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막혔다. 아니, 애초에 쉬어지지 않았다. 익숙한 천장의 형광등 대신,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검고 붉은 먼지였다.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차가운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이마는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몇 날 며칠을 사막에서 헤맨 사람처럼 갈라진 입술 안쪽으로 모래알 하나까지 메마른 목구멍이 느껴졌다.
“컥, 컥… 쿨럭!”
기침과 함께 먼지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눈을 깜빡이자 겨우 흐릿한 윤곽이 잡혔다. 나는 분명 퇴근길 횡단보도에서였다. 익숙한 도시의 소음과 빌딩 숲, 그리고 번잡한 사람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누워있는 곳은 시멘트와 흙먼지가 뒤섞인 폐허였다. 금이 가고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한때는 웅장했을 건물들은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늘조차 이상했다. 푸른색은 온데간데없고, 잿빛과 희미한 붉은색이 뒤섞여 마치 영원히 해 질 녘일 것 같은 기묘한 색을 띠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내 목소리는 갈라지고 쉬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있던 횡단보도는 없었다. 퇴근길 인파도, 번쩍이는 상점 간판도, 빵빵거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도 없었다. 오직 침묵과 폐허, 그리고 내가 뱉는 거친 숨소리만이 이 낯선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손을 들어 올렸다. 얇고 창백한 손. 내 손이 맞나? 익숙한 내 손등의 작은 흉터가 없었다. 대신 손가락 마디마디가 거칠게 갈라져 있었고, 손톱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찢어진 소매 사이로 드러난 팔뚝은 근육은커녕 뼈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말라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게 꿈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감이 없었다. 현실이라면 내 차가운 사무실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어야 했다. 아니면 횡단보도를 건너며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겠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윽, 뼈마디가 전부 굳어버린 것 같았다. 겨우 앉은 자세로 몸을 돌리자, 발치에 놓인 금이 간 거울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거울 속에 비친 것은… 나였다. 하지만 내가 아니었다.
깊게 패인 눈 밑 그늘, 앙상하게 드러난 턱선, 핏기 없는 얼굴. 하지만 분명 내 얼굴이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지치고 늙고,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죽음과 싸워온 전사의 얼굴처럼.
혼란이 머리를 지배했다. 나는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그리고 왜 나는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마지막 기억은 횡단보도였다. 그 뒤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내 인생의 한 부분이 통째로 잘려나간 것처럼.
“물… 물이 필요해…”
본능적으로 목마름이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이성적인 사고는 뒤로 밀려났다. 당장 이 타들어가는 목구멍을 축여야 했다. 어디든 좋았다. 고인 물이라도, 빗물 고인 웅덩이라도.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이 후들거렸지만, 묘하게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 몸은 약해 보이지만, 어딘가 강인했다. 오랜 시간 고난에 익숙해진 육체.
폐허 속을 걷기 시작했다. 발밑에 밟히는 것은 부서진 유리 조각과 금속 파편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단단한 흙먼지들이었다. 한때 번화했을 거리는 이제 건물들의 잔해와 무너진 다리들로 가로막혀 있었다. 마치 거대한 폭풍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아니, 폭풍보다 더한 무언가가.
정면에는 한때 쇼핑몰이었을 법한 거대한 건물의 뼈대가 서 있었다. 간판은 녹슬고 부서져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부서진 마네킹 팔, 먼지 쌓인 진열대, 그리고 바닥에 흩뿌려진 알 수 없는 물건들의 잔해들.
“젠장… 아무것도 없어.”
물을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었다. 온통 메마른 죽음의 공간이었다. 희망 대신 절망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나는 여기서 죽게 될까? 낯선 곳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아무도 모르게.
그 순간, 먼발치에서 흐릿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 말고 다른 생명체가?
경계심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저것은 무엇일까? 동족일까, 아니면… 위협일까?
폐허 저편, 무너진 벽 틈새로 언뜻 비친 그림자는 너무 희미하고 빨랐다. 하지만 분명 움직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숨겼다. 깨진 콘크리트 기둥 뒤로 몸을 바짝 붙였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림자는 내가 숨은 곳 반대편으로 사라진 듯했다. 공포가 가라앉자, 호기심과 함께 한 줄기 작은 희망이 피어났다. 저 그림자가 움직였다면, 이곳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저 그림자가 내가 찾던 물이나 식량을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누구지? 그리고 왜 이곳에 있는 거지?
내 머릿속은 백지였다. 이전 세계에서의 삶은 희미한 그림자처럼 잡히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 세계에서 태어나 이 몸으로 살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그것이 아니라고 속삭였다.
나는, 이방인이다.
해가, 아니 잿빛 노을이 점점 더 짙어졌다. 주변의 폐허들이 길고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밤이 오고 있었다. 이 낯선 세상의 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이 낯선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문득, 폐허 한 귀퉁이, 금이 간 시멘트 바닥 사이에서 파고 올라온 작은 새싹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 잿빛 세상에서, 그 작은 생명체는 놀랍도록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는 의지.
나는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래, 나도 저 새싹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로 던져졌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 나는 나의 생존을 시작해야 했다.
어둠이 지평선 끝에서부터 기어 올라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 같기도 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조심스럽게 폐허의 가장 깊은 곳, 조금 더 안전해 보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이 밤을 넘기는 것이 나의 첫 번째 과제가 될 터였다.
그 소리가 다시 한번 찢어지는 듯한 비명으로 변하자, 나는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었다.
이곳은, 살아있는 지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