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화: 그림자 속의 심장박동
“이 빌어먹을 도시에 살아남을 곳 따위는 없어.”
진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폐허가 된 병원 5층, 한때 입원실이었던 공간. 찢겨나간 시트와 부서진 의료기기 잔해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창문은 깨진 지 오래였고, 삭막한 바람이 텅 빈 복도를 휘돌아 낡은 문들을 덜컹거렸다.
식은땀이 등에 흘렀다. 하루 종일 뛰어다닌 피로 때문이 아니었다. 이 밤의 무게, 그리고 벽 너머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 때문이었다. 쥐새끼들의 것과는 다른, 더 크고, 더 축축한 소리.
그는 배낭을 풀었다. 남은 건 에너지 바 한 조각과 반쯤 남은 물통, 그리고 녹슨 쇠 파이프 하나가 전부였다. 언제부터 파이프가 자기 몸의 일부가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젠장.”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진우는 움찔했다. 손전등을 꺼내 불을 비추자, 배낭 옆에 놓인 바스락거리는 봉지가 보였다. 어젯밤 주운 비스킷 부스러기였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잠들어야 했다. 내일을 버티려면 잠이 필수였다. 하지만 심장은 쉬지 않고 쿵쿵거렸다. 깨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병실 바닥에 앙상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때였다.
삭막한 바람 소리 사이로, 아주 미세한, 하지만 분명한 소리가 스며들었다.
*슥… 슥…*
마치 젖은 천이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듯한 소리. 진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쥐가 아니었다. 쥐는 저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복도였다. 바로 병실 문 너머, 어두운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파이프를 움켜쥐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슥… 슥… 스윽…*
점점 더 또렷하게, 마치 누군가 느릿하게 발을 끄는 듯한 소리였다. 아니, 발이 아니었다. 질척거리는 무언가가 마찰하며 내는 소리였다.
진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굳게 닫힌 병실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누구냐….”
목소리가 쥐어짜듯 나왔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제는 단순한 마찰음이 아니었다.
*철퍽… 질척… 스윽…*
그리고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축축한 살덩이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 같은 것이 섞여 들었다. 마치 거대한 끈적한 물체가 복도를 기어가는 듯한 느낌.
그는 문에 귀를 댔다. 차가운 나무 감촉이 뺨에 닿았다.
소리는 병실 문 바로 앞에서 멈췄다.
진우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까 봐 두려웠다.
문 너머에서, 어떤 움직임도,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완벽한 정적. 하지만 그 정적이 오히려 더 끔찍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이 숨죽인 것처럼.
그리고 아주 천천히, 문고리가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문은 아주 조금, 틈을 벌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진우는 파이프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식은땀이 흘러 눈을 따갑게 했다.
문이 더 벌어졌다.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번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끈적한 체액으로 뒤덮인, 사람의 손바닥 크기만 한 눈동자였다. 핏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동공은 공허하게 확장되어 있었다. 그 눈동자가 문틈으로 진우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젠… 장…!”
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했다.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이며 옆으로 향했다. 문틈이 아주 조금 더 벌어지더니, 그 너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 잠긴 형체는 사람의 모습을 닮았지만, 너무나도 왜곡되어 있었다. 팔은 기이할 정도로 길었고, 관절은 비정상적으로 꺾여 있었다. 축축한 살덩이는 불규칙하게 부풀어 올랐고, 온몸에는 수없이 많은 눈동자들이 박혀 있었다. 그 눈동자들이 진우를 향해 동시에 번들거렸다.
*꾸륵… 꾸르륵…*
거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진우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다. 등 뒤로 오한이 덮쳐왔다. 저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있던 그 무언가가 뒤틀리고, 끔찍하게 변형된 잔해였다.
그는 무작정 병실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낡은 캐비닛을 밀어 넘어뜨려 문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아앙!*
문의 경첩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병실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 끈적한 몸체가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울렸다.
수많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진우를 향했다. 공포에 질린 그의 얼굴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진우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몸을 돌려 깨진 창문으로 달려갔다. 5층. 뛰어내리면 끝장이었다. 하지만 저것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끄아아악!”
그는 비명과 함께 창문 턱을 잡고 몸을 던졌다. 쨍그랑! 유리 파편이 흩어졌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를 찢었다. 진우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5층 아래로, 어둠에 잠긴 폐허 도시의 불규칙한 그림자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의 길고 기형적인 팔 하나가 창문 틈으로 뻗어 나와 진우의 발목을 낚아채려 했다. 끈적한 살덩이에서 역겨운 썩은 내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풍겼다.
진우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친 듯이 발을 휘저었다. 간신히 그 팔을 피했다.
“놓지 마! 절대 놓지 마!”
그는 스스로에게 외쳤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5층 아래, 어둠 속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만 창문 턱을 잡고 버텼다. 다른 손으로는 허리에 차고 있던 나이프를 꺼냈다. 손에 쥐인 나이프가 달빛에 번뜩였다.
그리고 아래를 향해 몸을 던지며, 나이프를 부러진 난간 파편에 꽂아 넣었다.
*끽… 끽… 끄드득…!*
쇠가 긁히는 끔찍한 소리가 밤을 갈랐다. 몸이 비스듬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이프가 난간을 긁으며 불꽃을 튀겼다. 아슬아슬하게 한 층을 더 내려갔다.
4층.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덜덜 떨리는 몸을 간신히 멈췄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줄줄 흘렀다.
위에서 들려오는 *질척… 철퍽…* 하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것이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진우를 찾고 있었다.
진우는 숨을 죽였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4층 복도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젠장… 젠장…!”
그는 다시 한번 난간에 나이프를 꽂아 넣고 몸을 아래로 던졌다. 3층, 2층… 아슬아슬하게 벽을 타고 내려가며, 나이프와 난간의 마찰음이 온 도시를 깨울 듯 울렸다.
마침내 1층 창문 턱에 매달린 순간, 그의 손에서 나이프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철컥!*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히며 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진우는 망설일 틈도 없이 지쳐버린 몸을 아래로 던졌다. 바닥에 뒹굴며 온몸이 욱신거렸다.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병원 건물의 낡은 외벽에 등을 기댔다. 머리 위에서는 여전히 끈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진 폐허의 풍경이었다. 부서진 건물들, 뒤집힌 차량들, 그리고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무언가들.
진우는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눈동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병원 건물에서 나온 것만 저 하나가 아니었다.
“젠장… 도대체 어디로….”
그의 발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깼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달렸다. 폐허 속을, 그림자 사이를, 알 수 없는 공포를 피해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내는 눈동자들이 그를 향해 스멀스멀 모여들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진우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에서, 무언가 질척이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수많은 목소리가 섞인 듯한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살…려…줘…*
*가지…마…*
*여…기…있어…*
그것은 환청이었다. 아니, 환청이 아닐지도 몰랐다.
진우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밤은 길었고, 폐허는 깊었다. 그리고 그림자는, 그림자는 그 어디에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