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파편 도시 12화: 폐허의 속삭임**

메마른 먼지가 폐허가 된 도시의 숨통을 조였다. 지평선을 삼킨 잿빛 하늘 아래, 뼈대만 남은 고층빌딩들은 녹슨 철근과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을 흩뿌리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 이현은 낡은 방독면 너머로 희뿌연 시야를 좁혔다. 어깨에 멘 낡은 배낭은 텅 빈 지 오래였고, 손에 쥔 금속 탐지기는 미세한 진동조차 전해오지 않았다.

“젠장.”

낮게 욕을 읊조렸다. 벌써 며칠째 식량도, 마실 물도 찾지 못했다. 그나마 남아있던 에너지 바 두 조각은 어제저녁에 이미 바닥났다. 이제 남은 건 이 망할 탐지기와, 언제 작동할지 모르는 구식 스캐너뿐이었다. 스캐너는 폐기된 발전기에서 겨우 찾아낸 코어 셀 없이는 한낱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이현의 눈이 전방의 거대한 회색 덩어리에 고정되었다. 한때는 이 도시의 번영을 상징했을 오피스 빌딩. 이제는 뻥 뚫린 창문들이 마치 텅 빈 눈동자처럼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안 어딘가에, 어쩌면 아직 쓸만한 코어 셀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이라기보다는, 발악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진 입구를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퀴퀴한 곰팡이와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 파편과 콘크리트 조각들이 밟을 때마다 불쾌한 소리를 냈다. 낮인데도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현은 전술 라이트를 켜고 천천히 주변을 탐색했다.

“여기도… 다 끝났군.”

부서진 사무용 가구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핏자국처럼 번진 녹물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닥에 흩어진 서류 뭉치들은 이미 습기와 먼지에 절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한참을 헤매던 이현의 눈에, 부서진 안내판이 들어왔다. ‘서버룸: 5층’. 심장이 순간 거칠게 뛰었다. 서버룸이라면 전력 공급 장치나 예비 코어 셀 같은 것을 보관했을 확률이 높았다.

낡은 비상계단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삐걱거리는 금속음이 고요한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위층 어딘가에서 ‘스스슥’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이현은 그저 바람 소리이거나 자신의 착각이길 바랐다.

5층에 도착했다. 비상계단 문을 열자마자 짙은 냉기 같은 것이 확 끼쳐왔다. 서버룸이었던 곳은 다른 층보다 비교적 덜 파손되어 있었다. 벽에는 거대한 랙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대부분 텅 비어 있거나 부서진 채였다.

이현은 라이트를 이리저리 비추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먼지 쌓인 바닥을 가로질러 가장 안쪽 구석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찾았다!”

녹슨 철제 캐비닛 구석에서 빛바랜 비상 코어 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직육면체 모양의 셀은 아직 외형적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망가진 스캐너를 다시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손을 뻗으려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면에 고정되어 있던 부서진 서버 랙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스르륵’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 기형적으로 튀어나온 관절,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눈 두 개. ‘잔해 속 기생체’, 이 폐허에서 가장 지독한 사냥꾼 중 하나였다. 이 건물 잔해에 동화된 듯한 외피는 주변 배경과 완벽하게 섞여 이현은 코앞에 다가오기 전까지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젠장, 이런 곳에 숨어있었을 줄이야!”

이현은 이를 악물었다. 기생체는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사냥감을 조롱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것의 길고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긁자 ‘끼이이익’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망칠까? 아니, 코어 셀은 반드시 필요했다. 스캐너 없이는 다음 식량을 찾을 수도, 안전한 이동 경로를 확보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죽더라도 저것만은 손에 넣어야 했다.

이현은 재빨리 허리춤의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녹슨 날은 예리하게 빛났다. 기생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움츠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쉬이이익!’

기생체가 거대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것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이현의 심장을 노렸다. 이현은 몸을 왼쪽으로 틀며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 ‘휙’하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동시에 나이프를 휘둘러 기생체의 옆구리를 찔렀다.

‘크아아악!’

기생체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상처는 깊지 않아 보였다. 외피가 워낙 단단했다. 검은 액체가 소량 흘러나왔지만, 기생체는 금세 자세를 고쳐 잡았다. 붉은 눈동자에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시간이 없었다. 이곳에서 오래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다른 기생체를 불러들이거나, 이현 자신이 지쳐 쓰러질 뿐이었다.

이현은 시선을 코어 셀이 있는 곳으로 돌렸다. 기생체는 다시 한번 맹렬히 돌진했다. 이번에는 발톱뿐만 아니라, 길고 유연한 꼬리까지 채찍처럼 휘둘렀다. ‘파팟!’ 소리와 함께 꼬리가 벽을 때려 콘크리트 조각이 튀어 올랐다.

이현은 몸을 최대한 낮추며 코어 셀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기생체가 등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손을 뻗어 캐비닛 깊숙이 박힌 코어 셀을 움켜쥐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콰아앙!’

바로 그 순간, 기생체의 발톱이 이현이 서 있던 캐비닛을 강타했다. 낡은 캐비닛이 찌그러지며 엄청난 금속음을 냈다. 이현은 간신히 코어 셀을 낚아채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팔뚝에 스치는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서버룸 문을 향해 도망쳤다. 기생체는 놓칠세라 뒤를 쫓아왔다. ‘척! 척!’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젠장, 제발!”

이현은 필사적으로 계단을 향해 달렸다. 비상계단 문을 열고 아래로 몸을 던지듯 내려갔다. 기생체가 5층 난간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타다다닥!’

계단을 두 칸씩 건너뛰며 필사적으로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하자마자 이현은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깥의 잿빛 하늘과 탁한 공기가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등 뒤에서 더 이상 추격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팔뚝에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가벼운 상처였지만, 이 황폐한 세상에서는 작은 상처도 치명적일 수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 코어 셀을 넣었다. 그리고 낡은 스캐너를 꺼내 들었다. 금속 탐지기보다 훨씬 크고 투박한 스캐너는 마치 고대의 유물처럼 보였다.

스캐너 측면에 코어 셀을 끼워 넣었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램프에 불이 들어왔다. 죽은 듯 침묵하던 스캐너가 ‘삐빅-‘하는 낮은 전자음을 내며 부팅되기 시작했다.

이현은 숨을 죽이고 화면을 응시했다. 희미하게 빛나는 액정에는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주변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 한쪽에 붉은 점 하나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삑-삑-삑-‘

점은 점차 선명해졌다. 이현의 심장이 다시금 거칠게 울렸다. 붉은 점이 가리키는 곳은, 바로 자신이 방금 나온 오피스 빌딩.

그것도 5층, 서버룸이었다.

분명히 자신을 쫓아오지 않았던 잔해 속 기생체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일 터.

하지만 화면 아래, 또 다른 정보가 깜빡거렸다.

`[미확인 생체 반응 감지: 서쪽 외곽, 활동 레벨 – 매우 높음]`

서쪽 외곽. 그곳은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죽음의 장벽’이라 불리는,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는 금지된 구역이었다.

이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스캐너의 램프는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다시 붉은색으로 불안하게 깜빡였다.

도대체 저곳에 무엇이 있는 거지?

폐허는 다시금 침묵했다. 하지만 이현은 알고 있었다. 이 침묵 아래, 또 다른 거대한 위협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의 손에 들린 스캐너가 ‘삑-삑-삑-‘하며 불안한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