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독립적인 단편 소설

김지훈은 지루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출퇴근 시간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북적이는 퇴근길 지하철 안은 꿉꿉한 땀 냄새와 피로에 절은 사람들의 한숨으로 가득했다. 지훈은 좁은 공간 속에서 겨우 몸을 지탱한 채 창밖을 응시했다. 강남 빌딩 숲을 벗어나 한강을 건너자, 익숙한 고층 건물들 사이로 낡고 허름한 주택가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재개발 구역. 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또 저기야?” 친구 민준이 톡을 보냈다.

“응. 오늘 저녁에 퇴근하고 잠깐 들러보려고. 여기 곧 다 밀어버릴 거라던데.”

“야, 귀신 나올라. 조심해라.”

지훈은 픽 웃었다. 귀신보다는 오래된 벽돌 틈새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그를 유혹했다. 그는 도시의 폐허와 숨겨진 골목길을 탐험하는 것을 즐겼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오래된 것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현대 도시의 활기 넘치는 모습 뒤에 가려진 낡고 잊혀진 것들이 언제나 그를 불러냈다.

그날 저녁, 지훈은 지도 앱에서조차 희미하게 표시된 낡은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은 담쟁이덩굴과 녹슨 철문으로 뒤덮여 있었다. 공사장 펜스 너머로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지만, 이 골목만큼은 다른 시간 속에 갇힌 듯 고요했다. 오래된 비린내와 흙먼지 냄새가 섞인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어느 순간, 지훈의 눈에 낡은 목조 대문 하나가 들어왔다. 대문은 이끼로 뒤덮여 있었고, 빗장도 이미 부식되어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다. 낡은 상가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마치 이 도시의 모든 것이 그 존재를 잊으려 애쓴 흔적 같았다. 지훈은 호기심에 이끌려 조심스레 대문을 열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풀풀 날렸다.

대문 안쪽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도시의 심장부에서 완전히 잊혀진 듯한 작은 사당이 있었다. 돌담은 무너져 내렸고, 기와지붕은 이미 반쯤 내려앉아 있었다. 오래된 나무 기둥에는 검게 그을린 흔적과 함께 알 수 없는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훈은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부서진 기왓조각들과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이 가득했다. 사당의 한쪽 구석, 깨진 석등 옆에 놓인 작은 석함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아무도 손대지 않은 듯, 흙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석함 주변의 공기마저도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차갑게 느껴졌다.

지훈은 석함에 다가가 손으로 조심스럽게 먼지를 걷어냈다. 뚜껑은 낡았지만 예상외로 부드럽게 열렸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그러나 플래시 빛을 비추자, 가장자리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이게 뭐야?”

지훈은 손가락으로 돌멩이를 집어 올렸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것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크기의 검은 돌이었다. 마치 흑요석처럼 매끄럽고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손에 닿자마자 미지근한 온기가 퍼지는 듯했다. 표면에는 아주 미세하고 복잡한 은빛 줄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플래시 빛에 반사될 때마다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그는 돌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줄무늬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착각마저 들었다. 고대의 언어 같기도, 생명의 혈관 같기도 했다.

묘하게 이끌렸다. 그는 돌을 주머니에 넣었다. 왠지 모르게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사당을 뒤로하고 다시 복잡한 도시의 품으로 돌아왔다.

사당을 나와 다시 북적이는 거리로 돌아왔을 때, 지훈은 여전히 손에 느껴지는 돌의 온기를 의식했다. 낡은 골목을 벗어나 번화가로 접어들자, 퇴근 인파가 그를 사정없이 밀쳐냈다.

“아, 죄송합니다!”

누군가 어깨를 강하게 부딪쳤고, 지훈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순간 주머니 속의 돌이 묵직하게 느껴지며, 손가락 끝에 마치 정전기가 튀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스쳤다.

동시에, 그의 시야가 일렁였다. 마치 뜨거운 공기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주변 풍경이 물결치듯 일그러졌다. 반짝이던 빌딩의 유리창들이 순간 회색빛으로 바래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먹먹한 메아리로 변했다. 번쩍! 눈앞의 신호등이 마치 쇼트가 난 것처럼 섬광을 터뜨리며 깜빡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 숨을 들이쉬는 한 번의 시간 동안 벌어졌다.

지훈은 눈을 비볐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선명했다. 빌딩은 다시 반짝이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오갔다. 신호등도 평온하게 녹색 불을 깜빡이고 있었다.

“방금… 뭐였지?”

식은땀이 등에 흘렀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움켜쥐었다. 돌은 여전히 따뜻했다. 착각이었을까?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걸까? 아니면…

집에 돌아와 불을 켜자, 지훈은 곧장 서재로 향했다. 그는 검은 돌을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미끈한 표면은 조명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다시 손에 쥐어보니,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한 온기가 느껴졌다. 손바닥을 타고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었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지훈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돌에 집중했다. ‘무언가… 보여줘.’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실망했다. ‘역시 피곤해서 그랬나.’
그 순간, 책상 한쪽에 놓여 있던 낡은 탁상시계가 ‘탁’ 소리를 내며 멈췄다. 초침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훈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는 다시 돌을 꽉 쥐었다. 이번에는 탁상시계를 응시했다. ‘움직여!’

초침이 멈춰있던 그 자리에서 미세하게 ‘틱’ 하고 한 칸 움직였다. 그리고는 다시 멈췄다.

“이, 이건…!”

지훈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돌을 내려놓았다. 손에서 돌이 떨어지자마자 탁상시계는 다시 ‘틱, 틱’ 소리를 내며 평소처럼 움직였다.

지훈은 테이블에 놓인 컵을 바라보았다. 돌을 다시 쥐고, 마음속으로 컵을 ‘들어 올리라’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돌을 꽉 쥐었다. 이번에는 머릿속을 비우고, 오직 ‘에너지’라는 추상적인 생각만을 떠올렸다. 뭔가 막연하고 거대한 힘이 그의 손끝에서부터 돌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책상 위의 작은 연필이 갑자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털썩. 금세 다시 떨어졌지만, 분명히 그의 의지와 함께 움직였다.

지훈은 입을 틀어막았다. 미쳤다. 그는 방금, 고대 사당에서 주운 검은 돌멩이로… 염력을 사용한 것이다. 도시 한가운데의 평범한 아파트에서.

“세상에… 이건 대체… 뭐야?”

검은 돌은 여전히 그의 손바닥 위에서 미지근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온기 속에서, 지훈은 자신이 이 도시의 숨겨진 비밀을 건드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평범한 삶은, 이제 막 잊혀진 고대의 힘에 의해 영원히 바뀔 참이었다. 창밖의 도시 야경은 여전히 번잡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 빛 속에 감춰진 어둠 속에서,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그 문을 통과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