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한 줄기 들지 않는 고탑의 서재, 그 밀폐된 공간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을 때, 이계의 명탐정 류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싸늘한 눈으로 사건 현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회색 눈의 현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이세계로 넘어와 전생의 지식을 잃지 않은 그는, 마법과 신비가 지배하는 이곳에서 오직 논리와 이성만을 무기로 삼아 수많은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해왔다.
이번 사건은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다.
피해자는 유명한 연금술사이자 희귀 마법 유물 수집가인 이졸데 남작부인이었다. 그녀는 평소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서재 보안에 신경을 썼다. 문은 안에서 잠그는 고대 룬 문양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을 막는 강력한 마법 방벽까지 쳐져 있었다. 창문은 두꺼운 철창으로 막혀 있었고 역시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밀실’이었다.
류진이 서재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문 주위에는 옅은 그을음 자국이 선명했다. 남작부인이 아침 식사에 나타나지 않자 시종들이 찾아왔고, 마침내 경비병들이 마법 방벽을 억지로 깨고 룬 문양 자물쇠를 부숴 안으로 진입했다는 증거였다.
“회색 눈의 현자님, 어서 오십시오.”
젊은 기사 카일이 류진을 맞았다. 카일은 이제 막 기사가 된 햇병아리였지만, 류진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며 그의 추리를 경외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의 푸른 눈에는 걱정과 혼란이 가득했다.
“상황은 들었습니다, 카일 경. 밀실 살인, 게다가 마법 방벽까지 뚫고 들어갔다고요?” 류진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카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 룬 문양 자물쇠는 물론이고 마법 방벽도 여전히 작동 중이었습니다. 저희가 방벽을 깼고, 자물쇠를 부쉈습니다. 이졸데 남작부인께서는 매일 밤 직접 방벽을 활성화하고 문을 잠그셨다고 합니다.”
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종이 냄새와 오래된 마법 약초 향이 뒤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넓은 서재는 책과 마법 도구, 희귀한 유물들로 가득했다. 한쪽 벽난로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그 옆으로는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책장이 버티고 있었다.
시신은 책상에 엎드린 채였다. 등에는 화려하게 세공된 단도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칼자루에는 낯선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남작부인의 손에는 서재 문을 여는 데 사용되는 룬 문양 열쇠가 꽉 쥐어져 있었다.
“사망 시각은 대략 새벽 2시경으로 추정됩니다. 단도로 인한 치명상이고요.” 카일이 침통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무도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류진은 아무 말 없이 시신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서재 구석구석을 훑었다. 핏자국이 묻은 돋보기를 들어 시신의 손에 쥐어진 열쇠를 살폈다.
“이 열쇠는… 남작부인이 스스로 문을 잠그고 쥐고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까?” 류진이 물었다.
“네, 그렇다고 합니다. 남작부인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열쇠를 몸에 지니고 주무셨다고 합니다. 아마 살해당한 후에도 열쇠를 꽉 쥐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류진은 열쇠를 놓았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로 향했다. 보통 그 자리에는 남작부인이 아끼던 ‘루미너스 오브’라는 마법 유물이 놓여 있었지만, 지금은 비어 있었다. 루미너스 오브는 작은 물체를 정교하게 공중에 띄우거나 이동시키는 능력을 가진 마법 수정구였다.
“루미너스 오브는 어디 있습니까?” 류진이 물었다.
“사라졌습니다. 도난당한 것 같습니다.” 카일이 답했다.
류진은 다시 서재의 문으로 다가갔다. 자물쇠는 부서져 있었지만, 문짝 자체에는 큰 손상이 없었다. 그는 문설주에 남아있는 마법 방벽의 그을음 자국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카일 경, 경비병들이 마법 방벽을 깼다고 했죠? 그때 마법의 에너지는 어느 방향으로 폭발했습니까? 안에서 밖으로? 아니면 밖에서 안으로?”
카일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밖으로, 저희 쪽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꽤 강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군요.” 류진의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번졌다. “방벽은 안에서 활성화되었고, 우리가 문을 열려고 시도했을 때까지도 여전히 작동 중이었으며, 그 에너지는 외부로 분출되었다… 이 모든 것은 살인자가 아직 이 방 안에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카일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현자님,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살인자는 문을 열고 나갔을 텐데요. 문을 열었다면 방벽은 해제되었어야 합니다.”
“아니요, 카일 경. 살인자는 이 방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류진은 손가락으로 문 주변을 가리켰다. “여기 그을음 자국을 보십시오. 방벽은 문 전체를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문 주위에 얇은 막처럼 쳐져 있었습니다. 이 막은 물리적 충격을 막는 동시에, 특정한 방식으로 해제되지 않는 한 마법 에너지를 방출하여 침입자를 막습니다. 우리가 깬 방벽은 ‘외부 침입’에 대한 반응이었을 뿐입니다.”
“그럼 살인자는 어디서….”
“살인자는 이 방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말이죠. 그리고 떠난 후에 다시 방을 밀실로 만들었습니다.”
류진은 다시 시신에게 다가갔다. 그의 시선은 단도를 스쳐 지나 열쇠에 멈췄다. “남작부인이 열쇠를 꽉 쥐고 있었다고 했지만, 제 눈에는 오히려 열쇠가 손에 ‘들려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후경직이 일어난 후에 누군가 이 열쇠를 쥐여준 듯한 인상입니다. 그리고 이 룬 문양 자물쇠를 보십시오.”
류진은 부서진 자물쇠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 자물쇠는 겉으로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열쇠 구멍입니다.”
카일이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았지만,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다.
“이 자물쇠는 룬 문양 열쇠를 사용하여 걸쇠를 잠그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열쇠 구멍은 아주 가늘고 긴 실이나 철사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한 틈이 있습니다. 살인자는 이졸데 남작부인을 살해한 후, 열쇠를 가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았겠죠. 남작부인이 활성화했던 마법 방벽은 여전히 문 주위에 남아 외부의 침입을 막으려 했을 겁니다.”
류진은 다시 문 주위의 그을음 자국을 가리켰다. “우리가 방벽을 깼을 때 에너지가 밖으로 분출된 것은, 마법 방벽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감지하고 반응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살인자는 이미 밖으로 나간 뒤였죠.”
“하지만 어떻게 다시 문을 잠그고 열쇠를 안으로 돌려보냈단 말입니까? 게다가 열쇠를 남작부인의 손에 쥐여주기까지?” 카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여기에 ‘루미너스 오브’가 사용된 겁니다.” 류진이 사라진 오브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살인자는 남작부인의 루미너스 오브를 훔쳤습니다. 루미너스 오브는 작은 물체를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죠. 살인자는 문밖에서 루미너스 오브를 사용해 열쇠를 열쇠 구멍으로 다시 밀어 넣었고, 쓰러진 남작부인의 손에 교묘하게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가늘고 튼튼한 실을 열쇠 구멍으로 넣어 안쪽의 걸쇠를 조작해 문을 다시 잠갔습니다. 마법에 저항성이 있는 마수의 비단실 같은 것이었겠죠.”
류진은 허리를 숙여 열쇠 구멍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열쇠 구멍 안쪽에 아주 미세하고 희미한 실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 정도로 정교하게 걸쇠를 조작하려면 반복적인 마찰이 있었을 겁니다.”
카일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열쇠 구멍과 류진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살인자는 남작부인을 죽인 후, 방벽이 여전히 활성화된 채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방벽은 오직 외부 침입을 감지할 뿐, 내부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문밖에서 루미너스 오브와 실을 이용해 다시 문을 잠그고 열쇠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마법 방벽은… 우리가 침입자로 간주될 때까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루미너스 오브의 사용법을 잘 알고, 룬 문양 자물쇠의 약점을 꿰뚫고 있으며, 남작부인의 서재 구조와 보안 체계까지 상세히 아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류진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루미너스 오브가 없어진 사실을 다른 이들이 알기 전에 범행을 완료해야 했겠죠. 남작부인이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서재 문을 잠그는 습관을 이용한 겁니다. 살인자는 이미 그녀의 생활 패턴을 모두 꿰고 있었습니다.”
류진은 서재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 집안에 남작부인의 일상생활과 서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루미너스 오브를 탐낼 만한 인물… 그리고 이 졸데 남작부인 사망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자가 범인이겠죠.”
카일은 고개를 숙였다. 류진의 추리에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마법으로 단단히 봉인된 밀실도, 논리의 칼날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무력했다. 이계의 명탐정 류진은 다시 한번, 마법의 세계에서 이성의 빛을 증명해 보였다. 이제 남은 것은 카일이 그의 추리를 토대로 범인을 찾아내는 일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