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거대한 운천봉(雲天峰)이 아득한 구름 위로 솟아 있었다. 그 자태는 마치 태고의 신이 빚어낸 거대한 붓질 같았고, 봉우리 정상에 펼쳐진 비무대(比武臺)는 운해(雲海)를 뚫고 솟아난 연꽃잎처럼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늘, 바로 이곳에서 천하의 운명을 건 대회가 시작될 터였다.

수천의 인파가 운천봉의 가파른 비탈을 따라 운집해 있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문파와 가문, 혹은 홀로 무(武)를 갈고닦은 고수들이었다. 저마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비장함, 그리고 섬광처럼 번득이는 야망이 뒤섞여 있었다. 비무대 주변에는 오색찬란한 영기(靈氣)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고, 고요하던 대기마저 팽팽한 활시위처럼 울리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류연은 굳게 쥔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의 시선은 비무대 한가운데 우뚝 선 거대한 비석에 꽂혀 있었다. 그 비석에는 붉은 글씨로 ‘천하무결 비무대회(天下無缺 比武大會)’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스무 해 동안 갈고닦은 검술이 비로소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스물두 살, 아직은 혈기 왕성한 나이였지만, 그의 검은 이미 수많은 강적의 목숨을 거둬들였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강자들은 차원이 달랐다. 저 멀리 보이는 백발의 노인은 태산북두라 불리는 문파의 장로였고, 옆쪽에 우뚝 선 장한은 과거 마교의 침입을 홀로 막아냈다는 전설 속 인물이었다. 류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과 함께 끓어오르는 뜨거운 열기가 요동쳤다.

정오를 알리는 징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콰앙! 콰앙! 콰앙! 웅장한 징소리가 메아리치며 운천봉 전체를 뒤흔들자, 모든 시선이 비무대 정면에 마련된 좌대 위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홉 명의 장로들이 정좌하고 있었다. 그들은 강호에서 가장 존경받고 두려워하는 인물들이었으며, 각기 다른 하늘의 힘을 다루는 신선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앙에 앉은 이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현천진인(玄天眞人). 도문에 최고 어른이자, 이 대회를 주최한 장본인이었다.

현천진인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등 뒤로 아홉 개의 거대한 영창(靈槍)이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영창은 마치 하늘의 별을 꿰어 만든 듯 신비로웠고, 그 빛은 비무대 주변을 가득 채웠다. 현천진인의 깊고 푸른 눈빛이 운집한 군중을 훑었다.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려 퍼졌지만, 동시에 고요하고 단호했다.

“강호의 영웅들이여, 그리고 뜻을 품은 젊은이들이여. 오늘, 이곳에 모인 것은 비단 영웅의 이름이나 문파의 명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자, 운천봉에는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흘렀다. 류연은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고동쳤다.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던 ‘혼돈의 그림자’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음을 아는 자가 많을 것이다. 그들은 심연의 끝에서 어둠을 뿜어내며,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집어삼키려 한다. 수천 년 전, 위대한 선조들께서 그들을 막아냈으나, 그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제, 다시 한번 천하에 재앙이 닥칠 때가 왔다.”

술렁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천진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대의 예언에 이르기를, 혼돈의 그림자에 맞설 단 한 명의 무결한 영웅이 강림하여 ‘만천인장(萬天印章)’의 힘을 개방할 것이라 하였다. 그 자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

‘만천인장’이라는 말에 류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전설 속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하늘의 기운을 봉인한 성물(聖物)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개방할 수 있는 자라니… 대체 어떤 힘을 가진 존재를 말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천하무결 비무대회’를 개최한다. 이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만천인장을 다룰 자격이 주어질 것이며, 천하를 이끌고 혼돈의 그림자에 맞설 명예가 부여될 것이다.”

현천진인의 말이 끝나자, 비무대 주변에서는 경악과 흥분, 그리고 격정적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천하의 운명, 그리고 전설 속 성물. 이 두 가지가 걸린 대회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류연은 저 멀리 서 있는 한 여인을 바라보았다. 검은 도포를 입었지만, 바람에 살짝 휘날리는 옷자락 아래로 드러나는 가녀린 실루엣은 그녀가 여인임을 짐작게 했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검은 칼집에 싸인 장검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검은 마치 그녀의 일부인 양 차갑고 단단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흑영검녀(黑影劍女)’라 불리는 그 여인은 이미 강호에 수많은 피바람을 몰고 온 전설적인 검객이었다. 그녀 역시 만천인장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의 시선은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비무대 가장자리에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건장한 사내. 온몸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그는 ‘화염신군(火焰神君)’이라는 별호로 불렸다. 그의 주먹은 이미 수십 년간 천하에 적수가 없었고, 그의 일격은 산을 부술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다고 전해졌다.

수많은 강자들의 기운이 서로 부딪히며 무형의 압력을 만들어냈다. 류연은 그 압력 속에서 자신의 심장이 마치 거대한 북소리처럼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들 사이에서 자신은 과연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작은 파도에 불과할까, 아니면 거대한 해일을 일으킬 수 있을까?

현천진인이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렸다.
“규칙은 간단하다. 오직 한 명의 승자만이 남을 때까지 싸워라. 단, 목숨을 잃게 하는 치명적인 공격은 삼갈지어다. 허나,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

그의 마지막 말이 운천봉에 서늘한 한기를 불어넣었다.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 그것은 곧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비무대 위에서 한 명의 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거대한 옥패가 들려 있었다.

“이제 대회의 막을 올린다. 첫 번째 조, 비무에 임할 자들을 호명한다!”

류연의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 수천, 수만의 강자들이 운집한 이곳에서, 천하의 운명을 건 대회가 드디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의 손은 저절로 허리춤에 매달린 검의 손잡이를 찾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그의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자신은 이 혼란스러운 시대의 끝에서, 그 어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빛을 발할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