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찢었다. 쉰내 나는 금속과 썩어가는 하수 냄새가 뒤섞인, 젠장할 신-서울의 밤. 류는 닳아빠진 재킷의 깃을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비릿한 빗방울이 사이버웨어로 뒤덮인 팔등 위로 미끄러져 내렸다. 네온의 환영들이 깨진 아스팔트 위에서 형체 없는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빛 속에서, 류는 제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총구, 그리고 터져 나오던 붉은 섬광.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
낡은 옥상 바의 깨진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류의 심장을 얼음 송곳으로 꿰뚫는 듯했다.
“…제이 코퍼레이션의 CEO, 제이 ‘블러드핸드’ 강이 오늘부로 뉴-클러스터 8의 자치권을 획득했습니다. 그의 압도적인 리더십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불과 3년 만에 언더시티의 지배적인…”
‘블러드핸드.’ 피 묻은 손. 그 이름은 제이가 류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 날, 피로 써 내려진 낙인이었다. 그의 가족, 그의 팀, 그의 미래. 모두 제이의 탐욕 아래 짓밟혔다.
류는 손아귀에 든 술잔을 부술 듯 쥐었다. 젠장. 이제는, 진정으로 때가 왔다. 더 이상 시궁창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낡은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시궁창 같은 지난 몇 년간, 류는 한 점 잉크처럼 어둠 속에서 스며들었다. 오직 한 사람의 흔적만을 쫓아.
‘블랙마켓의 샤먼, 늙은 텐이라면 뭔가 알겠지.’
신-서울 최하층, 쓰레기 더미와 부패한 전선으로 뒤덮인 폐허 속. 텐의 은신처는 미로 같은 상가 건물 깊숙이 박혀 있었다. 형광색 전구가 깜빡이는 상점 안, 텐의 눈은 오래된 사이버웨어 부품들 사이에서 뱀처럼 번뜩였다.
“오랜만이로군, 류. 이 시궁창 쥐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었을 줄이야.” 텐이 쉰 목소리로 비죽거렸다.
류는 대꾸 없이 다 낡은 데이터 칩 하나를 텐의 더러운 작업대에 던졌다. 칩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제이 강이 만든 최신 보안 네트워크. 그걸 뚫을 수 있는 침투 경로를 원한다. 깊숙이 박힌 백도어 정보가 있다면, 더 좋고.”
텐의 주름진 얼굴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값비싼 정보일세, 친구. 자네의 남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살 건가?”
“영혼은 이미 팔렸다, 텐. 네가 팔 수 있는 건 정보뿐이야.” 류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의 크롬 나이프 손잡이에 닿아 있었다.
텐은 한참을 류의 눈을 탐색하듯 바라보다가, 마침내 낡은 단말기를 류에게 내밀었다.
“제이 강은 이번 주말, 뉴-클러스터 8의 ‘오리진 타워’에서 대규모 보안 브리핑을 가질 예정이지. 그곳의 시스템은 신-서울에서 가장 견고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십 년 전쯤, 누군가 심어놓은 낡은 루팅 포인트 하나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몰라. 아주 작은 가능성이지만, 자네라면 알아들을 게야.”
류의 눈빛이 흔들렸다. 십 년 전. 그때라면… 그와 제이가 함께 꿈을 꾸며 설계했던 시스템이었다. 오리진 타워. 그들 둘만의 은밀한 서명이 박혀 있던 곳. 어쩌면 제이가 자신에게 준 마지막 선물일지도 몰랐다. 아니, 배신자가 남긴, 죽음의 미끼.
“고맙다, 텐.” 류는 칩을 움켜쥐었다.
“대가도 없이 주지는 않아. 자네의 몸뚱이라도 가져가야지.” 텐은 류의 어깨를 거칠게 툭 쳤다. “잘 가게, 복수의 망령.”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연민이 뒤섞여 있었다.
류는 낡은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의 은신처는 폐기된 공장 구석에 숨겨져 있었다. 기름 냄새와 녹슨 철근들.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그는 팔의 사이버웨어 연결 부위를 점검했다. 신경계에 흐르는 미세한 전류가 그의 망가진 육신에 활력을 불어넣는 듯했다. 날카롭게 갈아낸 크롬 나이프를 만져보았다. 차가운 금속이 그의 손끝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울렸다.
모니터에는 오리진 타워의 홀로그램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거대한, 은빛 첨탑. 과거의 상징이자, 현재의 증오.
류는 심호흡을 했다.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안에는 오직 한 가지 감정만이, 순수한 얼음처럼 차가운 복수심만이 남아있었다.
“제이.”
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맹렬하게 타올랐다.
“이제 너의 피로, 우리의 약속을 완성할 시간이다. 내가 너에게 준 모든 것을, 이제 네게서 되찾아갈 시간.”
그는 크롬 나이프를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하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검은 비가, 멈추지 않고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