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황량한 바람이 천암산(天岩山)의 거대한 봉우리를 휘감았다. 이름처럼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바위산의 웅장함 아래, 세상 모든 무림인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 바로 ‘운명비무장(運命比武場)’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륙의 숱한 고수들이 각자의 명예와 문파의 존망을 걸고 모인 자리. 하지만 그들의 가슴 한켠에는 단순히 명예와 권력 이상의, 섬뜩한 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 비무는 다르다지?”

“그래. 단순히 천하제일인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천하의 운명’이 걸려있다니… 오만인지, 진실인지.”

술렁이는 인파 속, 정파의 일원인 청풍(淸風)은 묵묵히 경기장 중앙을 응시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선(劍仙)’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검술을 지녔지만, 그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밤, 그는 꿈을 꾸었다. 깊은 바다 밑, 검은 촉수들이 무수히 얽힌 거대한 형체가 잠들어 있는 꿈. 그 형체가 눈을 뜨자, 세상의 모든 빛이 흡수되며 암흑이 밀려드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었을 때, 귓가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소리가 여전히 맴돌았다.

대회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강호에 이름 높은 맹주들이 너무도 쉽게 패배하거나,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광기에 휩싸여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비무장 바닥에 새겨진 기묘한 문양들이 서서히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고, 밤이 되면 하늘은 더욱 검푸른색으로 변하며 기괴한 별들이 섬뜩하게 빛났다.

“저들을 보게나.”

청풍의 옆에 선 사파의 거두, 혈뢰방주(血雷幇主) 무영(無影)이 턱짓으로 경기장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몇몇 고수들이 경기장 외곽에 설치된 기둥을 붙잡고 기이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혼탁하고 흐린, 마치 다른 세계를 비추는 듯한 눈동자였다.

“저들은 ‘별을 섬기는 자들’이라 불린다. 오래전부터 무림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었지. 이번 대회를 주최한 ‘어둠의 전당’과도 연관이 있다더군.” 무영이 낮게 읊조렸다. “저들이 말하는 ‘천하의 운명’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청풍은 그 말을 들으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둠의 전당. 이번 대회를 갑작스럽게 주최한 신흥 문파. 그들은 막대한 부와 알 수 없는 힘을 과시하며 대륙의 무림인들을 끌어모았다. 그들이 내건 상금과 명예, 그리고 ‘천하의 운명’이라는 거창한 명분은 그야말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드디어 결승전. 청풍은 어둠의 전당 최고수이자, 이번 대회 내내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절대 강자, ‘묵혼대제(墨魂大帝)’ 진백(陳白)과 마주 섰다. 진백의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눈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내공은 마치 심연처럼 깊고 어두웠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비무장은 거대한 폭풍에 휩싸인 듯 요동쳤다. 청풍의 검은 마치 번개처럼 묵혼대제의 어둠을 가르고 들어갔지만, 진백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흑 기운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강렬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검선.” 진백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인 듯 기괴하게 울렸다. “네 안에 흐르는 그 순수한 기운이 필요하다. 위대한 존재께서 깨어나실 시간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청풍이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의 검에서 푸른 기운이 솟아올라 암흑을 밀어냈다.

“모든 것은 예언되어 있었다. 이 땅의 정기와 모든 고수들의 내공은 그분께 바쳐질 제물.” 진백은 비웃듯 중얼거렸다. “천하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 순간, 비무장 바닥에 새겨진 문양들이 맹렬한 붉은빛을 토해냈다. 그 빛은 비무장 중앙에 우뚝 솟은 거대한 검은 제단으로 빨려 들어갔고, 제단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거대한 보석이 끔찍하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콰앙!

제단에서 뿜어져 나온 파동이 청풍과 진백을 강타했다. 청풍은 몸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에 휘청였다. 시야가 흐려지고, 환청이 귓가를 때렸다. 마치 수백, 수천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청풍의 머릿속에 온갖 끔찍한 형상들을 주입했다. 우주 저편의 검은 바다, 그 속을 유영하는 거대한 눈동자들, 별들 사이를 떠도는 이질적인 존재들… 그가 보았던 악몽이 현실로 발현되는 듯했다.

“이것이… 너희가 말하는 운명이냐!” 청풍은 절규하듯 외치며 검을 제단으로 향했다. “헛된 환상에 사로잡혀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것이냐!”

하지만 진백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가면이 서서히 녹아내리자,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비늘이 돋아나고, 눈동자는 여러 개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입에서는 끔찍한 촉수가 삐져나와 있었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이것은 환상이 아니다. 이것이 진실이다!” 진백의 목소리는 이제 수십 개의 다른 음조가 뒤섞인, 알아들을 수 없는 소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분께서는 이미 깨어나고 계신다! 너희의 기운은 그분께 나아가기 위한 제물이다!”

제단 중앙의 보석이 마치 거대한 심장처럼 쿵, 쿵, 하고 울렸다. 비무장 바닥의 틈새에서 검은 액체가 스며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서서히 형상을 갖추어갔다.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고, 비무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무림인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혹은 기이한 모습으로 쓰러져 경련하고 있었다. 몇몇은 이미 피를 토하며 미쳐버린 채 허공에 손을 휘두르고 있었다.

“안 돼… 멈춰!”

청풍은 남은 모든 기운을 끌어모아 검에 주입했다. 그의 검은 한 줄기 푸른 섬광이 되어 제단을 향해 날아갔다. 수십 년간 갈고닦은 무림 최고의 검술, ‘비연검혼(飛燕劍魂)’의 극의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푸른 빛이 검은 제단을 강타하자, 잠시 동안 제단 주변의 검은 기운이 흩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제단은 더욱 격렬하게 고동쳤고, 보석은 찢어질 듯한 소음을 내며 빛을 뿜어냈다.

그 빛 속에서, 검은 액체가 만들어낸 형체가 점차 선명해졌다. 그것은 거대하고, 불결하며, 이 세상의 어떠한 생명체와도 닮지 않은 존재였다. 마치 우주 자체를 압축하여 만들어낸 듯한 거대한 눈동자가 수없이 박혀 있었고, 그 눈동자들은 동시에 청풍을 응시했다.

그 시선과 마주한 순간, 청풍의 정신은 마치 얇은 유리잔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는 그 존재의 이름을 들었다. 태초부터 존재했으며, 모든 것을 무로 돌릴 수 있는, ‘공허의 지배자(虛空之主)’. 그의 존재는 인간의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는, 그야말로 우주적 공포 그 자체였다.

그는 검을 놓쳤다. 그의 무공, 그의 내공, 그의 삶 전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거대한 존재 앞에서, 인간의 모든 노력은 한낱 모래알에 불과했다.

주변에서 미쳐버린 무림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이는 자신의 살을 뜯어먹고, 어떤 이는 허공에 대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춤을 추었다. 비무장은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청풍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다. 다만, 그의 귓가에는 여전히 그 거대한 존재의 이름이, 그리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속삭임이 맴돌고 있었다.

**”이그네우스. 이그네우스. 모든 것의 끝이자 시작…”**

하늘의 별들이 더욱 기괴한 형태로 일렁였다. 검푸른 밤하늘이 점차 붉은색으로 물들어가고, 그 붉은빛은 마치 피처럼 비무장 전체를 적시는 듯했다. 천암산 전체가, 아니, 이 세상 자체가 이제 막 거대한 존재의 손아귀에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그리고 청풍은 깨달았다. 천하의 운명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자신들이 벌인 이 무의미한 투쟁은, 그저 거대한 존재를 위한 서곡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위해 깨어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끔찍한 광기가 서린 웃음이 번졌다.

“하하하… 운명이로구나… 이것이… 진정한… 운명이로구나…”

그의 눈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깊은 심연의 공포가 그를 완전히 집어삼킨 것이다.

운명비무장의 붉은 빛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빛은, 대륙 전체에 드리워질 거대한 어둠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