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궤도 정거장, 아스트라 포트리스. 사령관 김도진은 피로에 절어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스타라이트 룸’의 봉쇄된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선 보안팀장 박선우는 거의 울상이었다.
“말도 안 돼…! 제독님은 분명 혼자였습니다. 모든 감시 기록에… 단 한 사람의 출입도 없었습니다, 사령관님!” 박팀장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타라이트 룸. 아스트라 포트리스의 최상층에 위치한, 제독 카이사르의 개인 집무실이자 가장 화려한 특수 구역이었다. 거대한 투명 벽면 너머로는 은하수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펼쳐져, 마치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지금, 그 아름다운 우주를 배경으로, 카이사르 제독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가슴팍에는 정밀하고 깊은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예리한 칼날이 그의 심장을 정확히 도려낸 듯했다.
“밀실 살인… 그것도 아스트라 포트리스에서.” 김도진 사령관의 턱이 굳게 다물렸다. “어떤 외부 침입도, 내부 조력자도 없었다고? 그럼 대체 누가 제독님을… 어떻게 죽였다는 건가!”
그때, 조용히 다가온 발소리가 복도의 긴장감을 갈랐다.
“글쎄요, 사령관님. ‘밀실 살인’이란 말은 언제나 흥미롭죠.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일수록, 진실은 더욱 단순한 법입니다.”
나른하면서도 명료한 목소리였다. 김도진 사령관과 박선우 팀장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곳에는, 낡아 보이는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늘 그렇듯 한 손에는 닳아빠진 퍼스널 단말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헝클어진 흑발을 쓸어 올리는 중이었다. 바로 강태인, 이 우주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뛰어난 탐정이었다. 그의 뒤에는 단정하게 정복을 차려입은 조수 릴리아가 조용히 서 있었다.
“강탐정! 이제야 오시는 겁니까!” 김도진 사령관이 다급하게 말했다.
강태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롭게 걸어왔다. “제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모든 걸 망쳐놨을 것 같아서요. 어땠습니까, 박팀장? 이번에도 역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겠죠?”
박선우 팀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닙니다! 이번엔 다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확인했습니다. 스타라이트 룸은 최신 방어막 시스템으로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고, 내부 산소 농도, 기압, 온도… 모든 것이 정상이었으며, 24시간 동안 외부에서 침입한 어떤 입자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내부에서도 제독님 외의 생체 신호는 전혀 없었습니다!”
“흥미롭군요.” 강태인은 씨익 웃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릴리아.”
“알겠습니다, 탐정님.” 릴리아가 봉쇄된 문을 향해 손목의 인터페이스를 가볍게 스캔하자, 육중한 합금 문이 쉭 소리를 내며 조용히 열렸다.
스타라이트 룸 안으로 들어선 강태인의 시선은 먼저 우주를 향한 거대한 벽면에 닿았다. 그곳은 일반적인 유리창이 아니었다. 특수 합금과 투명 신소재로 이루어진 다층 구조의 특수 시뮬레이터 벽이었다. 외부 우주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정교하게 투사하고, 내부에서는 홀로그램 광학 효과로 별빛을 조작하며, 심지어 외부의 미세 중력 변화까지 감지해 내부 기류를 조절하는 복합적인 시스템이었다. 그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다는 평판을 가진 곳이었다.
“피해자의 위치는.” 강태인은 이미 알면서도 물었다.
“저쪽입니다, 탐정님.” 릴리아가 제독의 시신이 쓰러진 곳을 가리켰다. 제독은 거대한 시뮬레이터 벽면을 등지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치 우주를 감상하며 편안한 휴식을 취하던 도중에 변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강태인은 제독의 시신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먼저 방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세한 먼지 입자 하나, 벽면의 전선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듯했다. 그는 발자국처럼 방을 천천히 걷다가 멈춰 서서 천장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내부 감시 시스템은?”
“제독님의 심박 모니터링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는 프라이버시를 위해 어떠한 영상 녹화나 음성 기록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릴리아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프라이버시가 늘 문제로군요.” 강태인이 중얼거렸다. “사망 시각은?”
“정확히 04시 17분입니다.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감지되었습니다.”
강태인은 시신 주변에 이르러 무릎을 굽혔다. 그의 눈은 예리하게 빛났다.
“상처를 볼까요.” 그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제독의 가슴에 뚫린 구멍을 가볍게 건드렸다. “매우 깨끗합니다. 조직의 손상도 최소화되어 있고요. 마치 특수 레이저로 정교하게 도려낸 듯합니다.”
“저희도 그 점이 의아했습니다.” 박팀장이 끼어들었다. “고에너지 레이저 무기가 사용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무기가 어떻게 봉쇄된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무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강태인은 시선을 들어 제독의 뒤편에 있는 시뮬레이터 벽면을 응시했다. 은하수가 눈앞에 펼쳐진 듯한 영상이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릴리아, 이 시뮬레이터 벽면에 대한 모든 광학 및 에너지 흐름 데이터를 내 단말기로 전송해 줘. 특히 사망 시각 전후의 기록들을 상세하게.”
“알겠습니다, 탐정님.” 릴리아는 익숙하게 작업에 착수했다.
강태인은 벽면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과 덧씌워진 유기 디스플레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손바닥으로 벽면을 쓸어내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그의 눈빛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멈칫했다.
“사령관님, 박팀장님.” 강태인이 뒤를 돌아봤다. “이 방의 시뮬레이터 벽은 단순한 디스플레이가 아니죠. 외부 우주 환경을 감지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부의 빛과 소리를 조작해 최상의 몰입감을 제공하는 복합 시스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탐정님. 이 스타라이트 룸의 핵심 기술입니다. 외부의 미세한 별빛 하나까지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김도진 사령관이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다면… 그 별빛을 ‘재현’하는 시스템이 때로는 ‘전송’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강태인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박팀장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무슨 말씀이신지… 별빛을 전송한다니요?”
강태인은 제독의 의자를 가리켰다. “제독님은 늘 이 자리에서 우주를 감상하는 것을 즐겼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저 나선 은하의 중심부를 말이죠.” 그는 벽면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리고 정확히 제독님의 심장과 나란히 마주 보는 지점입니다.”
그때, 릴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탐정님, 사망 시각 전후로 해당 지점의 광학 에너지 흐름에 미세한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습니다. 극히 짧은 순간, 평소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가 집중되었다가 순식간에 분산된 기록이 있습니다.”
“그거죠.” 강태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김도진 사령관과 박선우 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입니다.” 강태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외부 침입도, 내부 탈출도 불가능하죠. 하지만 ‘무기’는 다릅니다. 이 스타라이트 룸의 시뮬레이터 벽은 외부의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다시 내보내는 정교한 광학 시스템입니다. 외부의 광원을 내부로 투사하고, 그 투사된 빛을 내부에서 다시 굴절시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죠.”
“설마… 그게 살인 도구였다는 겁니까?” 박팀장이 경악했다.
“정확합니다.” 강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자는 아스트라 포트리스 외부에 있었습니다. 어딘가 먼 곳에서, 혹은 정거장 주변을 공전하는 위성에서, 고에너지 레이저를 발사한 겁니다. 그리고 그 레이저는 이 스타라이트 룸의 시뮬레이터 벽이 가진 특수 광학 시스템을 통해, 마치 하나의 ‘별빛’처럼 위장하여 내부로 침투했습니다.”
“하지만… 벽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김도진 사령관이 반박했다.
“네, 손상되지 않았죠. 왜냐하면 살인자는 이 벽의 광학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태인의 눈이 빛났다. “특수 조명 모드를 활성화시켜 외부 레이저 빔을 내부로 완벽하게 굴절시켜 제독님의 심장을 향해 한 점으로 집중시킨 겁니다. 그리고는 임무를 완수한 직후, 그 에너지를 다시 벽을 통해 외부로 분산시켰거나, 혹은 벽 자체의 특수 반사 필터를 이용해 우주 공간으로 되돌려 보낸 것이겠죠. 마치 ‘사라진 빛’처럼 말입니다.”
김도진 사령관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벽면을 바라봤다. 그 벽면은 여전히 아름다운 은하수를 품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빛이 살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다니.
“외부의 레이저 발사체가 이 시뮬레이터 벽의 광학 시스템과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강태인이 덧붙였다. “아마 정거장의 외부 관제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 혹은 이 스타라이트 룸의 설계도와 광학 시스템의 핵심 코드를 아는 자만이 가능한 범행이겠죠. 밀실은 밀실이었지만, 정작 살인은 ‘밀폐되지 않은’ 우주 공간을 통해 이루어진 셈입니다.”
박선우 팀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땀을 흘렸다. “그렇다면… 범인은 아스트라 포트리스 내부에, 우리 중에 있다는 말입니까?”
강태인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이제 사령관님과 박팀장님의 몫이겠죠. 저는 단지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했을 뿐입니다.”
강태인은 뒤돌아 스타라이트 룸을 나섰다. 그의 등 뒤로 육중한 합금 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는 멀리서 빛나는 별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빛은 아름다움이자 동시에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탐정의 눈은, 그 어떤 별빛보다도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