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 호, 카론 성역.
칠흑 같은 우주 한가운데, ‘아르테미스 호’는 거대한 검은 물고기처럼 유영하고 있었다. 함교의 주 스크린에는 별똥별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성진들이 박혀 있었지만, 그 빛들은 인류가 아는 어떤 별자리에도 속하지 않았다. 미지의 영역, 그야말로 미지의 심연이었다.
“함장님, 뭔가 포착됐습니다.”
조종석에 앉아 있던 최부기장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는 평소에도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이함장이 몸을 일으켜 최부기장의 옆으로 다가섰다. “어떤 건가, 최부기장?”
“좌현 2-3-0 방향, 거리 5000km. 판독 불가능한 물질입니다. 크기는… 대략 30미터 정도 됩니다.” 최부기장의 손가락이 스크린 위를 미끄러지자, 거대한 검은 실루엣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그것은 완전한 구도, 완벽한 육면체도 아니었다. 어떤 기하학적인 규칙도 없이 멋대로 꺾인, 마치 우주가 스스로 만들어낸 돌연변이처럼 기괴한 형태였다. 하지만 놀랍도록 매끄러웠다.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 검었으며, 아무리 확대해도 표면의 질감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생명체 반응은?” 이함장이 물었다.
“전무합니다. 비행 궤적도 없고, 에너지 반응도 없습니다. 그냥… 떠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아니, 수만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요.”
이함장은 한참 동안 스크린을 노려봤다. 인류가 이 먼 심우주까지 발을 들인 이유는 단 하나, 미지의 것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바로 그것이 있었다.
“박박사, 김기사, 함교로.”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 밑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흥분이 깔려 있었다.
잠시 후, 짧은 곱슬머리의 박박사가 두꺼운 안경을 치켜올리며, 그리고 덩치 큰 김기사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함교에 들어섰다.
“이게 뭔가요, 함장님?” 박박사의 눈은 이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학자 특유의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런 형태는 처음 봅니다.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
“에너지 반응은 없지만, 존재 자체가 주변 공간에 미묘한 왜곡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부기장이 덧붙였다. “마치 주변 중력을 흡수하는 것처럼요.”
“흥미롭군요.” 박박사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이미 수많은 가설을 쫓고 있었다.
이함장은 김기사를 돌아봤다. “김기사, 회수 가능하겠나?”
김기사는 한숨을 쉬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걸 어디에 보관하죠? 우리 화물칸에 들어갈지부터 의문입니다. 그리고 저 물체에서 어떤 방사선이라도 나오면….”
“박박사?” 이함장의 눈이 박박사에게 향했다.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위험할 수 있다는 건 동의합니다. 그래도… 저건 인류가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발견입니다, 함장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요.” 박박사의 목소리에는 학구열이 불타고 있었다.
결국, 이함장은 회수를 명령했다. 탐사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위험은 언제나 존재했다.
거대한 로봇 팔이 뻗어 나갔고, 정체불명의 유물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아르테미스 호의 화물칸으로 견인되었다. 유물을 수용하자마자, 화물칸의 비상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센서들이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렸다.
“화물칸 내부에 알 수 없는 에너지장이 감지됩니다! 모든 센서가 포화 상태입니다!” 최부기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무슨 일이지, 김기사?” 이함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김기사는 데이터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감지되는 에너지장은 기존에 저희가 알던 어떤 형태와도 다릅니다. 방사능도 아니고… 물리적 압력도 아닙니다. 그냥… 존재합니다. 주변 공간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화물칸과 격벽은 버틸 수 있나?”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압력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격벽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뭐라고?” 이함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박박사가 화물칸 내부 영상에 나타난 유물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히 존재하는 게 아니야.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있어.”
이함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단을 내렸다. “김기사, 에너지 실드를 최대치로 올려! 박박사, 저 물체에 대한 분석을 최대한 빨리 진행해! 최부기장, 항로는 일단 고정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우린 저걸 먼저 이해해야 한다.”
며칠이 흘렀다.
유물은 화물칸 한가운데에 고고하게 떠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검은색, 모든 기하학적 규칙을 무시한 기괴한 형태. 하지만 아르테미스 호 내부의 분위기는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상을 느낀 것은 박박사였다. 그는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유물에서 전송되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아무런 유의미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을 때였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지만, 그 소리는 그의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했다. 공포가 아니었다. 낯선 평온함, 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서 점차 스며드는 압도적인 존재감. 그는 그 존재가 유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다음 날 아침, 박박사는 극심한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깼다. 연구실로 돌아온 그는 유물에서 전송되는 미미한 신호들을 발견했다. 어젯밤 꿈에서 들었던 그 울림과 정확히 일치하는 파동이었다.
“이건… 텔레파시인가?” 박박사는 경악했다.
이함장과 최부기장, 김기사도 비슷한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최부기장은 조종석에서 졸다가 잠결에 불가능한 항로를 입력할 뻔했고, 김기사는 정비실에서 망가진 부품들을 실제처럼 생생하게 보았다. 이함장은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잠이 들면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들이 그녀의 과거를 훑어보는 악몽에 시달렸고, 깨어나면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다들 괜찮은가?” 이함장이 침울한 표정으로 함교에 모인 대원들을 둘러봤다. “요 며칠간… 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이상한 꿈을 꾼 사람은 없는가?”
박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함장님, 저는 유물이 보내는 미약한 신호를 감지했습니다. 제 꿈속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파동이었습니다. 어쩌면… 저 유물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최부기장이 불쾌한 듯 코웃음을 쳤다. “영향이라뇨? 그냥 심우주 항해의 스트레스 때문에 피로가 쌓인 겁니다. 망할 우주선이 너무 조용하니까 다들 헛소리를 듣는 거죠.”
“헛소리가 아닐세, 최부기장.” 김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어제 밤에는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꿈을 꿨어. 너무나 생생해서… 다시 그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고.”
함교는 침묵에 잠겼다. 각자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이 공기 중에 떠돌았다.
이함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박박사, 유물과 우리 사이의 연관성을 더 찾아봐. 김기사, 화물칸의 격벽 상태를 다시 점검하고, 혹시 저 유물이 어떤 방식으로든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지 확인해. 최부기장, 함선 내부 감시 시스템을 최대치로 가동해. 만약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면, 다른 외부 요인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외부 요인은 없었다. 문제는 내부에서,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유물은 마치 거울처럼 대원들의 가장 깊은 두려움과 후회, 죄책감을 비추기 시작했다. 환각은 더욱 선명해졌고, 현실과 꿈의 경계는 흐릿해졌다. 박박사는 자신의 연구가 실패하고 동료들이 비웃는 환청에 시달렸고, 김기사는 자신이 고치지 못한 엔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반복해서 보았다. 최부기장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사소한 실수들이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지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이함장은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과거에 내린 하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부하를 잃었던 기억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죽은 부하의 얼굴이 우주복 헬멧 안에서 그녀를 비웃었고, “함장님, 왜 절 구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는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이 함장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최부기장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이함장은 흐릿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지금 이 중요한 시점에 대체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저 유물은… 저 유물은 우리를 미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이함장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박박사가 비틀거리며 함교로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함장님… 알아냈습니다. 저 유물은… 저 유물은 우리의 뇌파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감정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어요! 두려움, 절망, 후회… 그런 것들을 빨아들여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물칸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르테미스 호 전체가 흔들렸다.
“화물칸 격벽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압력이 한계치를 넘어섰습니다!” 김기사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들려왔다.
스크린에 화물칸 내부 영상이 다시 나타났다. 검은 유물은 이전보다 훨씬 거대해져 있었다. 기괴하게 뻗어 나간 촉수 같은 것들이 화물칸의 벽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혹은 적어도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무언가였다.
“말도 안 돼…!” 최부기장이 경악했다.
“저게… 저게 왜…!” 이함장의 눈동자가 공포에 질려 흔들렸다.
“빨리… 빨리 저걸 우주로 다시 내보내야 합니다!” 박박사가 절규했다. “아니면 우리 모두 저것의 먹이가 될 겁니다!”
“어떻게… 어떻게 내보내란 말인가!” 김기사의 목소리에는 이미 절망이 가득했다. “문이 열리면 저게 함선 전체를 삼켜버릴 겁니다!”
그때, 이함장의 눈에 섬광이 스쳤다. 그녀는 스크린에 비친 유물의 이미지를 노려봤다. 그 검은 덩어리는 마치 깊은 심연의 눈처럼 그녀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죽은 부하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함장님, 왜 절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
“최부기장, 함선을 유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이함장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김기사, 화물칸의 모든 비상 배출 밸브를 개방해! 최대한의 압력으로 저걸 밖으로 밀어내!”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함선 후미가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김기사가 망설였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우리 모두가 죽기 전에, 저 괴물을 없애야 해!” 이함장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의 눈은 번뜩였지만, 그 빛은 마치 심연의 끝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꽃 같았다.
최부기장이 망설임 없이 조종간을 잡았다. 아르테미스 호는 거대한 엔진을 역추진하며 유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김기사가 비상 배출 밸브를 열었다. 화물칸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증가하며, 유물을 우주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물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촉수 같은 가지들이 화물칸의 벽을 뚫고 들어오려 했다. 함선 전체가 비명을 질렀다. 경고음이 귓청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버텨! 버티라고!” 이함장이 고통스럽게 외쳤다. 그녀의 눈앞에는 유물의 검은 그림자가 점점 커지는 듯했다. 과거의 망령들이 그녀의 뇌리를 유린했다.
“함장님…!” 박박사가 이함장을 붙잡았다. “안 됩니다! 이러다 함선 전체가 부서질 겁니다!”
“내가… 내가 책임질 것이다!” 이함장은 박박사를 뿌리치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저 괴물을… 저 괴물을 이 우주에서 지워버려야 해!”
그 순간, 화물칸과 연결된 통로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찢어졌다. 검은 유물은 마치 무시무시한 이빨처럼 함선의 선체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공포가 아르테미스 호를 집어삼켰다.
이함장은 조종석으로 달려가 최부기장의 손을 덮쳤다. “최대 속도! 전방으로 최대 속도!”
아르테미스 호는 잔해를 흩뿌리며 미친 듯이 속도를 높였다. 뒤에서는 유물이 함선의 꼬리 부분을 뜯어내며 집요하게 추격했다. 하지만 우주선의 속도는 유물의 성장을 앞질렀다.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점점 멀어지고, 마침내 아르테미스 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격렬한 흔들림이 멈추고, 함교는 차가운 침묵에 잠겼다. 외부 스크린에는 검은 유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이들이 너무 멀리 도망친 것일까.
“화물칸… 후미 격벽… 완전히 파손됐습니다….” 김기사의 목소리는 떨림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유물은… 유물은 사라졌습니다.”
이함장은 터지는 듯한 두통을 억누르며 몸을 지탱했다. 그녀의 눈은 공허했다. 승리감도, 안도감도 없었다. 남은 것은 지독한 피로와 찢겨진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감았다. 여전히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함장님, 왜 절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그녀는 그 질문을 똑똑히 들었다. 그것은 환청이 아니었다.
이함장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시선은 조종석 한편에 놓인 최부기장의 개인 단말기에 꽂혔다. 단말기 화면에는 최부기장이 방금 전까지 작업했던 항로 기록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카론 성역 – 유물 회수 지점 좌표: [삭제됨]’**
**’다음 목적지: [새로운 좌표 – 유물 회수 지점과 동일]’**
이함장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녀의 옆에서 최부기장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허한 눈으로 외부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박박사는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김기사는 조용히 주저앉아, 자신의 손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유물의 그림자 속에 갇힌 채였다.
어둠 속에서, 아르테미스 호는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검은 심연 속으로 천천히 침잠해 들어갔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모든 것이 시작되려는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