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깊고, 청운문(靑雲門)의 새벽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그날 새벽, 고요는 비명 한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비명은 운룡곡(雲龍谷)의 가장 깊숙한 곳, 문파의 정신적 지주이자 최고 원로인 현천(玄天) 대사부의 거처에서 터져 나왔다.
“대사부님! 대사부님!”
소연(素延)은 문고리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 수련실은 삼중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현천 대사부 본인의 영력으로 걸린 잠금, 두 번째는 청운문의 만년 수호진이 새겨진 강철문, 마지막 세 번째는 문파 최고 경지에 이른 자만이 풀 수 있는 금제술 봉인이었다. 단 한 번도 외부인이 침입한 적 없는, 현천 대사부가 수십 년간 정진해온 성역이었다.
소연은 매일 새벽 대사부에게 아침 차를 올리는 문하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불안감이 등골을 타고 올랐다. 결국 금제술 봉인 해제 권한이 있는 진영(眞影) 문주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진영 문주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했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문주가 직접 나서서 금제술 봉인을 풀었다. 영력이 파동을 일으키며 푸른빛이 사그라졌다.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진영 문주와 소연은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수련실 내부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갈했다. 중앙에는 현천 대사부가 좌정하던 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단 위에…
“대사부님!”
소연의 비명이 다시 터져 나왔다. 현천 대사부가 단정하게 좌정한 채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작은 비수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 비수에서는 검붉은 피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 있었다.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진 채,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정했던 수련복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진영 문주가 서둘러 다가가 현천 대사부의 맥을 짚었다. 희미한 온기조차 없었다. 이미 숨을 거둔 지 오래된 듯했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 이건… 불가능해.”
문주는 중얼거렸다. 세 겹의 봉인, 문주 자신조차 현천 대사부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 게다가 수련실 내부에는 어떠한 틈도, 흔적도 없었다. 창문은 물론 환기구조차 영력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밀실 중의 밀실이었다.
“누가… 누가 감히 이런 짓을!”
문주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청운문의 핵심 전력이 사라진 것도 문제였지만, 그 어떤 흔적도 없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더욱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을 듣고 달려온 다른 원로들과 호법들이 수련실 앞에 모여들었다. 그들 모두 현천 대사부의 참혹한 죽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포는 전염성이 강했다. 감히 신선에 가까운 경지에 오른 대사부를 살해하고, 심지어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범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혹시 문파 내부의 소행인가? 아니면 외부의 마수인가?
“범인은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내부에는 대사부님의 시신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봉인 역시 외부의 침입 흔적 없이 완벽하게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한 호법이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진영 문주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건 인간의 소행이 아니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때, 한 노원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문주님, 이런 난해한 사건이라면… 한 사람밖에는 없습니다. 운암산(雲巖山)에 은거하는, 그 청명(淸明) 대사입니다.”
청명 대사.
그의 이름이 거론되자 수련실 안의 어둡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희미한 기류가 일렁이는 듯했다. 그는 강호에 떠도는 전설 속 인물이었다. 무림의 가장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논리적으로 풀어냈다는, 천재적인 추리력의 소유자. 하지만 그는 공식적인 문파 소속도 아니었고, 그의 행적은 언제나 베일에 싸여 있었다.
진영 문주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청명 대사를 부르는 것은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당장 사람을 보내 청명 대사를 모셔와라! 어떤 대가를 치르든 좋다!”
***
세월을 초월한 듯 고요한 운암산, 그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초가집에서 청명은 책을 읽고 있었다. 낡고 해진 고서에는 기이한 부호들과 알 수 없는 그림들이 가득했다. 그의 곁에는 차가 식어 있었고, 창밖으로는 푸른 안개가 자욱했다.
그때, 초가집의 문이 다급하게 두드려졌다.
“청명 대사님! 청명 대사님, 계십니까?”
청명은 천천히 책을 덮었다. 그의 눈빛은 맑고 깊었으나, 어딘가 허공을 응시하는 듯 몽환적이었다. 그는 한 번도 세상의 소란에 신경 쓰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늘 그를 찾았다.
“들어오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평온했다.
청운문에서 온 전령이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청명의 눈빛과 마주하자마자 저절로 숙연해졌다.
“대사님, 청운문에 큰 변고가 생겼습니다. 현천 대사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밀실에서!”
청명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래서, 내가 필요한 것이겠지.”
전령은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문주님께서 대사님께 간곡히 청하셨습니다. 부디… 부디 청운문에 닥친 이 기이한 살인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시옵소서.”
청명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가자.”
***
청운문에 도착한 청명은 수련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진영 문주와 원로들을 마주했다. 그들은 모두 그를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청명 대사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진영 문주가 정중히 인사했다.
청명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곧장 수련실로 향했다. 문주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대사님,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말씀드립니다만… 내부에는 어떠한 침입 흔적도, 외부로 나가는 길도 없습니다. 대사부님은 결코 밖으로 나가지도, 외부에서 침입한 이에게 당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마치…”
진영 문주의 말을 끊고, 청명이 나직하게 말했다.
“자살도 아니고, 타살도 아닌, 스스로 존재를 지워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겠지.”
문주는 입을 다물었다. 청명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눈으로 수련실의 모든 것을 훑었다. 바닥의 미세한 먼지 한 톨, 벽면에 새겨진 영력 문양, 공기 중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류의 흐름까지. 그의 시선은 그 어떤 것도 놓치지 않는 듯했다.
수련실 중앙의 단에 현천 대사부의 시신이 여전히 놓여 있었다. 박혀 있는 비수와 굳은 피, 그리고 경악에 찬 얼굴.
청명은 시신의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그는 비수에는 손대지 않고, 현천 대사부의 손과 발, 그리고 옷깃 등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그 어떤 탐정도 보여주지 못할 집중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대사부님께서는 평소에 주로 어떤 수련을 하셨습니까?” 청명이 불쑥 질문했다.
진영 문주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주로 심법과 영력 제어를 연마하셨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무상무형공(無相無形功)’이라는, 기를 형체 없이 운용하는 것에 집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청명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닥을 응시했다. 현천 대사부의 시신 발치, 정확히는 단과 바닥이 만나는 지점에 미세한 흠집이 보였다. 아주 작고 희미해서 육안으로는 알아채기 힘든 정도였다. 마치 무언가 아주 작은 것이 스쳐 지나간 흔적 같았다.
“이곳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입니까?” 청명이 다시 물었다.
“네, 대사님.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영력조차 외부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한 원로가 자신 있게 답했다.
청명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수련실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굳은 표정으로 진영 문주를 바라보았다.
“문주님, 현천 대사부님께서는 결코 홀로 이 밀실에서 살해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실내에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범인은 분명히 이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안에 있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범인이 아직 이 안에 있다는 말은, 지금 이 방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중 하나가 범인이라는 뜻이 아닌가. 진영 문주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청명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범인은 이 방에 들어올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련실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경악에 찬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범인은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이 완벽한 밀실에서 살인을 저질렀단 말인가? 청명 대사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은, 이미 모든 진실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이것은 귀신의 소행이 아닙니다. 아주 교활하고, 영리한… 인간의 소행입니다.”
밤은 깊고, 청운문의 미스터리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