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우주를 감싸고, 그 속에서 빛을 잃은 성간 회랑은 고요했다. 거대한 고대 건축물인 에테르 성소의 심장부, 폐쇄된 제14번 관측실. 철골이 앙상하게 드러난 돔형 천장 아래, 나는 차가운 금속 바닥에 등을 기댄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심장이 흉골을 뚫고 나올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미친 짓이 내 존재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은.
희미한 신호음이 나지막하게 울렸다. 약속된 카이라의 접근 신호.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문이 스르륵 열리고, 푸른빛 안개와 함께 그녀가 나타났다.
“한.”
나지막하지만 맑은 음성. 그녀의 몸을 휘감은 희미한 발광체는 어둠 속에서 오로라처럼 일렁였다. 길고 섬세한 팔다리는 마치 그림자처럼 유려했고, 열 개가 넘는 다색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나를 응시했다. 시리안족. 내가 속한 은하연합에게는 미개하고 잔혹한 야만족으로 치부되는, 그러나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들. 그리고 그녀, 카이라. 내게는 우주의 모든 빛보다 눈부신 존재.
“카이라.”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피부는 차가운 결정 같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생명력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손이 맞닿자, 그녀의 발광체가 더욱 선명한 푸른빛을 띠며 파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그녀의 감정 표현이었다. 기쁨, 안도, 그리고 우리를 짓누르는 금지된 감정의 무게.
“늦었어. 혹시 무슨 일이라도…….”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당겨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에서는 희미한 숲 향기가 났다. 그들의 행성에 있다는, 오직 영혼의 정화자만이 피워낸다는 ‘어둠의 꽃’ 향기였다.
“미안해. 위성 감시망이 평소보다 삼엄했어. 자치 위원회에 새로운 순찰선이 배치된 모양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발광체의 흔들림은 불안을 드러냈다. 그녀의 다채로운 눈동자가 내 얼굴을 훑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파장까지 읽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
나는 그녀의 가늘고 긴 어깨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 미지의 존재와 내가 이렇게 밀착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고, 동시에 비극이었다. 은하연합법 7조 2항. ‘이종족 간의 교류는 외교 및 연구 목적에 한하며, 사적인 접촉과 감정적 유대는 엄격히 금지된다.’ 위반 시, 개인은 종족 말살형에 처하고, 관련된 행성계는 통째로 봉쇄될 수 있었다.
“난 늘 너에게 갈 거야. 네가 기다리는 한.”
그녀의 고백에 내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었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험한 선언인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종족에게도 우리 인간은 위험한 이방인이었다. 침략자이자 파괴자.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피부는 차가운 보석처럼 단단했지만, 그 속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그 어떤 불꽃보다 뜨거웠다.
“오늘 일이 있었어.”
카이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발광체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자치 위원회에서 시리안 족장의 딸이 외계 종족과 은밀히 접촉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했어.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종족인지 특정하진 못했지만… 경고를 받았어.”
내 몸이 순간 굳어졌다. 소문이라니. 이 에테르 성소는 중립지대였지만, 늘 감시와 도청이 판치는 곳이었다. 우리는 아무리 조심해도 언젠가는 발각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괜찮아. 내가 더 조심할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 목소리조차 나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한, 너의 종족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 나의 종족들도 마찬가지고.” 그녀의 다채로운 눈동자가 슬픔으로 일렁였다. “우리의 사랑은 이 우주에서 용납되지 않을 거야. 차라리….”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용납되지 않으면, 우리가 용납되게 만들 거야. 설령 이 우주의 모든 존재가 우리를 등진대도,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아.”
나의 맹세에 그녀의 발광체가 진한 푸른빛으로 빛났다. 그녀는 내 품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어떤 역경이 닥쳐도, 나는 너의 곁에 있을 거야. 너의 곁에서, 함께.”
그녀의 목소리는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은 내 영혼 깊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허락되지 않은 존재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전부였다. 이 넓은 우주에서 오직 둘만이 아는, 이 완벽한 고독과 고백의 순간.
“하지만 우리는 조심해야 해.” 나는 슬픔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더 많은 눈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 더 많은 감시망이 뻗어오고 있다고.”
갑자기, 관측실 문 너머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불시에 순찰을 도는 경비 로봇의 금속음이었다.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카이라의 몸을 감싼 발광체가 급격히 흐려지더니, 마치 연기처럼 희미해졌다. 그녀의 종족은 빛을 흡수하여 존재를 감추는 능력이 있었다.
“숨어!”
나는 그녀를 재빨리 돔형 천장 아래, 폐기된 우주선 잔해 더미 뒤로 밀어 넣었다. 나 또한 벽에 몸을 바싹 붙이고 숨을 죽였다. 금속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삑- 삑- 전자음과 함께 관측실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푸른 광선을 내뿜는 경비 로봇의 감시 렌즈가 천천히 관측실 내부를 훑었다.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카이라가 완벽하게 숨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각될까 봐 온몸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길고 긴 침묵. 금속음이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로봇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관측실 문이 닫히고, 정적이 다시 찾아왔다. 나는 벽에서 떨어져 나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우주선 잔해 뒤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다시 나타났다. 카이라였다. 그녀의 발광체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공포와 분노, 그리고 슬픔이 뒤섞인 파동이었다.
“너무 위험해, 한.”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우리 때문에 너도….”
“아니.”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끝낼 순 없어. 나는 너 없이는 안 돼, 카이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지킬 거야.”
나는 그녀에게 다시 다가가, 이번에는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녀의 다채로운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 눈 속에는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첫 번째가 될지도 몰라.”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이 금지된 우주에서, 금지된 사랑을 꽃피운 첫 번째 존재가 될지도 몰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품에 기대왔다. 그녀의 몸을 감싼 발광체는 이제 격렬한 파동 대신, 잔잔하고 따뜻한 빛을 내뿜었다. 마치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 어둡고 고요한 우주에 새로운 빛을 밝히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의 앞길은 이보다 훨씬 더 어둡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모든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빛이 되어 이 어둠을 헤쳐나갈 것이었다. 이 우주가 우리를 거부한다 해도, 우리는 결코 서로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었다. 단 한 순간도.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았다. 다음 번에도, 이렇게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약속만이 우리를 살아가게 할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