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둑한 새벽, 수목골은 짙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 뼈 시린 한기가 허름한 오두막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잠든 이들의 숨결을 앗아가는 듯했다. 흙벽은 세월의 더께와 함께 곳곳이 무너져 내렸고, 지붕 위에는 서리가 내려앉아 빛바랜 고통처럼 반짝였다. 강하는 움츠러든 몸을 일으켰다. 갈라진 입술 새로 쉰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젯밤 남은 것이라곤 차가운 감자 조각 하나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어린 동생, 소하에게 주었다. 제국은 해마다 수확의 절반을 세금으로 거두어 갔고, 올가을은 유난히 흉작이었다.

“형님, 배가 너무 고파요.”

벽 짚고 일어선 소하의 목소리는 희미한 재처럼 사그라졌다. 바싹 마른 손등, 움푹 들어간 눈은 강하의 심장을 찢는 듯했다. 제국은 자신들을 돌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제국의 눈에 자신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바쳐야 할 것들을 생산해내는 기계 부품에 불과했다.

“조금만 참아라, 소하. 오늘은 내가 읍내에 나가서… 뭘 좀 찾아올게.”

그 ‘뭘 좀’이 무엇이 될지는 강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마을 어귀에 걸린 제국군 감찰관의 공고문에는, 늦어지는 겨울 조공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또 무엇을 빼앗으려 올 것인가.

해가 뜰 무렵, 읍내로 향하는 좁은 비탈길에 나섰다. 텅 빈 배를 억누르며 걷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저 멀리, 검푸른 하늘 아래 제국의 깃발이 나부꼈다. 거대한 황금 용이 수놓인 깃발은 그들의 오만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읍내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왁자지껄한 소란과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실려 왔다. 강하는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좁은 골목을 돌아 인파를 헤치고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강하의 모든 피가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 더러운 것들이! 감히 중앙의 명을 거역해?”

제국군 감찰관 이호가 길 한복판에 꿇어앉은 노인의 머리채를 잡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노인은 어제 강하에게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내어주었던 상점 주인이었다.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옆에는 그가 애지중지하던 곡물 자루가 찢긴 채 흩어져 있었다.

“저, 저는 정말 드릴 것이…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제발…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노인의 목소리는 끓어오르는 울음과 함께 갈라졌다. 이호는 그 목소리를 비웃듯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차가운 쇳소리가 읍내를 감돌았다.

“자비? 너희 같은 미물들에게 베풀 자비는 없다! 본보기를 보여주마!”

칼날이 번뜩이자,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가 스쳤다. 강하의 눈은 이글거렸다. 저들은 제물이 될 뿐이었다. 영원히 이리 짓밟히며 살아가야 하는가. 숨 쉬는 것조차 죄가 되는 삶을.

“안 돼!”

자신도 모르게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강하에게로 향했다. 이호의 싸늘한 시선이 강하에게 박혔다.

“무슨 개소리냐, 이 미천한 촌뜨기가!”

이호는 노인을 향했던 칼날을 강하에게로 돌렸다. 제국군은 거침없이 강하에게 달려들었다. 강하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칼날을 바라봤다. 어차피 이대로 살 바에는, 한 줌의 불꽃이라도 피워보는 게 낫지 않은가.

그때였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른 돌멩이가 이호의 손목을 강타했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이호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제국 놈들이 미쳐 날뛰는구나!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골목 어귀에서 갑자기 나타난 한 무리의 그림자들이 외쳤다. 그들은 남루한 옷차림이었지만, 눈빛만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그들 중 맨 앞에 선 여인, 윤아는 꼿꼿한 자세로 이호를 노려봤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낫이 들려 있었다.

“어리석은 것들! 감히 제국에 대항하려는 것이냐? 모두 죽고 싶은 게냐!”

이호는 분노로 얼굴이 시뻘개져 소리쳤다. 하지만 윤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워 살기를 포기하고 짓밟히는 것보다, 죽음으로써 자유를 찾는 것이 우리에겐 더 익숙하다. 이 썩어빠진 제국 놈들아.”

윤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읍내 전체를 울리는 듯한 힘이 있었다. 강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새벽’이었다. 언제나 밤의 장막 아래 숨어 제국의 잔혹함에 맞서 싸우는 이름 없는 영웅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호는 주춤거렸다. 예상치 못한 저항이었다. 병사들에게 외쳤다. “저것들을 모두 잡아라! 반란이다! 반란!”

제국군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하지만 윤아를 필두로 한 새벽의 무리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돌멩이를 던지고, 낫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제국군에게 맞섰다. 작고, 보잘것없는 싸움이었지만, 그것은 수십 년간 억눌려 있던 민초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강하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내디뎠다. 그의 눈은 윤아의 등 뒤에서 빛나고 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더 이상 소하에게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밤을 새우게 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미천한 존재로 짓밟힐 수는 없었다. 읍내에 퍼지는 피 냄새와 함성 속에서, 강하는 굳은 결심을 했다.

“형님!”

갑자기 뒤에서 소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소하가 흙투성이 얼굴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강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소하! 여긴 위험해! 어서 도망가!”

강하는 소하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혼란 속에서 제국군 병사 하나가 강하와 소하를 발견하고는,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곳에선 아무도 도망칠 수 없다!”

병사가 휘두른 검이 차가운 햇빛을 받아 번뜩였다. 강하는 필사적으로 소하를 감싸 안았다. 차가운 칼날이 뼈와 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릴 새도 없이, 윤아가 든 낫이 병사의 팔을 스쳐 지나갔다. “크아악!”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정신 차려, 젊은이. 여기서 무너지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윤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하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은 강하의 가슴속 깊이 박혔다. 그는 소하를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 순간, 수목골의 평범한 농부 강하는, 새벽의 한 조각 불꽃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들을 막아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이호의 격렬한 명령이 읍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윤아는 냉정하게 말했다.

“오늘 밤, 우리는 제국의 잠 못 이루는 악몽이 될 것이다. 모두 듣거라! 오늘을 기점으로, 이 수목골은 더 이상 제국의 땅이 아니다!”

그녀의 선언은 읍내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굳어 있던 마음에 뜨거운 불씨를 던졌다. 강하의 손에 쥐어진 것은 부러진 나뭇가지 하나였지만, 그의 눈에는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오직, 새벽을 향한 간절한 염원만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