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녹슨 행성의 그림자**
희뿌연 모래폭풍이 휩쓸고 간 거대 도시의 잔해 사이로, 시아는 낡은 작업복 위로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발밑에는 녹슨 금속 조각과 깨진 합성 섬유가 뒤섞여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수백 년 전, 이곳은 ‘아스가르드’라 불리던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그저 잊힌 문명의 거대한 무덤일 뿐이었다.
그녀의 호흡기 필터는 이미 한계치에 다다라 거친 숨소리와 함께 금속성 먼지 냄새를 걸러내고 있었다. 귓가에는 끊임없이 모래바람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시아의 신경은 온통 전방의 붕괴된 빌딩에 집중되어 있었다. 오래전, 이곳은 첨단 통신 장비들을 보관하던 ‘에코 타워’라 불리던 곳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타워 깊숙한 곳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구형 T-23 에너지 변환기였다. 망가진 잔해 속에서 그걸 찾아내야만 했다.
“젠장… 여기도 상황은 똑같군.”
낮게 읊조린 목소리가 먹먹한 호흡기 속에서 맴돌았다. 시아의 손에 들린 탐사 단말기는 약한 전력 신호를 띄엄띄엄 잡아내고 있었다. 희망적인 신호라고 하기엔 너무나 미약했다. 그녀의 우주선, 아니, ‘떠도는 관짝’이라 불리는 낡은 수송선의 점프 코어는 완전히 먹통이었다. T-23 변환기가 없으면 이 죽은 행성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녀 또한 이 행성의 먼지처럼 사라질 터였다.
한때 푸른 생명으로 가득했던 아스가르드 행성은 대균열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우주를 뒤흔든 알 수 없는 재앙, ‘대균열’은 수많은 항성계의 문명을 파괴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파편화된 채 우주를 떠돌거나, 이렇게 죽어가는 행성에 갇혀 버렸다. 시아는 후자에 속하는 운명이었다.
그녀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타고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발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끝없는 회색과 갈색의 바다였다. 수평선 끝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희미하게 보였는데, 대균열 당시 떨어진 운석이 만든 상처였다. 그곳은 생존자들 사이에서 ‘망자의 턱’이라 불렸다.
“여기쯤인데…”
단말기의 신호가 미약하게나마 강해졌다. 그녀는 붕괴된 빌딩의 상층부,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통신국의 제어실로 향했다. 문은 이미 오래전 부식되어 떨어져 나갔고, 내부에는 먼지와 함께 정체 모를 잔해들이 가득했다. 시아는 허리에 찬 다목적 도구를 꺼내 빛을 비추며 내부를 살폈다.
벽면에는 오래된 스크린들이 거미줄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모두 꺼져 있었지만, 중앙 콘솔에는 아직 희미한 전원 표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시아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 콘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때, 바닥에 흩어져 있던 금속 조각 하나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젠장, 이런 곳에까지…!”
시아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본능적인 경고음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낮추고 다목적 도구를 전투 모드로 변환했다. 찰나의 순간, 먼지 더미 속에서 기다란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뼈벌레’라 불리는 아스가르드 토착 변종 생명체였다. 대균열 이후 독성 환경에 적응하며 흉포해진 녀석들은 주로 버려진 기계의 잔류 에너지나 고장 난 전력원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자기파에 이끌려 나타났다.
뼈벌레는 길고 낫처럼 생긴 앞다리로 시아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몸을 날려 피했고, 동시에 다목적 도구에서 짧은 전자기 펄스를 발사했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뼈벌레의 몸 일부가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녀석은 고통스러운 듯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이 녀석은 한 마리가 아니다. 시아의 직감이 속삭였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두 번째 뼈벌레가 그녀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시아는 간신히 몸을 틀어 공격을 막았지만, 뼈벌레의 낫은 그녀의 왼쪽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낡은 작업복이 찢어지며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이 빌어먹을 벌레 녀석들!”
시아는 비명을 지르며 다목적 도구를 휘둘러 두 번째 뼈벌레의 관절을 공격했다. 전자기 펄스는 녀석의 외피를 뚫고 들어가 내부 회로를 교란시켰다. 뼈벌레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고, 그 사이 시아는 첫 번째 뼈벌레에게로 돌진했다. 그녀는 짧게 충전된 전자기 충격파를 녀석의 머리에 직접 발사했다. 섬광과 함께 뼈벌레의 머리 부분이 산산이 부서지며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더 이상 뼈벌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찢어진 어깨를 부여잡고 벽에 기대섰다. 아드레날린이 식자 통증이 확 밀려왔다. 호흡기 필터는 이미 새빨간 경고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시간 낭비할 틈이 없었다.
시아는 다시 콘솔로 시선을 돌렸다. 파괴된 뼈벌레의 잔해 옆에서, 마침내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콘솔 내부, 깨진 보호막 아래에 얇은 금속 케이스가 보였다. T-23 에너지 변환기. 먼지에 덮여 있었지만, 분명 그것이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케이스를 열었다. 내부는 복잡한 회로와 함께 손톱만 한 크기의 광물 결정이 박혀 있었다. 시아는 자신의 단말기를 꺼내 스캔했다.
[T-23 에너지 변환기 – 기능성 34% – 심각한 손상 감지. 추가 부품 필요: 고효율 전류 안정기 x2, 고밀도 전해액 0.5L.]
“빌어먹을…” 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작동은 하지만, 제대로 쓰려면 추가 부품이 필요하다니. 이 행성에서 그 부품들을 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녀는 변환기를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일단 기지로 돌아가서 수리 방안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다른 폐허에서 호환되는 부품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문득, 고요해진 통신국 제어실 너머,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깜빡이는 빛이 시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너무나 멀어서 육안으로는 점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강화된 시야 장비는 그것이 주기적으로 발신되는 신호임을 알려주었다.
[발신지: 아스가르드 궤도. 신호 패턴: 표준 조난 코드 (S.O.S.). 식별 코드: 미확인.]
조난 신호? 이 죽은 행성 궤도에 누군가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건가? 그것도 식별 코드조차 없는 미확인 신호였다. 시아의 등골에 차가운 전율이 흘렀다. 이 신호는 희망일 수도,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행성에서 벗어날 단 하나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망설였다.
시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찢어진 어깨의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자신의 우주선이 있는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T-23 변환기를 수리해야 했다. 그리고 이 미확인 조난 신호의 정체를 밝혀낼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죽음의 행성 아스가르드의 붉은 노을이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살아남기 위한 그녀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