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2화: 깨어난 흔적

이진우는 망치질을 멈췄다. 낡은 방수포 아래 콘크리트 벽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것보다 더 강렬한 무언가가 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낡은 한성 구도심 재개발 현장 지하, 버려진 하수도관과 연결된 좁은 굴은 습기와 어둠으로 가득했다. ‘역사 보존팀’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그의 임무는 으레 이런 허드렛일이었다.

“젠장, 여기가 무슨 보물창고라고,” 진우는 중얼거렸다. 그의 손에 들린 쇠망치와 정은 묵직했지만, 이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고작 녹슨 파이프와 곰팡이뿐이었다. 그래도 윗선에서 굳이 이 오래된 구역의 지반 보강 공사 기록까지 들춰내며 이곳을 파보라 지시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는 다시 한번 콘크리트 벽에 정을 갖다 댔다.

*쿵.*

진우의 손목에 찌릿한 울림이 전해졌다. 망치의 충격이 아니라, 벽 *안쪽*에서부터 시작된 듯한 차가운 진동이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한 잔진동이라고 하기엔 그 느낌이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그는 손전등을 들어 벽을 비췄다. 낡은 콘크리트 벽은 세월의 흔적과 습기에 찌들어 얼룩덜룩했다. 그런데 아주 미세하게, 콘크리트 표면의 한 부분이 다른 곳보다 훨씬 매끄러웠다. 마치 전혀 다른 재질의 무언가가 그 아래에 숨겨져 있는 것처럼.

진우는 조심스럽게 망치질을 다시 시작했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자, 예상대로 그 아래에서 매끄럽게 다듬어진 석판이 드러났다. 돌의 재질은 이곳에서 흔히 발견되는 화강암이 아니었다. 옅은 회색빛을 띠면서도 표면은 미세하게 빛을 반사했다. 수십 년 전 부었다는 콘크리트가 무색하게 석판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진우는 손으로 석판의 표면을 쓸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섬뜩했다.

그는 더욱 집중해서 주변의 콘크리트를 걷어냈다. 석판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그리고 석판의 정중앙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움푹 파인 부분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비추자, 그 안에는 거의 마모되어 희미해진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손가락으로 그 문양을 천천히 덧그렸다.

손가락 끝이 문양의 마지막 선에 닿는 순간,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매우 작고 건조한 소리였지만, 이 고요한 지하 굴에서는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진우가 기댄 석판이 안쪽으로 스르륵 밀려들어갔다. 그리고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옆으로 미끄러져 열렸다.

새까만 어둠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썩은 흙냄새 대신, 이상하리만치 깨끗하고 건조한 공기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온 듯한, 잊힌 시간의 냄새였다. 진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손전등을 어둠 속으로 비췄다.

좁은 통로가 그의 발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통로는 완만하게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고, 몇 걸음 가지 않아 원형의 공간과 연결되었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원형의 방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다. 벽면에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문양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구상에는 없는 별자리들, 날개 달린 형상들, 그리고 복잡한 선으로 이루어진 에너지의 흐름 같은 것들이었다. 손전등 빛에 반사되어 문양들이 희미하게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곳의 공기는 외부의 습기와는 달리 완벽하게 건조하고 시원했다.

방의 중앙에는 높이 솟은 제단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 위에는 오직 하나의 물체만이 올려져 있었다. 그것은 검은색의 돌이었다. 아니, 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었다. 흡사 흑요석 같았지만, 그 표면은 은은한 보랏빛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그 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가는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진우는 홀린 듯 제단으로 다가갔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다. 알 수 없는 경외감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그를 지배했다. 그의 손이 저절로 뻗어 나갔다. 마치 꿈속을 걷는 것처럼, 그의 의지는 어느새 무의미해져 있었다.

손가락 끝이 맥동하는 검은 돌에 닿는 순간, ‘쯔아아아악!’ 하는 소리가 진우의 귓가에서 울렸다. 전기에 감전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순수한 에너지의 충격이 그의 전신을 관통했다. 동시에 방 안을 가득 채운 문양들이 보랏빛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벽 전체가 보랏빛 불꽃으로 일렁이는 환상적인 광경에 진우는 숨을 멈췄다. 뼛속까지 울리는 묵직한 진동이 그의 의식을 흔들었다.

그의 눈앞에서 수많은 영상이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다. 상처 하나 없는 푸른 대지, 여러 개의 달이 떠 있는 밤하늘, 빛으로 지어진 듯한 거대한 건축물들, 그리고 기이한 의식을 행하는 알 수 없는 형상들. 고대의 목소리들이 귀가 아닌, 그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려 퍼졌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개념 그 자체였다. 이해가 물밀듯이 밀려들어 왔다.

그는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혼돈 속에서, 거대한 선택의 순간을 보았다. 마치 짐을 지워지는 듯한 느낌, 알 수 없는 힘과 지식이 그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너무나 방대하고 압도적이어서, 그의 정신이 찢어지는 듯했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보랏빛 불꽃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방은 다시 은은한 잔광에 잠겨 있었다. 제단 위의 돌은 여전히 검은색이었지만, 이진우는 느낄 수 있었다. 돌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그의 몸 안에서 미세한 떨림이 시작되었음을. 피부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낮은 울림이 그의 모든 세포를 자극하는 듯했다. 그는 지금, 과거의 그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가 들어왔던 통로 저편에서, 금속이 돌에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으으윽.* 그리고 뒤이어 발소리. 투박하고 무거운, 그러나 놀라우리만큼 조심스러운 발소리였다. 그의 동료들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싸늘한 전율이 진우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이곳에서 발견한 것을 혼자 간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을 느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 비밀을 뒤쫓고 있었고, 그는 그저 우연히 먼저 도달했을 뿐이었다.

통로 입구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길고 거대한 그림자.

진우는 본능적으로 제단 위의 돌을 움켜쥐었다. 손바닥 안에서 돌이 미세하게 떨리며 따뜻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어둠 속에서 굵고 낮게 깔린 목소리가 울렸다.

“결국, 이곳이었군.”

이윽고 그림자 속에서 한 인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에 비친 실루엣은 동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위압적이었다. 희미한 빛 아래, 그의 손에 들린 무언가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진우는 알 수 없는 힘을 손에 쥐고, 미지의 적과 마주 선 채로 절망적인 선택의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