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우스 스테이션, 아스트라 코퍼레이션 연구동 7구역. 거대한 원통형 통로를 따라 늘어선 격벽마다 비상등의 붉은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정적을 깬 건 경비대장 박재민의 거친 숨소리와 몇몇 대원들의 웅성거림뿐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젠장,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박 대장의 시선이 향한 곳은 ‘프로젝트 아스트라’ 총 책임자인 닥터 카엘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티타늄 합금으로 된 두꺼운 방탄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생체 인식 시스템은 외부 침입 기록을 일절 탐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연구실 내부의 초고화질 보안 카메라는 닥터 카엘이 들어간 후 단 한 명의 그림자도 포착하지 않았다. 완벽한 밀실. 하지만 그 안에 닥터 카엘은 죽어 있었다. 날카로운 흉기에 단 한 번 찔린 채로. 그리고 흉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통로 끝에서 나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박 대장이 고개를 돌리자, 얇은 은색 프레임 안경을 콧등에 걸친 청년이 팔짱을 낀 채 다가오고 있었다. 캐주얼한 검은색 재킷에 흰색 이너를 입은 차림새는 긴박한 현장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류한 씨, 오셨군요.” 박 대장은 저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초대에 응했습니다만, 썩 즐거운 파티는 아니군요, 박 대장님.” 류한은 흥미 없다는 듯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그의 시선은 이미 연구실 문을 지나 그 너머를 꿰뚫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워낙 심각해서….”
“심각하다 못해 난해하다, 정도겠군요. 그래서, ‘밀실 살인’입니까?” 류한은 비웃듯이 피식 웃었다.
“네, 그렇습니다. 닥터 카엘은 안에 혼자 들어가셨고, 문은 외부에서 어떤 침입의 흔적도 없이 잠겨 있었죠. 내부 카메라에도 아무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발견된 겁니다. 흉기는 사라졌고요.” 박 대장은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유령이 저지른 짓도 아니고….”
류한은 대꾸 없이 문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잠시 느끼던 그는 이내 생체 인식 패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문이 잠긴 시각과 닥터 카엘의 마지막 기록은 일치하겠군요. 침입 흔적은 없고.”
“네, 완벽합니다. 문은 닥터 카엘의 홍채와 음성 인식으로 잠겼고, 그 후로는… 정전 한 번 없었습니다. 이 구역 전체의 공기 흐름, 미세 중력 조절, 에너지 흐름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류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서 있던 보안팀원에게 말했다.
“연구실 내부의 모든 센서 기록, 그리고 닥터 카엘의 생체 기록을 제 단말기로 전송해 주십시오. 1분 전까지의 기록을 포함해서요.”
“네, 알겠습니다.” 팀원이 재빨리 단말기를 조작했다.
잠시 후, 류한의 손목에 찬 개인 단말기 ‘모니터’에 수많은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눈으로 훑어 내려가며 몇 번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연구실 안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도 내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 대장이 연구실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벽은 두꺼운 ‘강화 크리스탈’ 패널로 되어 있었다. 바깥에서는 뿌옇게 흐려져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긴급 상황 시에는 투명하게 전환할 수 있었다.
“음….” 류한은 박 대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강화 크리스탈 패널 가까이 다가섰다. 손가락으로 표면을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대장님, 혹시 이 패널, 비상시 투명화하는 기능 외에 다른 기능은 없습니까?” 류한이 물었다.
“아뇨, 없습니다. 그저 강화 크리스탈일 뿐입니다. 외부 충격에도 끄떡없는….”
류한은 아무런 대답 없이 패널의 특정 부위를 빤히 응시했다. 아주 미세한, 정말 눈에 띄지 않는 흠집 하나. 그것은 마치 머리카락처럼 얇고 길었다.
“이건요?” 류한이 손가락으로 그 흠집을 가리켰다.
박 대장이 고개를 숙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음… 제가 보기엔 그저 사용 흔적 같습니다만. 워낙 미세해서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고요.”
“그렇겠죠.” 류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단말기를 들여다보았다. “닥터 카엘의 사망 시각… 오후 3시 17분. 그리고 연구실 내 평균 온도 상승, 3시 15분부터 17분까지.”
“온도 상승이라니요? 저희는 어떤 이상 징후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박 대장이 의아해했다.
“수치로는 미미합니다. 겨우 0.3도. 하지만 밀실이라면 이 정도도 충분히 의미가 있죠. 게다가 이 온도는 한 구역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저 천장 환기구 근처.” 류한은 연구실 천장에 박혀있는 환기구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 대장은 류한이 가리킨 환기구를 올려다보았다. “저기도 완벽하게 밀봉되어 있습니다. 사람 하나 드나들 틈이 없어요.”
“사람은 아니겠죠.” 류한은 피식 웃었다. “박 대장님, 저 환기구 그릴을 확대해서 보여줄 수 있습니까? 닥터 카엘의 사망 10분 전부터 사망 시각까지의 기록으로요.”
보안팀원이 급히 카메라를 조작했다. 거대한 메인 모니터에 환기구 그릴의 확대 영상이 나타났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얼룩이 그릴의 틈새에 희미하게 보였다. 금속 표면이 아주 짧은 순간 고열에 노출되었다가 식은 듯한 흔적이었다.
“이건…?” 박 대장이 놀라 탄성을 질렀다.
“금속이 순간적으로 녹았다가 굳은 흔적, 혹은 강력한 산성 물질에 노출된 흔적. 어느 쪽이든, 외부에서 어떤 기기가 저곳을 통과하려 했음을 시사하죠. 그것도 아주 작고, 아주 정교한 기기가.”
류한은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닥터 카엘은 죽기 직전,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위를 보고 있었을 겁니다. 그의 시선은 천장을 향해 있었고, 그의 목에는 단 한 번의 깊은 상처가 있죠. 흉기는 사라졌고. 0.3도의 온도 상승은 흉기가 사라지는 순간의 짧은 연소를 의미합니다.”
박 대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설마… 나노 드론…?”
“정답입니다.” 류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트라 코퍼레이션은 극미세 자율 비행체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죠. 사람의 눈으로는 감지하기 힘든 초소형 드론. 특정 임무 수행을 위해 특수 제작된 드론이 환기 시스템을 통해 침입한 겁니다.”
“하지만 흉기는…?” 박 대장이 말을 더듬었다.
“나노-카본 필라멘트로 만들어진 극도로 얇은 칼날. 혹은 순간적으로 액화 또는 기화되어 사라지는 특수 합금 칼날. 드론이 목표를 찔렀을 때, 칼날은 희생자의 몸속에 남겨진 채, 드론은 즉시 칼날을 녹여버리는 화학 반응을 유도했거나, 칼날 자체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도록 설계되었을 겁니다. 그 짧은 화학 반응으로 인해 0.3도의 미세한 온도 상승이 있었던 거고요.”
류한은 강화 크리스탈의 흠집을 다시 가리켰다.
“이 흠집은 드론이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 직전, 방향을 잡다가 실수로 패널에 스쳤던 흔적이겠죠. 그렇게 완벽하게 모든 흔적을 지운 겁니다.”
박 대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저희는 단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침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스템은 완벽하다고….”
“완벽한 시스템은 없습니다, 박 대장님. 완벽한 구멍만 있을 뿐이죠. 문제는 누가, 왜 닥터 카엘을 그런 식으로 살해했느냐는 겁니다. 이 드론은 분명히 명령을 받았을 테니까요.” 류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제 진짜 게임은 시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