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심장 도시의 가장 낮은 곳, 칠흑 같은 그림자 속에 파묻힌 지하 작업실은 흡사 거대한 기계 괴물의 내장 같았다. 톱니바퀴와 스프링, 황동과 구리가 뒤엉킨 복잡한 풍경 위로 증기 뿜는 소리가 규칙적인 호흡처럼 울렸다. 벽에는 알 수 없는 설계도와 스케치들이 빼곡했고, 한가운데 놓인 작업대 위에는 기이하리만큼 정교한 자동 인형의 상체가 번쩍이는 가스등 불빛 아래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진은 마른 손가락으로 자동 인형의 눈이 될 에테르 광학 렌즈를 조심스레 맞추었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와 땀으로 번들거렸지만, 두 눈만은 깊은 우물처럼 가라앉아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지난 5년간, 그의 삶은 이 차가운 지하 작업실과,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존재했다.
“유정혁….”
강진의 입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름만으로도 뼈와 살이 깎이는 듯한 고통이 심장을 훑고 지나갔다. 정혁, 한때는 서로의 심장을 맞대고 꿈을 이야기했던 벗이었다. 함께 ‘무한 동력의 심장’을 연구하며 밤낮없이 매달렸던 시절, 둘의 우정은 강철보다 단단하고, 톱니바퀴보다 정교하게 엮여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한순간의 배신으로 산산조각 났다.
강철심장 도시에서 가장 성대한 발명품 박람회가 열리던 날, 정혁은 강진의 손때 묻은 설계도와 완성 직전의 시제품을 들고 무대 위에 섰다. ‘무한 동력의 심장’은 ‘유정혁의 기적’으로 둔갑했고, 강진은 허위 비방과 사기 혐의로 도시의 가장 어둡고 차가운 감옥에 던져졌다. 정혁은 그의 모든 것을 빼앗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강진의 명예, 기술, 심지어는 함께 꿈꾸던 미래까지.
강진은 감옥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복수라는 단 하나의 불꽃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는 그림자처럼 탈옥했고, 도시의 가장 밑바닥에서 숨어 지내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손가락이 닳고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오직 정혁을 무너뜨릴 기계를 만들었다.
완성된 자동 인형은 인간의 형상을 닮았지만, 훨씬 위압적이었다. 강철 골격 위로 황동 갑옷이 번쩍였고, 어깨에는 증기압을 이용한 압축식 발사장치가 달려 있었다. 두 눈에서는 에테르 광선이 번쩍였고, 움직일 때마다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는 기분 나쁜 기계음이 들렸다. 강진은 그 이름을 ‘망집(妄執)’이라 불렀다. 자신의 광기와 집념이 빚어낸 걸작이었다.
“때가 왔다.”
강진의 중얼거림과 함께 작업실의 증기 밸브가 열렸다. 굉음과 함께 묵직한 자동 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철심장 도시의 가장 높은 곳, 유정혁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오늘 밤, 그의 ‘강철 심장’ 완공 기념 연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도시의 모든 귀족과 유력 인사들이 모여 정혁의 위업을 칭송할 터였다.
그곳이 바로 강진의 무대였다.
***
유정혁의 저택은 거대한 황동 시계탑을 중심으로 뻗어 나가는 거대한 기계 장치 같았다. 수많은 톱니바퀴와 기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저택 전체를 감쌌고, 화려한 증기등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연회장은 온갖 진귀한 기계 장식품들과 발명품들로 가득했다. 연회복을 차려입은 귀족들은 샴페인 잔을 들고 서로의 안색을 살피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들의 중심에는 유정혁이 있었다. 은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넘기고, 섬세한 자수가 놓인 연회복을 입은 그는 모든 이의 찬사를 받으며 우아하게 웃었다. 그의 옆에는 거대한 투명 원통 속에 떠 있는 ‘강철 심장’, 즉 강진이 만들었던 ‘무한 동력의 심장’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에테르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주변을 신비롭게 밝혔다.
“이 모든 영광은 저의 것입니다.” 정혁은 잔을 들고 우아하게 연설했다. “강철심장 도시를 영원히 밝힐 이 위대한 심장, 이는 저의 땀과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앞으로 이 심장은 도시의 모든 생명력과 번영을 책임질 것입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정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연회장 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나며 거대한 그림자가 들이닥쳤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황동빛 갑옷을 입은 자동 인형 ‘망집’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닳고 해진 작업복 차림의 한 남자가 느릿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오랜 세월의 흔적과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두 눈은 살아서 펄펄 끓는 불길 같았다.
유정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눈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이 공포에 질려 흔들렸다.
“강… 강진?” 정혁의 목소리가 바닥을 기었다. “네가… 어떻게….”
강진은 발소리 하나 없이 연회장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르는 ‘망집’은 위협적인 기계음을 내며 주위의 귀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강진이 낮게 읊조렸다. “네가 내 심장을 찢어 발겨도, 그 조각 하나하나가 널 복수할 칼날이 되었으니. 네가 훔쳐간 내 생명력이, 날 살린 거다.”
정혁은 뒤로 물러섰다. “무슨 헛소리를! 넌 감옥에서 죽었어야 할 죄인이다! 당장 경비를 불러라!”
강진은 피식 웃었다. “경비? 네 발명품이라며 자랑하던 이 모든 자동 경비 시스템들 말인가? 그 모든 것의 설계도는 내 손에서 나왔지. 오랜 시간, 그 틈새를 찾아 헤맸다. 네 심장과 연결된 모든 혈관을 파악하고, 이제 그 심장을 멈추러 왔다.”
그의 말과 함께 ‘망집’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에테르 광선이 정혁의 ‘강철 심장’을 향했다. 정혁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멈춰라! 그건 도시의 생명력이다!” 정혁이 소리쳤다.
“네가 훔쳐간 것은 도시의 생명력이 아니라, 내 생명력이다!” 강진의 목소리가 연회장을 꿰뚫었다. “네가 만든 것이라 자랑하던 모든 것들이 네 발목을 잡을 것이다. 네 이름으로 불리던 모든 위업들이, 이제 네가 짓밟았던 진실을 외칠 것이다.”
‘망집’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정혁의 ‘강철 심장’을 보호하고 있던 투명 원통의 이음새가 기묘한 기계음과 함께 벌어졌다. ‘망집’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강철 심장’의 핵에 연결된 가장 굵은 에테르 전도관을 움켜쥐었다.
“아니! 안 돼!” 정혁이 비명을 질렀다.
‘망집’의 팔에 연결된 계측기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에테르 에너지가 역류하며 ‘강철 심장’의 푸른빛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연회장 전체에 비상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기록을 되찾아라, 망집!” 강진이 명령했다.
‘망집’은 에테르 에너지를 역류시키며 ‘강철 심장’의 중추 회로에 접근했다. ‘강철 심장’의 표면에 갑자기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무한 동력의 심장’을 설계하던 과거의 강진과 정혁의 모습이었다. 둘은 웃고 있었고, 강진은 자신의 서명이 담긴 설계도를 정혁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이어지는 영상은 정혁이 그 설계도를 빼돌리고, 강진을 모함하는 내용의 위조된 문서를 작성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연회장의 모든 귀빈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혁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백지장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거짓이다! 조작된 영상이다!” 정혁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거짓?” 강진이 비웃었다. “네가 훔쳐간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내 삶이었고, 내 영혼이었어. 네가 자랑하는 ‘강철 심장’ 그 자체에 내 피와 땀이 기록되어 있지. 네 위선적인 연설을 담던 마이크, 그 안의 초소형 녹음기는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강진은 ‘망집’을 바라보며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진실을 밝혀라. 그리고… 네놈이 만든 것을 멈춰라.”
‘망집’의 손이 ‘강철 심장’의 핵을 짓누르자, ‘강철 심장’의 푸른빛이 폭주하듯 붉게 타올랐다. 이내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중앙의 에테르 코어가 ‘팟!’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굉음과 함께 연회장 전체가 흔들렸다. ‘강철 심장’은 빛을 잃고, 멈춰버렸다.
동시에, 연회장을 밝히던 모든 증기등이 일제히 꺼지고, 저택을 휘감던 톱니바퀴 소리마저 멈춰 섰다. 저택 전체를 움직이던 심장이 멈춘 것이다. 유정혁의 야망과 거짓으로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순식간에 암흑 속에 갇혔다.
정혁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얼굴은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눈앞에는 수많은 귀빈들의 비난과 경멸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강진이 차가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이것으로 네 이름은 영원히… 도둑으로 기억될 것이다.”
강진의 목소리는 어떤 승리감도, 해방감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직 무거운 진실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는 ‘망집’을 돌아보며 천천히 연회장을 벗어났다. 그의 등 뒤로, 유정혁의 절규와 비난이 섞인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강진은 그 어떤 미련도 없이,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복수는 완성되었지만, 텅 빈 그의 심장 속에는 여전히 차가운 바람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