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이상한 이웃
밤 11시, 유진은 책상에 엎드려 늘어져 있었다. 문제집 위로 널브러진 팔은 더 이상 연필을 쥘 힘조차 없는 듯했다. 시계 초침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고요한 방이었다. 거실에서는 낡은 벽시계가 틱, 톡, 틱, 톡, 규칙적으로 시간을 갉아먹는 중이었다.
“아, 진짜. 이놈의 미적분은 왜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나른한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창밖은 온통 회색빛 고층 건물들로 가득했다. 답답한 도심의 야경이 언제나처럼 유진의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대충 묶은 머리는 이미 산발이 된 지 오래였다. 손을 뻗어 한 모금 남은 차가운 녹차를 홀짝였다. 컵받침도 없이 놓인 머그컵이 좁은 책상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컵이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분명히 옆으로 움직였다.
유진은 눈을 비볐다. “피곤했나? 왜 컵이 움직이는 것 같지?”
환각이겠거니 했다. 하도 책을 들여다봤더니 눈이 이상해졌나 보다. 다시 컵을 제자리에 밀어 넣고 펜을 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아까 컵이 스르륵 움직이던 감각만이 맴돌았다.
결국 유진은 문제집을 덮어버렸다. 어차피 오늘은 글렀다.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마저 해야지. 그렇게 결심하고는 침대에 풀썩 몸을 던졌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몸을 받아주었다.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당기고 눈을 감았다. 익숙한 도시의 소음과 낡은 아파트의 미세한 진동이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잠은 금방 찾아올 것 같았다.
그리고, 또다시.
철컥.
누군가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화들짝 눈을 떴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세요?”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거실에서는 벽시계가 여전히 틱, 톡, 틱, 톡, 심장을 조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유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 한번, “누구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진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잘못 들었나? 밤늦게 누가 장난을 쳤나?
안전고리가 걸려 있으니 설마 누가 들어올 리는 없었다. 안심하며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한번 깨진 잠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유진은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어제 잠을 설친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침밥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토스트 한 조각을 입에 물고 현관을 나섰다. 낡은 복도에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감돌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문을 등지고 서 있는데,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스으윽.
복도 끝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퍼뜩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복도만이 길게 이어져 있을 뿐. 착각이겠지. 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밤새 예민해진 신경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탓일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저녁, 집안 공기는 유난히 무겁고 축축했다. 으스스한 기운에 몸을 웅크리며 현관문을 닫았다. 그런데 현관문을 닫자마자, 잠겨있던 방문이 ‘쾅’하고 크게 열렸다.
“헙!”
유진은 너무 놀라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집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분명 닫혀있었다. 유진은 천천히 방문에 다가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싸늘한 냉기가 후욱 끼쳐왔다. 마치 한겨울의 냉골 같은 찬 기운이었다.
“뭐지? 보일러가 고장 났나?”
유진은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침대에 놓아두었던 담요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 밤에 내가 발로 찼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냉기가 가득한 방에서 벗어나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 불을 켜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부엌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쨍그랑!
유진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다가갔다. 설마 도둑? 하지만 현관문은 분명 잠겨 있었다. 부엌으로 들어선 유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어져 있는 머그컵 조각들이었다. 어제 밤에 녹차를 마셨던 그 컵이었다.
“세상에…”
유진은 넋을 잃고 조각들을 바라봤다. 이건 내가 떨어뜨린 게 아니었다. 분명히 식탁 한쪽에 잘 두었는데. 컵 조각 옆에는 물기가 흥건했다. 누가 컵을 떨어뜨리고 도망친 걸까? 아니, 도둑이 컵을 떨어뜨리고 도망갈 리가 없지.
그때, 유진의 뒤에서 무언가가 스르륵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유진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식탁 위에 놓인 과일 바구니였다. 바구니에 담겨 있던 사과 하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데구르르, 데구르르. 유진의 발끝에 닿았다.
“꺄악!”
작은 비명소리와 함께 유진은 뒷걸음질 쳤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집 안에 있었다.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아니면 엄마에게 전화할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무서움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때, 거실에서 다시 쿵, 쿵, 쿵, 발소리가 들렸다. 분명 누군가 걸어 다니는 소리였다. 유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숨을 참고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거실을 지나 유진이 있는 부엌으로 향하고 있었다.
유진은 재빨리 싱크대 아래 수납장 문을 열고 몸을 웅크렸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발소리는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툭.
유진이 숨어있는 수납장 바로 위, 싱크대 상판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유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더 이상 숨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차라리 정체를 알 수 있다면…
그때, 수납장 문틈으로 스며드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아주 낮고, 싸늘하고, 섬뜩한 속삭임이었다. 유진은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붉고 작은 두 개의 점. 마치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깜빡였다.
그것은 유진이 숨어있는 수납장 문틈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유진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유진의 귓가에, 다시 그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드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