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 눅눅한 철골 더미 아래에서 눈을 떴다. 삐걱이는 구형 침낭이 얇은 막처럼 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스며드는 냉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콘크리트 잔해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희미한 광선이 먼지 낀 공기를 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창문 없는 도시의 새벽은 늘 이런 식이었다. 인공적인 광원만이 존재를 증명하는, 영원히 해가 뜨지 않는 밤의 연속.
“젠장…”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입 안은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어제 저녁에 마지막 남은 정화 필터로 겨우 한 모금 마신 물이 고작이었다. 허리춤에 찬 낡은 장비 벨트에서 작은 금속 용기를 꺼냈다. 잔량 표시등은 깜빡이는 붉은빛으로 조롱하듯 그의 절박함을 알리고 있었다. 전력도, 식수도 바닥이었다. 이대로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진은 몸을 일으켰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낡고 해진 방호복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냉기가 파고들었다. 고철과 폐허의 냄새, 그리고 오염된 비가 남긴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그의 은신처는 무너진 메가코프 빌딩의 지하 주차장 한 귀퉁이였다. 수십 년 전, 이 빌딩이 아직 ‘살아있는’ 존재였을 때, 아마 최신형 플라잉 카들이 질서 정연하게 주차되어 있었겠지. 지금은 녹슨 덩어리들과 깨진 홀로그램 간판 조각들만이 뒹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이미 익숙한 풍경을 스캔했다. 망가진 감시 카메라의 적외선 렌즈를 분해해 만든 조악한 센서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약한 전류가 흐르는 낡은 배선이 진동했지만, 아직 경고음은 없었다. 외부 침입자는 없었다는 뜻.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 회색 지대에서는 모든 것이 적이었다. 보이지 않는 독성 물질부터, 굶주린 다른 생존자들, 그리고 가장 위험한 건… 관리국 드론들이었다.
배낭을 챙겼다. 내용물은 단출했다. 녹슨 멀티툴, 몇 개의 빈 전력 셀, 닳아빠진 필터 없는 마스크, 그리고 가장 귀한 것 – 먼지투성이의 에너지 바 두 개. 이것들이 진이 가진 전부였다.
“오늘도 죽지 말아야지.”
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습관적인 다짐이었다. 살아남는다는 건 이제 고통스러운 의무에 가까웠다.
은신처의 입구를 가리고 있던 삐걱이는 철판을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새벽이라기보다는 영원한 황혼에 가까운 풍경. 회색 먼지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저 멀리, 한때 하늘을 찔렀던 초고층 빌딩들은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낸 채 거대한 유령처럼 서 있었다. 그 빌딩들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간헐적으로 붉은 경고등이 깜빡였다. ‘접근 금지. 오염 구역.’ 진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젠장, 저번 주에 저쪽 구역에서 잡았어야 했는데…”
그는 낡은 홀로맵을 꺼냈다. 전력이 불안정하게 공급되는 화면에는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파란색 점들이 깜빡였다. 버려진 보급소, 혹은 아직 전력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폐쇄된 연구 시설.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다른 생존자들에 의해 털렸거나, 관리국 드론들의 순찰 구역이었다.
진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지도 외곽, ‘황무지’라고 표시된 구역의 한 지점. 오래 전, 대붕괴가 일어나기 전에는 거대한 데이터 센터가 있었던 곳이었다. 접근하기는 매우 위험했지만, 그만큼 아직 온전한 전력 셀이나 식수 정화 장치를 찾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래, 거기로 가보자.”
심장이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곳에서 희망은 가장 위험한 마약과도 같았다. 잠시 행복하게 만들지만, 결국 더 큰 고통으로 몰아넣는.
그는 폐허의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발밑의 깨진 유리 조각과 금속 파편들이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멀리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기계음이 낮게 울렸다. 어쩌면 관리국 드론의 순찰 소리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 황폐한 도시 어딘가에서 아직 가동 중인 낡은 생산 시설의 소리일 수도 있고.
진은 낡은 방호복의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마스크를 조절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금속 필터를 거친 공기는 여전히 불쾌했지만, 독성 먼지를 완전히 거르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그의 눈동자는 굳게 다져진 채,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탐색하고 있었다. 벽의 균열, 떨어진 간판, 그림자 속의 미세한 흔들림까지.
한때 번화했던 상업 지구의 잔해 속을 헤치고 나갔다. 찢어진 간판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끔찍한 소리를 냈다. 부서진 쇼윈도 안에는 녹슨 마네킹들이 기괴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들의 눈은 진을, 이 모든 것의 마지막 증인 중 한 명을 텅 비게 응시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진은 걸음을 멈췄다.
코너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그것은 단순히 전력 부족으로 깜빡이는 낡은 네온사인 조각이 아니었다.
규칙적이고, 강렬했다.
경고등.
그는 즉시 몸을 낮춰 거대한 쓰레기 더미 뒤로 숨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관리국 드론이었다. 그것도 일반 순찰용이 아닌, 무장 드론.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묵직한 공중 순찰 드론 한 대가 코너를 돌아 나타났다.
세 개의 빨간 감시 렌즈가 사방을 훑고 있었다.
진은 숨을 죽였다.
너무 가까웠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었다. 이것은 매 순간, 죽음과의 숨바꼭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