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천하는 혼돈이었다.
아니, 혼돈이었다고 전해진다. 철기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 인간의 맨몸과 맨손만이 무림을 지배하던 시절은 이제 아득한 전설 속 이야기로만 남아 있었다. 수백 년 전, 강철의 거인들이 대지를 뒤흔들며 등장했을 때, 무림은 비로소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무공은 철기 조종술과 결합했고, 내공은 철기의 동력원이자 움직임을 제어하는 핵심이 되었다.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광대한 힘, 한 번의 발차기로 산을 무너뜨리고 주먹으로 바다를 가르는 위용은 이제 강철 몸체에 깃들어 무림 고수들의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힘은 역설적으로 더욱 큰 싸움을 불러왔다.
강철신체를 둘러싼 문파 간의 다툼은 천하를 피로 물들였고,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수많은 강호의 영웅들이 스러져갔다. 문파의 절기와 가문의 비기는 이제 각 철기에 최적화된 조종술과 무장 개발로 이어졌다. 강철신체의 조종사는 단순한 조종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무기였고, 문파의 정신을 강철에 불어넣는 무인이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전란은, 마침내 ‘천하제일 철기무도회’라는 이름 아래 잠정적인 평화 협정을 맺게 되었다. 각 문파의 수호자들은 맹세했다. 더 이상 철기를 앞세워 피로 천하를 물들이지 않겠노라고. 대신, 오직 이 무도회에서 가장 강력한 철기와 그 조종사가 천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무도회의 승자는 모든 분쟁에 대한 최종 판결권을 가지며, 십 년간 천하의 질서를 수호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받는다. 이 규칙은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왔고, 무도회는 단순한 경연을 넘어 천하의 명운을 건 숙명의 장이 되었다.

“으아아악!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 소리에 백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며 일으키는 굉음, 수십만 관중의 열기가 한데 뒤섞여 거대한 파도처럼 경기장을 휩쓸었다. 이곳은 강철의 심장이 뛰는 곳, 바로 ‘천하제일 철기무도회’의 본선 경기장이었다. 원형으로 된 거대한 아레나를 중심으로 수십 층에 달하는 관중석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그 중앙에는 강철신체들을 위한 거대한 경기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백강은 낡은 정비복 소매로 땀을 훔쳤다. 그는 지금 예선전 대기실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 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철기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투박하고 낡았지만, 그 어떤 명문 문파의 강철신체에도 뒤지지 않는 고집스러운 위용을 뿜어내는 듯했다. 마치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노인처럼, 구석구석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인함이 느껴졌다.

그의 철기, ‘무영(無影)’.
그 어떤 이름난 문파의 철기도 아니었고,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화려한 신형도 아니었다. 그저 망해버린 소문파의 유일한 유산이자, 백강이 평생을 바쳐 뜯어고치고 수련한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백강은 무영이 천하 어떤 철기보다 강하다고 굳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했다. 그에게는 이 무도회에 참가할 다른 이유가 없었다.

“크으, 저게 바로 ‘철혈문’의 ‘혈륜강철’이군! 역시 위용이 남달라!”
“이번 대회 유력 우승 후보 중 하나 아니겠어? 철혈문의 ‘진묵’ 장로라니, 벌써부터 전율이 인다!”

주변의 수다 소리가 백강의 귀에 꽂혔다. 그들의 시선은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크린 속에서는 방금 끝난 예선전 하이라이트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붉은색 강철신체, 혈륜강철이 회전하는 거대한 톱날 같은 주먹으로 상대 철기를 단숨에 두 동강 내는 장면이었다. 그 섬뜩한 파괴력에 관중들은 광란적으로 환호했다.

백강은 콧방귀를 뀌었다.
“쯧, 보여주기식 과장이야. 저 덩치에 저 속도면 빈틈이 얼마나 많은데.”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옆자리 조종사가 흘끔 백강을 쳐다봤다. 낡은 정비복에 꾀죄죄한 행색, 그리고 옆의 낡은 철기. 그 조종사는 풋, 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꼬맹이, 어디서 온 잡문파냐? 혈륜강철의 위용을 모르고 지껄이는 거냐? 네놈이 뭘 안다고.”
백강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봤다. 앙칼진 눈빛은 순간 조종사를 움찔하게 했다.
“난 잡문파가 아니다. 그리고… 알고 말고 할 것도 없어. 곧 저놈이랑 직접 만나게 될 거거든.”
백강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지만, 묘한 기백이 서려 있었다. 조종사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다음 경기, 서쪽 출입구! ‘파천문’의 ‘뇌신(雷神)’ 출격! 동쪽 출입구! ‘백강’, ‘무영(無影)’ 출격!”

경기장의 확성기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백강의 이름이 불리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파천문! 강호 십대 문파 중 하나이자,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인 ‘뇌신’의 조종사가 아닌가! 그런데 그의 상대는 듣도 보도 못한 ‘백강’이라는 이름과 ‘무영’이라는 낡은 철기였다. 관중석에서는 야유와 조롱이 터져 나왔다.

“백강? 누구야 저 듣보잡은!”
“무영? 이름부터가 후져! 고물상에서 주워온 거 아니냐?”
“젠장, 뇌신 보러 왔는데 저런 잡놈이랑 붙다니!”

그러나 백강은 그런 소리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몸에 딱 맞는 조종복을 매만지고, 낡았지만 잘 관리된 ‘무영’의 조종석 문을 열었다. 묵직한 강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종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자, 무영의 내부에 옅은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백강의 손가락이 능숙하게 제어판 위를 스쳤다.

“자, 무영아. 오랜만에 기지개 좀 펴 볼까?”

백강의 음성에 맞춰 무영의 눈처럼 빛나는 광학 센서가 번뜩였다. 낡고 투박한 철기였지만, 그 안에는 주인의 굳건한 의지가 스며들어 있었다. 조종석 안은 마치 작은 우주선처럼 수많은 계기판과 스위치로 가득했지만, 백강의 눈에는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 무영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 한 번에 쿵, 쿵, 하고 거대한 진동이 통로를 타고 울려 퍼졌다. 터널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수십만 관중의 함성, 강렬한 조명,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아레나. 그 모든 것이 백강의 심장을 더욱 강하게 뛰게 만들었다.

반대편 통로에서는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내는 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렵하면서도 중후한 갑옷, 번개 문양이 새겨진 푸른색 동체, 그리고 거대한 뇌전포(雷電砲)가 장착된 두 팔. ‘파천문’의 ‘뇌신’이었다. 뇌신은 등장과 동시에 천둥 같은 기합 소리와 함께 팔을 휘둘러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그 위용에 관중들은 환호성을 넘어 경외감을 표했다.

“저게 바로 뇌신인가….” 백강은 작게 중얼거렸다. 압도적인 성능과 화려한 디자인. 누가 봐도 명문 문파의 최신형 강철신체였다. 하지만 백강의 눈은 냉정했다. 뇌신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약점을 찾아내려는 듯 예리하게 빛났다.

“양측 조종사, 최종 점검 완료! 경기 시작 10초 전!”

심판 로봇의 음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경기장의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10… 9… 8…”

백강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의 내공이 무영의 동력원으로 흘러들어가며 철기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마치 무영의 강철 피부가 자신의 살과 뼈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3… 2… 1…”

“경기, 시작!”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뇌신이 거대한 발걸음으로 백강에게 돌진했다. 콰앙! 대지가 울렸다. 뇌전포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백강을 향해 쏘아졌다. 강렬한 전격의 흐름이 공기를 가르고 날아왔다.

“젠장, 시작부터 풀 파워냐!”

백강은 짧게 욕설을 내뱉으며 무영의 몸을 빠르게 틀었다. 육중한 무영이 놀랍도록 날렵하게 회피하자, 뇌전포는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뇌신은 멈추지 않았다. 회피하는 무영의 바로 옆으로 쇄도하며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강철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무영의 옆구리를 노렸다.

피할 수 없다면, 막아내라!

백강은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무영의 왼팔을 들어 뇌신의 주먹을 막아냈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끔찍한 굉음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크아아앙! 육중한 충격에 무영의 몸이 휘청였지만, 백강은 조종간을 꽉 움켜쥐고 버텼다.

“풋, 고작 그 정도냐? 낡은 고철 덩어리 주제에!”

뇌신 조종사의 조롱 섞인 음성이 백강의 귀에 들려왔다. 그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 뇌신의 팔에 더욱 힘을 실었다. 거대한 강철 주먹이 무영의 팔을 짓누르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백강은 씨익 웃었다.
“고철이라… 나쁘지 않은 별명인데.”
그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백강의 내공이 폭발적으로 무영의 오른쪽 팔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고철도 쓸모는 있는 법이지!”

쾅! 무영의 오른팔이 뇌신의 복부를 향해 맹렬하게 솟구쳤다. 회피할 틈도 주지 않는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뇌신의 조종사는 당황한 듯했지만, 이미 늦었다. 강철 주먹이 뇌신의 튼튼한 복부 장갑에 정확히 명중했다.

콰자자작! 으드득!
경쾌한 금속 파열음이 들려왔다. 강력한 충격과 함께 뇌신의 거대한 몸체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관중석의 환호성이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다. 뇌신이, 저런 이름 없는 고철 덩어리에게 유효타를 맞다니!

백강은 튕겨져 나가는 뇌신을 놓치지 않았다. 무영의 추진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뇌신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승부는, 단 한순간에 갈릴 수도 있는 법이니까.

“간다!”

백강의 외침과 함께, 무영의 강철 주먹이 빛나는 섬광처럼 뇌신을 향해 쇄도했다.
그는 알았다.
이 무도회는, 그저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손에, 그리고 무영의 강철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달려 있다는 것을.
천하의 운명. 그리고 잊혀진 문파의 자존심.
모든 것을 걸고, 그는 싸운다.
강철 무림의 전설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