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심장, 그 거대한 증기 도시의 가장 깊은 그림자 속. 강진의 작업실은 늘 그랬듯 눅진한 기름때와 금속 냄새로 가득했다. 낡은 작업등 아래, 강진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대충 닦아내며 거대한 태엽 오르골을 응시했다. ‘골동품’이라기보다는 ‘쓰레기’에 가까운, 해체 직전의 건물 폐기물 더미에서 간신히 건져낸 물건이었다. 겉모습은 화려한 황동 장식과 섬세한 조각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내부는 침묵 그 자체.
“쳇, 이번에도 꽝인가.”
그는 투덜거리며 렌치를 내려놓았다. 톱니바퀴는 모두 정위치에 있고, 태엽도 완벽하게 감겨 있었다. 전선 하나 없는 순수 기계식 오르골이니 동력 문제는 아닐 터.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이놈의 오르골을 고쳐 팔아봐야 겨우 한 끼 값이나 건질까 말까 한데, 며칠째 시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르골의 밑판을 꼼꼼히 살폈다. 복잡한 기어 박스와 스프링이 노출된 부분 외에, 화려한 황동 장식이 유난히 두껍게 붙어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봐도 기능적인 부분이라기보단 순전히 미관을 위한 장식 같았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뭔가 께름칙했다. 그는 작은 드라이버를 집어 들고 얇은 틈새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딸깍!’ 예상치 못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황동 장식 패널이 안쪽으로 스르륵 밀려 들어가더니, 그 뒤로 손바닥만 한 빈 공간이 드러났다. 강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흙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인 작은 구멍. 그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기계 부품은 아니었다. 낡은 천 조각에 싸인, 매끄럽고 검은 물체.
“이게 뭐야?”
조심스럽게 천 조각을 걷어내자, 강진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마치 밤하늘을 압축해 놓은 듯한 흑요석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표면에는 미세한 금빛 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알 수 없는 문양을 이루고 있었고, 손에 쥐자 기묘하게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차가운 금속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온기였다.
강진은 호기심에 돌을 이리저리 뒤집어보았다.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그냥 예쁜 돌멩이인가? 실망스러운 마음에 다시 돌을 숨겨진 칸에 넣으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돌 표면에 새겨진 가장 복잡한 문양 중 하나를 스쳤다.
‘쉬이잉-‘
아주 미세한 떨림과 함께, 돌멩이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전기의 스파크와는 확연히 다른, 은은하면서도 몽환적인 푸른빛이었다. 그 빛은 강진의 손가락을 감싸 안는가 싶더니, 이내 정지해 있던 거대한 태엽 오르골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오르골의 내부에서 ‘쨍-‘ 하는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 한 음절, 그러나 지금껏 들어본 어떤 태엽 악기보다도 깊고 따스한 소리였다. 마치 수백 년 전의 공기 속에서 울려 퍼지던 영혼의 소리 같았다.
강진은 얼어붙었다. 그는 다시 돌을 잡았다. 이번엔 의도적으로 손가락으로 문양을 천천히 훑었다. 그러자 아까보다 훨씬 강렬한 진동이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흑요석은 더욱 선명한 푸른빛을 뿜어냈고, 그 빛은 오르골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감쌌다.
‘휘리릭, 휘리릭, 쨍-‘
오르골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흑요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오르골의 섬세한 황동 조각들을 타고 흐르면서, 그 안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지금까지 강진이 들어본 어떤 음악과도 달랐다. 태엽으로 만들어진 소리가 아니었다. 증기기관의 힘으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연주자가 오르골을 악기로 삼아 연주하는 듯, 공간 전체를 황홀경으로 물들이는 신비로운 음악이었다.
“이, 이건….”
강진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의 작업실은 늘 기계의 소음과 금속의 삐걱거림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오직 그 고대적인 선율만이 존재했다. 공기마저도 달라진 것 같았다. 차가운 증기 도시의 공기가 따스하고, 은은하며,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으로 가득 찬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작업실 천장의 가스등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깜빡였다. 주변의 모든 기계들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먼지 쌓인 톱니바퀴들이 제멋대로 삐걱거리는 환청이 들리는가 싶었다. 오르골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음악은 웅장하면서도 애절한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강진은 돌을 쥔 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멀리, 증기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상층부의 거대한 시계탑들이 순간적으로 어둠 속에 잠기는 것을 보았다. 도시 전체의 증기압이 요동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 흑요석은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이것은, 이 기계의 시대가 망각한, 고대의 숨겨진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이 지금, 그의 손안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강진은 전율했다. 경외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왔다.
과연, 이 힘은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