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후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었다. 자정 가까운 시각, 낡은 아파트 복도에는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며 희미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은 20층 높이까지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이 문만 닫으면 그 모든 것이 차단될 것이었다. 지후는 익숙하게 손을 뻗어 벽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소리와 함께 거실에 불이 들어왔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고독.
거실 한복판에 놓인 작은 유리 테이블 위, 며칠 전 사다 둔 빵 봉지가 묘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지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어제 저녁에 똑바로 세워뒀던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봉지를 바로 세웠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아니면 고양이라도 키우나? 혼자 피식 웃었다. 고양이는커녕 식물 하나도 없는 집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거실로 향하는데, 문득 삐걱이는 마루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그 위를 걷는 듯한 소리였다. 지후는 걸음을 멈췄다. “누구… 없어요?” 허공에 던진 목소리는 메아리도 없이 집어삼켜졌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었다. 혼자였다.
그는 다시 걸었다. 침실 문 앞을 지나치려는데, 방문이 스르륵, 아주 미세하게 열렸다. 분명 닫아두었을 터였다. 아침에 나갈 때 닫았던 기억이 선명했다.
지후는 마른침을 삼켰다. 바람? 환기 때문에 창문을 살짝 열어뒀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애써 태연한 척 문을 다시 닫았다. ‘쾅’ 하고 닫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려 했지만, 시선이 자꾸 침실 구석의 옷장으로 향했다. 닫힌 옷장 문틈으로 어둠이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물컵이 쿵,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마치 누군가 그 컵을 살짝 건드린 듯한 소리였다. 물방울 하나가 컵의 표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지후는 몸을 굳혔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졌다. 이 모든 게 착각이라고? 피곤해서? 예민해서?
그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젠장, 미쳤나 봐.”
하지만 그가 중얼거린 순간, 옷장 문이 스르륵, 아까보다 훨씬 더 크게 열렸다. 틈새가 벌어지며 그 안의 어둠이 더욱 깊어진다.
지후는 벌떡 일어났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누구야? 누구 있어?!”
대답은 없었다. 다만, 옷장 안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삐걱이는 나무 냄새, 먼지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한, 싸늘한 냉기.
그때, 탁.
침대 헤드 위 벽에 걸려 있던 액자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얇은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침묵을 찢었다. 액자 속 사진은, 활짝 웃고 있는 어린 지후의 모습이었다. 그 사진이 깨진 유리 파편들 속에 파묻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지후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시선은 여전히 옷장과 깨진 액자 사이를 오갔다.
몸을 돌려 침실 문으로 향하려던 순간,
‘쿵!’
거실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마치 냉장고라도 넘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바닥이 울리고 벽이 진동했다.
지후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용수철처럼 침실을 뛰쳐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 중앙,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거실 한복판에 있어야 할 소파가 벽에 바싹 붙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테이블은 산산조각 나 있었고, TV는 액정이 박살 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듯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그 잔해 한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누군가 아주 가까이 다가와 숨을 쉬는 듯한 섬뜩한 감각.
지후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발악했다.
“나가… 나가라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향해 더듬거렸다. 손잡이를 잡으려던 순간,
‘쾅!’
현관문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마치 거대한 힘에 밀쳐진 듯 활짝 열렸다. 칠흑 같은 바깥 복도의 어둠이 거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그 어둠의 한가운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후는 확신했다.
*누군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의 집 안에, 그리고 문 밖에 서 있었다.
그의 발목을 무언가가 차갑게 휘감는 듯한 섬뜩한 감각과 동시에, 현관문이 맹렬한 속도로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쾅!’
지후는 현관에 갇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