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흑룡비무대(黑龍比武臺)의 그림자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쳤다. 수천 년 된 바위산을 깎아 세운 흑룡비무대(黑龍比武臺)는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짙은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대륙의 모든 무림인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천명결(天命決)의 개막이 코앞이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다는 비장한 맹세는 허언이 아니었다. 지난 백 년간 암암리에 무림을 짓누르던 어둠의 기운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이 거대한 무술 대회를 통해 새로운 천하제일인을 가려내 그 칼끝으로 혼돈을 잠재워야 했다.
비무대의 중앙에 놓인 거대한 흑철(黑鐵) 재단 위에는 오색찬란한 비단에 싸인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대대로 천명결의 승자에게 수여되어 천하의 무림을 이끄는 상징이 되어 온, ‘천의검(天意劍)’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비단 자락을 흔들 때마다 검은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 빛은 희망보다도 고독에 가까웠다.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흑룡비무대 아래 펼쳐진 임시 숙소들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었고, 저마다의 무공으로 이름을 날린 고수들이 조용히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살기 어린 침묵 속에서, 스치는 시선 하나하나에 보이지 않는 칼날이 번뜩였다.
“음, 올해는 유난히 기운이 다르군.”
진우는 차가운 돌벽에 등을 기댄 채 멀찍이 떨어져 이 광경을 응시했다. 그는 강호에 이름을 크게 알린 고수는 아니었다. 다만, 그의 눈은 매의 눈처럼 예리했고, 그의 몸에는 가끔 스승조차 감탄하는 미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는 한 이름 없는 문파의 후예였으나, 오랫동안 강호를 떠돌며 수많은 기인들과 스치고, 기이한 사건들을 목격하며 자신만의 시야를 넓혀왔다.
진우의 옆에서 묵묵히 서 있던 사형, ‘무영’은 낮게 읊조렸다. “오랜만에 모인 무림의 정기치고는, 너무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 마치 잔치에 초대한 손님들 사이에 칼을 숨긴 자가 섞여 있는 기분이야.”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영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숙소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미묘한 긴장감은 단순한 경쟁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들의 으르렁거림 같았다. 특히나 오늘 새벽, 비무대 주변을 경비하던 무림맹의 일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쓰러져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었다. 단순한 사고사라고 둘러댔지만, 그 말을 곧이들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무림맹의 장로들이 드디어 중앙 재단 앞에 모였다. 엄숙한 침묵 속에서 대회가 곧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서막이 오를 참이었다. 총대리 장로인 백운 장로가 앞으로 나서려던 찰나, 저편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큰일이오! 백운 장로님! 큰일이 났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달려온 젊은 무사가 허둥지둥 외쳤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숨을 헐떡이며 겨우 말을 이었다.
“현, 현룡검제(玄龍劍帝) 류원(柳元) 대협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정적. 숙소는 물론, 비무대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섬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류원. 그는 북해의 칼바람 속에서 검술을 갈고닦아 ‘현룡’이라는 칭호를 얻은 무림의 거목이었다. 이번 천명결의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자, 누구도 쉽게 대적할 수 없는 절대 고수. 그런 그가 죽었다니?
백운 장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무어라? 류원 대협이? 감히 누가…!”
“독입니다… 몸에 상처 하나 없이, 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젊은 무사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떨렸다.
진우의 눈이 번뜩였다. 독살. 그것도 천하제일인을 가리는 대회 직전에, 유력한 우승 후보를. 단순한 경쟁심으로 벌어진 일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이대로 대회가 강행된다면, 그 칼날은 누가 될지 모를 암살자의 손에 쥐어질 터였다.
무영은 진우의 어깨를 꽉 잡았다. “잔치가… 피로 물들겠군.”
진우는 류원 대협의 숙소가 있는 방향을 쏘아보았다. 짙은 안개 속에서 마치 무언가가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이미 잔혹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누가, 왜, 류원 대협을 노렸는가? 그리고 그 다음 희생자는 누가 될 것인가? 흑룡비무대의 고요는 비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