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잠시만요, 윤하린 씨.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시면 곤란합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급한 듯 윤하린의 팔목을 붙잡았다. 꽉 붙잡았음에도 그 손길은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하린은 한 손에 들린 커피잔을 굳게 지키며 찡그렸다. 따끈한 아메리카노의 향기가 피비린내 가득한 저택 복도에 미묘하게 섞였다.

“곤란해요? 곤란한 건 제가 밤샘 추리게임 끝에 잠도 못 자고 불려왔다는 사실인데요, 강 형사님. 커피는 생명수와 같아요. 건드리지 마세요.”

강태준 형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흐트러짐 없는 정복 차림은 그의 철두철미한 성격을 짐작게 했다. 그는 이 재수 없고 천재적인 여자를 담당할 때마다 늘 이런 식이었다.

“백남작 저택입니다. 이곳의 경비 수준이 얼마나 삼엄한지 아시죠? 게다가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밀실 살인이에요.”

밀실 살인. 그 단어에 하린의 눈빛이 스파크 튀듯 빛났다. 피곤에 절었던 얼굴에 미약한 생기가 돌았다. 밀실 살인은 그녀의 아드레날린이었다.

“그럼 더더욱 방해하지 마세요. 제 머리는 밀실 열쇠를 풀기 위해 태어났거든요.”

하린은 태준의 손길을 가볍게 뿌리치고 낡은 마루바닥을 가로질렀다. 삐걱이는 소리가 저택의 묵직한 정적을 갈랐다. 이곳은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고립된 언덕 위에 자리한 백남작의 저택이었다. 고풍스러운 외관은 마치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딘 듯했지만, 내부로 들어서자 기묘하게도 첨단 보안 시스템과 고가구들이 이질적으로 뒤섞여 있었다. 마치 시간여행자의 은신처 같다고 하린은 생각했다.

사건 현장은 저택 3층에 위치한 서재였다. 굳게 닫힌 오크 나무 문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의 경찰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문틈을 봉쇄하는 노란색 통제선이 바닥에 길게 그어져 있었다.

태준이 무전기로 현장 책임자와 짧게 통화한 후, 하린을 안으로 이끌었다.

“피해자는 백진우 남작입니다. 향년 68세. 어제 자정쯤 서재에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사인은 흉기에 의한 과다출혈.”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서재 내부를 훑고 있었다. 방은 꽤 넓었다. 앤티크 책장들이 벽면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희귀한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켜진 노트북과 펜, 그리고 엎질러진 와인 잔이 보였다.

그리고 그 와인 잔 옆, 푸른색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 백남작이 쓰러져 있었다. 잿빛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고, 고급 실크 잠옷은 핏빛으로 흥건했다. 그의 오른손은 엉성하게 쥐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붉은색 글씨가 쓰인 종이 조각이 있었다.

“보시다시피, 현장은 완벽한 밀실입니다.” 태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서재는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문이 이쪽뿐입니다. 문은 안에서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 역시 안쪽에서 특수 잠금장치로 봉쇄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창문 밖은 낭떠러지 수준의 경사면입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죠. 시체 발견 당시 모든 잠금장치는 그대로였습니다.”

“침입 흔적은요?” 하린이 물었다.

“없습니다. 외부인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CCTV 기록도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서재 외부 복도에 설치된 카메라는 사건 추정 시간 내내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하린은 말없이 서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녀의 눈은 평범한 시선으로는 놓치기 쉬운 미세한 균열, 먼지 한 톨, 섬유 한 가닥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엎질러진 와인을 응시했다. 와인은 이미 말라붙어 있었지만, 그 주변에는 얇은 액체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이 와인… 잔이 엎질러진 게 사고는 아니군요.” 하린이 중얼거렸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남작이 마지막으로 와인을 마시다가 변을 당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태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와인 잔은 책상 위에서 엎질러졌어요. 그런데 와인 자국은 잔이 놓여있던 위치보다 훨씬 넓게 퍼져있어요. 마치 누군가 일부러 잔을 쳐서 내용물을 쏟아낸 것처럼요.” 하린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와인 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 이 부분은 잔이 처음 엎질러진 직후의 흔적이고, 여기, 이 부분은… 와인이 바닥에 완전히 스며들기 전에 다른 액체가 섞여 흘러내린 자국이에요.”

태준은 하린이 가리키는 곳을 응시했지만, 그의 눈에는 그저 얼룩진 와인 자국으로만 보였다.

“다른 액체라뇨?”

“음, 굳이 따지자면… ‘물’이 섞였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하린은 미소 지었다. “그것도 꽤 많은 양의 물이요.”

태준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이라니? 밀실 살인 사건에서 물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린은 아까 남작이 쥐고 있던 종이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것을 펼쳤다.

‘하린, 이 어리석은 농담을 풀어줄 거지?’

글씨는 남작의 필체였다. 핏자국이 희미하게 번져 있었지만, 내용은 명확했다.

“농담이라… 범인이 살인 현장에 남긴 메시지치고는 좀 건방지네요.” 태준이 인상을 썼다.

하린은 종이를 다시 접어 수사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남작이 남긴 건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힌트’에 가깝네요. 게다가 이건 농담이 아니라… 진짜 핏빛 농담이군요.”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서재의 내부를 훑었다. 특히 한쪽 벽에 걸린 거대한 시계와, 그 아래 놓인 앤티크 장식장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강 형사님, 이 서재의 특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특징이요? 음… 고풍스럽지만 현대적인 보안 시스템과 희귀한 수집품들이 가득하다는 점?”

“아니요.” 하린이 고개를 저었다. “이 방의 진짜 특징은… ‘가변성’이에요.”

“가변성이라니요?”

“밀실은 말이죠, 형사님.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에요.” 하린은 책상에 놓인 노트북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밀실은, ‘만들어졌다’는 거죠.”

그녀의 눈빛이 마치 숨겨진 그림을 찾아낸 화가처럼 빛났다. 태준은 그녀의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밀실이 ‘만들어졌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인가?

하린은 서재의 오크 문으로 다가갔다. 안쪽에서 잠겨 있던 육중한 빗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손잡이 근처, 아주 미세한 틈새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이 닿자, 그 틈새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실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것이 드러났다. 마치 거미줄처럼 가늘고 투명한 그것은, 너무나 작아서 일반적인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웠다.

“이게… 뭡니까?” 태준이 숨을 멈추고 물었다.

하린은 그 실을 살짝 당겨보았다. 실은 문 안쪽의 빗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서재는 안에서 잠글 수 있지만, 밖에서 열 수는 없어요. 그렇죠?” 하린이 말했다. “하지만, 밖에서 ‘잠글’ 수는 있죠. 이 실을 이용하면요.”

“네?” 태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범인은 이 실을 이용해서 밖에서 문을 잠그고, 살인 현장을 밀실로 위장한 거예요.” 하린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섬뜩하리만치 차분하고 냉철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사후 밀실’이에요. 시체가 발견된 후에야 밀실이 된 거죠.”

그녀의 시선은 다시 한번 바닥에 엎질러진 와인 자국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나지막이 읊조렸다.

“남작이 남긴 핏빛 농담의 정체는, 아주 간단한 ‘물리 트릭’이었군요. 그리고 이 트릭을 완성하기 위해, 범인은… 아주 교묘한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강 형사님, 혹시 남작의 서재에… ‘물건을 보관하는 특수한 방법’ 같은 게 있었나요?”

태준은 그제야 머릿속에 번뜩이는 무언가를 느꼈다. 물, 실, 그리고 특수한 보관 방법…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린의 입가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았다.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강 형사님.”

하린은 커피잔의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차가워진 커피였지만, 그녀의 눈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거웠다. 밀실은 깨졌다. 이제 남은 건, 그 안에 숨어있던 범인의 얼굴을 드러내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강태준 형사는, 이 괴짜 탐정과 함께 그 미친 추리게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동시에 희망찬 예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