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공기가 폐부를 찢는 듯한 지하 깊숙한 곳. 강민준의 손전등 불빛은 습기와 먼지로 가득 찬 거대한 터널의 끝에서 간신히 바닥을 더듬고 있었다. 귓가에는 심장 박동 소리만이 불규칙하게 울렸다. 박선우 박사는 낡은 탐사복 소매로 안경을 다시 한 번 닦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민준 씨, 방금 그… 통로가 맞습니까? 지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정도 깊이의 인공 구조물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기록에도 없어요.”
박 박사의 목소리는 경외감과 함께 미묘한 불안감을 담고 있었다. 그들의 발밑에는 방금 전까지 지나왔던 불안정한 돌무더기가 아슬아슬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거대한 바위가 굴러떨어져 모든 것을 매몰시켜 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길이었다.
“지도요? 박사님. 여기까진 저희가 만든 지도로는 올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민준은 냉정한 목소리로 답하며 불빛을 좀 더 멀리 비췄다. 그의 눈에는 이 고대 유적에서 보았던 수많은 기이한 문양과 알 수 없는 건축 양식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이 시대로 떨어지게 된 그 순간부터, 이 지하 유적의 존재는 그의 생존과 직결된 거대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젠장… 그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까?” 박 박사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아니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찾고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죠.”
민준의 시선이 불빛 끝에 닿은 곳에 머물렀다. 그곳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거친 암벽 터널과는 확연히 다른, 매끈하고 거대한 석벽이 솟아 있었다. 그 벽면에는 수십 개의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어렴풋이 푸른 빛이 깜빡이는 것을 민준은 놓치지 않았다.
“박사님, 보십시오. 저곳입니다. 뭔가가 있습니다.”
박 박사가 황급히 민준의 옆으로 다가와 불빛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이 세상의 것이 아니군요. 이 정교함, 이 재질… 그리고 저 문양들은… 어느 문명권에서도 발견된 적 없는 양식입니다. 마치… 별자리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기계의 회로도 같기도 하고… 맙소사.”
두 사람은 넋을 잃고 벽을 응시했다. 벽 한가운데에는 다른 문양들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원형 문양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문양의 중심부에 거대한 틈새가 보였다. 마치 어떤 거대한 문이 닫혀 있는 듯했다.
민준은 천천히 그 문으로 다가섰다. 발밑의 흙먼지가 그의 움직임에 맞춰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그는 손을 뻗어 차가운 석벽을 만졌다. 그 순간, 손끝에서부터 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훑었다.
“민준 씨, 조심해요! 뭘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박 박사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민준의 손이 닿자마자, 거대한 원형 문양의 푸른빛이 순식간에 강렬해지며 주변의 모든 어둠을 집어삼켰다. 동시에 ‘우우웅!’ 하는 저음의 진동이 지하 전체를 흔들었다. 천장에서 미세한 흙먼지가 쏟아져 내렸고, 불안정한 바닥이 요동쳤다.
“젠장! 지진인가?!” 박 박사가 비틀거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아니요, 박사님. 이건 지진이 아닙니다. 이 문이… 열리고 있어요.”
민준의 말처럼, 거대한 원형 문양의 중앙 틈새가 미세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육중한 돌덩이가 움직이는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울렸고, 그 틈새에서 쏟아져 나오는 푸른빛은 이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강렬했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이 열리는 것 같았다.
틈새가 완전히 벌어지고, 그 안에서 나타난 것은 거대한 원형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단은 새까만 돌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표면에는 방금 전 벽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기하학적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푸른빛을 발하며 꿈틀거렸다.
“이럴 수가… 이런 공간이… 어떻게….” 박 박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은 경외감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민준은 제단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발소리가 거대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제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더욱 강력해졌다.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생명체가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단의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르자, 민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제단 중앙에 놓여있는 작고 투명한 구체였다. 야구공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구체 안에서는 푸른빛이 섬광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세포가 분열하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움직였다.
민준은 구체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기 직전, 구체는 맹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뇌리로 수억 개의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 거대한 문명, 하늘을 찌를 듯한 탑들, 푸른 빛을 내뿜는 도시.
*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도시, 절규하는 사람들.
* 폐허 속에서 빛나는 구체, 그리고… 그 구체를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
*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투성이의 손으로 구체를 움켜쥔, 또 다른 자신.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고 강렬해서 민준은 비틀거렸다. 머릿속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신음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의 잔상과, 이 고대 유적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투명한 구체였다.
“민준 씨! 괜찮아요?!” 박 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하지만 민준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구체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구체 안의 푸른빛은 더욱 강렬하게 발광했고, 그 안에서 어떤 형상이 명확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이 시간 속으로 떨어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그에게 알 수 없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구체가 폭발하듯 빛을 뿜어내며 엄청난 에너지를 토해냈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민준의 시야가 하얗게 타버리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그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의식이 아득해져 갔다.
이 구체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저 얼굴은 누구인가.
이 유적의 비밀은, 대체 무엇을 향해 흐르고 있는가.
모든 것이 거대한 폭풍처럼 민준의 존재를 뒤흔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