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속삭임
우주선 ‘오리온 호’는 죽은 눈과 같은 칠흑 같은 심연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수천 광년 떨어진 항성계는 희미한 점조차 되지 못했고, 주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암흑, 그리고 어쩌면 영원일지도 모르는 침묵뿐이었다. 선장 리암은 함교의 창밖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은 익숙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어둠은 몇 번을 봐도 적응되지 않았다. 그 암흑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선장님, 특별한 이상 없습니다. 모든 시스템 정상.”
부조종사 지온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신참임에도 제법 침착했지만, 리암은 그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긴장감을 읽었다. 이곳은 미지의 영역, 지도에도 없는 심우주였다. 한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 곳.
“수고했다, 지온. 탐사 범위 확장 유지해.” 리암은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수석 과학자 세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지쳐 보이는 눈 밑 다크서클은 그녀가 지난 며칠 밤낮으로 무언가에 매달렸음을 짐작게 했다.
“세라, 혹시 뭔가 찾았나?” 리암이 물었다.
세라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피곤함 속에서도 타오르는 듯한 열기로 가득했다. “선장님, 방금… 방금 감지된 데이터가 있습니다. 매우 미약해서 놓칠 뻔했어요.”
“미약하다니, 무엇인데?” 이번에는 함교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보안 책임자 젠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젠은 언제나 그랬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라를 응시했다. 이 넓은 우주에서, 그녀는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세라는 손을 움직여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확장했다. “정확한 판독이 어렵습니다. 어떤… 에너지 서명인데, 기존에 알려진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은 확실히 아니에요.”
홀로그램 화면에는 마치 깨진 거울처럼 왜곡된 점 하나가 느릿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주변의 광대한 암흑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신호였다.
“인공물이라는 건가?” 기관장 칼이 통신망으로 연결된 자신의 부서에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불신과 함께 미묘한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칼은 뼛속까지 현실주의자였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가장 먼저 의심을 품는 사람이었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해요.” 세라는 흥분한 듯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심우주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공물을 발견한다는 건…”
“미지의 함선일 수도 있겠군.” 젠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에 찬 개인화기를 만지고 있었다.
“아니요, 젠. 함선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너무 작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태가 일정하지 않아요. 계속 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마치…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리암은 다시 창밖의 어둠을 바라봤다. 그 맹목적인 어둠 속 어딘가에, 세라가 말하는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을 터였다. “오리온 호의 현재 위치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약 3천 킬로미터. 하지만 신호가 너무 불안정해서 정확한 추적이 어렵습니다.”
“접근해. 최대 속도 아님. 조용하고 은밀하게.” 리암이 명령했다. “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전원 공급 장치와 비상 동력원을 점검해 줘. 젠, 보안팀은 비상 대기 상태로 전환한다. 지온, 계속해서 신호 추적해.”
“알겠습니다, 선장님.”
“선장님, 잠시만요.” 세라가 손을 들었다.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합니다. 스캔 데이터를 더 확보해야 해요.” 그녀의 눈은 호기심으로 번뜩였다. 마치 보물을 찾아 헤매는 아이의 눈 같았다.
“젠의 말도 무시할 순 없어, 세라. 미지의 존재에 대한 접근은 항상 위험을 동반한다.” 리암은 단호하게 말했다. “접근 한계선은 내가 정한다.”
오리온 호는 거대한 검은 물고기처럼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조용하고 느리게,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세라가 말했던 ‘신호’는 홀로그램 화면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선장님, 거대합니다.” 지온의 목소리가 떨렸다. “신호의 크기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아까는 작다며?” 칼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니요, 신호 자체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마치 저희가 접근하면서 그 존재가…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세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흥분 외에 다른 감정, 즉 불확실성에서 오는 미약한 두려움이 스치고 있었다.
마침내, 오리온 호의 전면 창으로 그 ‘무언가’의 실체가 드러났다.
숨을 멎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모놀리스였다. 빛조차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검은색. 매끄러우면서도 불규칙한 표면은 그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았다. 주변의 별빛마저 그 존재 앞에서 무색해지는 듯했다. 크기는 소행성보다 거대했으며,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형태는 삐뚤어졌고, 마치 시간이 깎아낸 흔적처럼 위협적이었다. 마치 누가 의도적으로 비틀어 놓은 듯, 보는 이의 시야를 불편하게 하는 불완전한 대칭을 지니고 있었다.
“맙소사…” 지온이 탄식했다.
“저게 대체… 뭐야?” 젠조차도 경직된 표정으로 모놀리스를 응시했다. 그녀의 손은 이제 무의식적으로 권총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세라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홀린 듯 모놀리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떤 에너지 방출도 없습니다. 열도, 방사능도… 아무것도 없어요.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리암은 직감했다. 저것은 ‘죽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깊이 잠들어 있었을 뿐.
오리온 호와 모놀리스 사이의 거리는 약 1킬로미터. 리암이 설정한 한계선이었다. 그들은 고정된 채, 심연 속의 거대한 그림자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선장님, 저기 보세요!” 지온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의 손가락은 모놀리스의 중앙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놀리스의 완벽한 검은 표면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처럼 가늘었던 균열은 순식간에 거미줄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균열의 틈새에서, 어둠조차 빨아들이는 듯한 심연이 비쳐 보였다. 그것은 단순히 균열이 아니었다. 마치 모놀리스 자체가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 틈새가 아주 느리게 벌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함교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그것은 지온의 비명이었다. 그는 갑자기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은 피가 모두 빠져나간 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지온! 무슨 일이야!” 리암이 그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젠이 더 빨랐다. 그녀는 한달음에 지온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아악! 머릿속에… 머릿속에…!” 지온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선장님! 갑작스러운 정신 공격입니다! 비상 방어막 가동해야 합니다!” 세라가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도 창백했지만, 과학자로서의 이성은 놓지 않았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지온은 잠시 몸을 떨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그의 눈은 여전히 크게 뜨인 채, 창밖의 모놀리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영혼이 빨려 나간 듯, 텅 빈 눈동자였다.
“지온!” 리암이 그제야 달려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맥박은 뛰고 있었지만, 의식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알 수 없는 경외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모놀리스의 균열은 더욱 벌어져, 그 안에서 아주 희미한, 하지만 확연히 느껴지는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빛도, 그림자도 아니었다. 그저… 존재 자체의 왜곡. 존재 자체의 위협이었다.
“선장님, 어쩌죠?” 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이제 흥분도, 호기심도 모두 잃고 순수한 공포에 질려 있었다.
리암은 창밖의 모놀리스와, 그리고 정신을 잃은 채 자신의 품에 안긴 지온을 번갈아 봤다. 이 미지의 존재는 그들의 가장 큰 발견이 될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가장 끔찍한 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접근한다. 추가 탐사팀 준비해.” 리암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의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어떤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젠, 세라. 우리가 직접 들어간다.”
두려움 속에서도, 그들은 이 불가해한 진실의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이 심연의 그림자가 무엇을 품고 있든, 그들은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던 것이다.
모놀리스의 균열은 이제 완연한 틈새가 되어, 그 안쪽의 칠흑 같은 어둠이 외부로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죽은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소리처럼, 오리온 호의 모든 승무원들의 귓가에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들어와라. 들어와라.*
그것은 말 없는 초대이자, 거부할 수 없는 저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