이 알 수 없는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제물로 바쳐진 듯한 형체는 분명 인간이었으나, 그 표정은 고통보다는 황홀경에 가까워 보였다.
류진은 홀린 듯 제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은 부조 하나하나를 훑으며 맹렬하게 빛났다.
“이건… 이건 기록이에요. 잊혀진 문명, 아니… 잊혀지기를 바랐던 무언가의 기록이야. 이 존재들… 인간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차원의 틈새에서 넘어온 존재들인가? 아니면… 이 땅 밑에서 태어난 고대의 신인가?”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갈라졌다. 하윤은 그런 류진의 뒷모습을 보며 불안감에 휩싸였다. 너무 깊이 들어왔다. 이 공간은 인간의 정신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그녀의 이성이 경고음을 울렸다. 당장 돌아가야 한다고.
“류진 씨! 너무 가까이 가지 마세요! 저건… 뭔가 불길해요.”
하윤이 소리쳤지만, 류진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는 제단에 새겨진 부조 중에서도 유독 기이한 형상에 집중했다. 거대한 촉수와 비늘, 그리고 수없이 많은 눈을 가진 존재가 맹목적인 추종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존재의 머리 위에는 마치 혼돈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류진은 손을 뻗어 그 문양을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돌의 표면은 의외로 따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정전기가 흐르는 듯한 오싹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어…?”
그의 눈앞에서 홀의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돌기둥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천장의 별자리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회전하며 거대한 눈동자로 변하는 듯했다. 귀에서는 마치 수백 개의 곤충이 웅성거리는 듯한 소음과, 깊은 심해의 심연에서 들려오는 듯한 비명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그의 정신을 잠식하려는 듯한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암흑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정형의 거대한 존재. 감히 바라볼 수도 없는 끔찍한 형상이 그의 영혼을 짓누르는 듯했다. 그의 이성이 비명을 질렀다. *도망쳐!*
“으윽!”
류진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섰고, 머리에서는 지끈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뜬 채 숨을 헐떡였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류진 씨!”
하윤이 황급히 달려와 류진의 어깨를 붙잡았다. 류진은 그녀의 손길에도 몸을 심하게 떨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허공의 어딘가를 응시하며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봤어… 하윤 씨… 봤어… 그게… 그게…”
류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파르르 떨었다. 그의 손은 자신이 만졌던 문양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윤은 류진을 부축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류진의 반응과 이 공간 자체가 뿜어내는 알 수 없는 기운은 그녀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홀 안은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차갑고 음산해진 것 같았다. 저 거대한 제단 너머, 홀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기지개를 켜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잊혀진 과거의 심연 아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방금 막 눈을 떴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확신이 그녀의 온몸을 꿰뚫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