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쨍그랑!”

발밑에서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날카로운 소음을 냈다. 지혁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발을 멈췄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소음은 곧 죽음이었다. 그것들은 소리에 반응했다. 빛에도, 온기에도, 그리고… 절망에도.

한낮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회색빛 하늘 아래, 도시의 잔해는 거대한 무덤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뼈대만 남은 고층 빌딩들은 흉물스러운 기념비처럼 하늘을 찔렀고, 그 사이를 비집고 자란 기괴한 형상의 식물들은 콘크리트 틈새를 먹어치우며 악의적인 초록빛으로 번들거렸다. 공기는 먼지와 부패, 그리고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다. 폐허가 된 지 벌써 몇 년째인지, 이제는 세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지혁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둠의 잔영들은 때때로 낮에도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주로 밤에 활개를 쳤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자 같았다. 형체가 없는 듯하면서도 주변 사물을 뒤틀고, 사람의 정신을 파고드는 악몽 같은 존재.

“젠장… 아무것도 없어.”

낮게 중얼거린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텅 빈 거리에서 울렸다. 지혁은 허름한 배낭을 고쳐 메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식량. 이 며칠째 식은 통조림 조각과 오염되지 않은 물 몇 모금으로 연명해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버티지 못할 터였다.

그가 들어선 곳은 한때 ‘번화가’라고 불렸던 곳의 상점가였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나가고, 상품들은 약탈당하거나 오랜 시간 속에 썩어 문드러졌다. 바닥에는 진흙과 알 수 없는 검은 얼룩들이 뒤섞여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널브러진 잔해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아가던 지혁의 눈에 한 슈퍼마켓 간판이 들어왔다. 간판은 녹슬고 일부가 떨어져 나갔지만, 글자는 아직 읽을 수 있었다.

**’희망 슈퍼마켓’**

지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희망이라니. 이 세상에 남아있는 가장 값비싸고 찾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부서진 셔터를 들어 올리고 슈퍼마켓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내부 공기는 바깥보다 더 습하고 차가웠다. 마치 거대한 냉장고 안으로 들어선 듯한 느낌. 한때 빼곡했을 진열대들은 텅 비어 있거나,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끈적한 이물질로 뒤덮인 채 흉측하게 서 있었다. 천장에서는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마치 누군가의 맥박 소리처럼.

“크윽….”

오른쪽 어깨의 욱신거림이 다시 시작됐다. 얼마 전 잔영들과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였다. 꽤 깊게 베였는데, 운 좋게 파편이 살을 파고들었을 뿐, 핵심부를 건드리진 않았다. 상처는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검붉게 곪아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으면 팔을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의학서적에 쓰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젠 그런 의학서적 따위는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지만.

지혁은 한숨을 쉬며 낡은 카트를 끌었다.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가 고요한 내부를 더욱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진열대 사이를 오가며 혹시라도 먹을 만한 것이 있을까 눈을 번뜩였다. 통조림, 말린 식품, 하다못해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과자 부스러기라도 좋았다.

그때였다.

멀리서, 어둠에 잠긴 계산대 부근에서 섬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흐으읍… 흐으으읍…

바람 소리인가? 아니, 바람은 저렇게 일정하고 끈적하게 속삭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폐부를 긁어내는 듯한 낮은 한숨이자, 굶주린 짐승의 숨소리 같았다. 지혁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잔영이었다. 분명했다. 그것들이 낮에도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단 말인가?

그는 카트를 멈추고 몸을 웅크렸다. 심장이 발버둥 치듯 격렬하게 뛰었다. 그의 손은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찬 녹슨 칼자루를 잡았다. 마지막 보루였다.

— 흐으읍… 흐읍… 따뜻하다…

이번에는 좀 더 또렷하게 들렸다.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마치 영혼이 직접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느낌. 지혁은 몸을 최대한 낮추고 부서진 선반 뒤로 몸을 숨겼다. 그의 눈은 어둠이 깔린 계산대 쪽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물리적인 형체는. 그러나 그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냉기. 빛이 닿지 않는 모든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한 존재감. 그것은 단순히 그림자가 아니었다. 빛을 먹어치우고 온기를 빨아들이는, 살아있는 공허함이었다.

초점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잔영들이 나타날 때 나타나는 전조였다. 그것들은 현실을 왜곡시켰다. 마치 낡은 필름처럼 세계의 색을 바래게 하고, 소리를 뒤틀었다.

지혁은 이를 악물었다. 두려움이 심장을 쥐어짜는 듯했지만, 동시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그를 붙잡았다. 이 빌어먹을 세상이, 이 빌어먹을 존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죽을 바에는 싸우다 죽으리라.

그는 조심스럽게 선반 모서리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 계산대 뒤편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움직였다. 마치 거대한 투명한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아지랑이의 중심에서, 빛의 조각들이 스멀스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주변의 희미한 빛마저 빨아들이며 공간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것은 어둠의 잔영이었다.**

그 형체는 명확하지 않았다. 때로는 거대한 검은 망토를 두른 인간의 형상 같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연기처럼 흩어지고, 또다시 바닥을 기어 다니는 거대한 지네처럼 변모했다. 그 변모 속에서 기괴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뼈가 뒤틀리는 소리, 찢어지는 비명, 그리고 수백 개의 목구멍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듯한 절망적인 울음소리.

지혁은 숨을 멈췄다. 망토 끝자락처럼 보이는 것이 축 늘어진 진열대를 쓸고 지나가자, 그 자리에 있던 낡은 과자 봉지들이 순식간에 검은 재로 변하며 바스라졌다. 생기를 빨아들이는 능력. 잔영들의 가장 무서운 특성이었다. 그들에게 닿는 모든 생명과 물질은 순식간에 존재를 부정당하고 허무로 돌아갔다.

그때, 잔영의 형체가 슈퍼마켓 안쪽, 창고 문을 향해 움직였다.

창고. 어쩌면 그 안에 아직 온전한 식량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희미한 희망이 지혁의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잔영이 그 길을 막고 있었다.

지혁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정면으로 싸우는 건 미친 짓이다. 저것은 물리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존재. 그러나 한 가지 약점은 있었다. 빛. 밝고 강렬한 빛은 잠시나마 그것들을 흩어지게 할 수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낡은 손전등을 꺼냈다. 전력은 거의 바닥이었지만, 비상시에 쓰기 위해 아껴두었던 것이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젠장…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속삭이듯 말하고는, 지혁은 손전등을 움켜쥐고 선반 뒤에서 뛰쳐나왔다.

“이 빌어먹을 그림자 새끼들아!”

그의 외침에 잔영의 형체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어둠의 아지랑이가 그를 향해 스물거리며 뻗어 나왔다. 마치 굶주린 촉수처럼. 지혁은 망설이지 않고 손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팟!

희미한 백색 섬광이 어둠을 갈랐다. 불빛은 약했지만, 잔영의 형체는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며 뒤로 물러났다. 공허함의 비명 같은 소리가 슈퍼마켓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침묵 같기도 했다.

틈이었다.

지혁은 비명을 지르며 질주했다. 잔영이 다시 몸을 추스르기 전에, 그는 전속력으로 창고 문을 향해 내달렸다. 어둠의 촉수들이 그의 발목을 휘감으려 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발을 내질렀다. 마치 차가운 실체가 스치는 듯한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간신히 창고 문턱을 넘어섰을 때, 지혁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문을 닫고 빗장을 걸어 잠갔다. 쿵! 쿵! 쿵!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비명을 지르듯 흔들렸다. 잔영들이 문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지혁은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몸은 땀으로 축축했다. 낡은 손전등은 이미 꺼져버린 지 오래였다. 손전등은 그의 마지막 빛이자, 최후의 희망이었다.

창고 안은 암흑이었다.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썩은 과일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그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희미한 윤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지로 뒤덮인 선반들, 찌그러진 박스들.

그리고 그 벽 한구석에서, 낡은 마대자루가 보였다. 마대자루는 묶여 있었지만, 그 옆에 나뒹구는 녹슨 곡괭이 하나가 지혁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곡괭이 손잡이에는 검붉은 얼룩이 말라붙어 있었다.

지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잔영들은 밖에서 여전히 문을 긁어대고 있었다. 쾅! 쾅! 쾅! 이 문이 얼마나 버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차갑고 무거운 쇠붙이가 그의 손안에서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마대자루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혹시라도… 식량이라도 있을까. 작은 기대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 왔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대자루 옆, 벽에 새겨진 희미한 글씨.

**’탈출구는 없다. 오직 죽음만이…’**

지혁의 눈이 경련하듯 떨렸다. 그는 마대자루의 묶인 부분을 잡고 힘껏 풀어헤쳤다.

축 늘어진 자루의 입구가 열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뼈였다.**

사람의 뼈. 깔끔하게 발라진, 하얗고 섬뜩한 뼈들이 자루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뼈들 위에는, 낡고 바싹 마른 손목시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초침은 멈춰 있었다. 오전 세 시 삼십삼 분.

지혁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등 뒤의 문은 여전히 끔찍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어둠의 잔영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창고 내부, 저 깊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한기가 그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기어 올라왔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뒤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듯한 느낌.

지혁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텅 비어야 할 창고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잔영들과는 다른, 더욱 선명하고 섬뜩한, 살아있는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