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의 낡은 아파트 단지. 김현수는 익숙한 피로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밀려오는 고요함이 오늘은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십 년 넘게 혼자 살며 익숙해진 정적이었지만, 오늘은 그 정적 속에 무언가 섬뜩한 것이 숨어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젠장, 또 시작인가.”

중얼거리며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거실에 불이 들어왔다. 현수는 널브러진 택배 상자들을 발로 대충 밀어 넣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퇴근 후 한 잔의 맥주는 현수의 유일한 낙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캔맥주를 꺼내고, 식탁에 놓인 유리컵에 따랐다. ‘치익’ 거품이 솟아오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때였다. ‘탁.’

아주 작고 날카로운 소리. 현수는 맥주를 따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거실 한구석에 놓인 낡은 벽시계를 향했다. 째깍거리는 시침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지? 착각인가.”

현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저 맥주를 따랐다. 피곤해서 헛것이 들렸나 보다. 혹은 윗집에서 또 가구를 끄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이 낡은 아파트는 밤마다 기묘한 소리들로 가득했다. 옆집 노인의 헛기침 소리, 아래층 아이의 울음소리, 위층 새댁의 얄궂은 웃음소리까지. 현수는 그 모든 소리에 무덤덤해진 지 오래였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TV를 켜고 무의미한 예능 프로그램을 틀었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는데, 다시 한번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이서, 그리고 명확하게. 현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방금 전까지 맥주를 따르던 식탁 위 유리컵으로 향했다.

유리컵이, 분명히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으로 1센티미터 가량 움직여 있었다.

현수는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눈이 침침한가. 아니면 술기운에 환각이라도 보는 건가.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그럴 리 없었다. 그는 술이 약해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졌지만, 환각을 볼 정도는 아니었다.

“젠장, 뭐야?”

그는 몸을 일으켜 식탁으로 걸어갔다. 유리컵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컵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현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괜히 피곤해서 헛생각을 한 모양이다.

TV를 끄고 침실로 향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 형광등이 미세하게 ‘윙’ 하는 소리를 내다가 ‘팟’ 하고 깜빡였다. 현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전등까지 맛이 갔나. 내일은 기사라도 불러봐야겠다.

그는 애써 신경을 끄고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아파트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뛰는 듯한 기분이었다. ‘쿵, 쿵’ 하는 낮은 울림이 발아래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침대 옆 벽에서 희미한 ‘긁적긁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손톱으로 벽지를 긁는 듯한, 혹은 작은 동물이 벽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현수는 숨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쥐인가 생각했지만, 쥐는 저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게다가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명확해지고 있었다. 긁적이는 소리가 벽을 타고 천장으로, 다시 바닥으로 이어졌다. 마치 침실 안을 한 바퀴 빙 둘러싸듯.

“누, 누구세요…?”

현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소리는 멈췄다. 섬뜩한 침묵이 다시 침실을 지배했다. 현수는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지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이 모든 게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침실 안을 더듬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옷이 가득 쌓인 의자, 반쯤 열린 옷장 문,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그때였다. 반쯤 열려있던 옷장 문이, 아주 느리게, ‘끼이익’ 소리를 내며 조금 더 벌어졌다.

현수는 얼어붙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옷장 문 안쪽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마치 그 어둠 속에 무언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저, 저기… 누, 누구 없어요?”

현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옷장 문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아주 조금씩, 아주 느리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로, 차가운 공기가 새어 나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한밤중의 침실이었지만, 한기가 느껴졌다. 뼈 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냉기였다.

현수는 용기를 내어 옷장으로 다가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침내 옷장 문 앞에 섰을 때, 문은 거의 완전히 열려 있었다. 현수는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가지들만이 어둠 속에서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역시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야. 옷장 문은 원래 잘 안 닫히는 문이었잖아.

그는 옷장 문을 닫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쾅!’

등 뒤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마치 무거운 쇠붙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현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소리는 주방에서 들려왔다.

현수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주방으로 향했다.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현수는 숨을 들이켰다.

싱크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프라이팬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설거지통 안에 쌓여있던 컵들과 접시들이 모두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고, 식탁 위 맥주 캔은 저 멀리 벽에 부딪혀 찌그러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은 것처럼.

그리고 가장 기이한 것은, 주방 전체를 가득 채운 퀴퀴한 냄새였다. 눅눅한 흙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뒤섞인 듯한, 역겹고도 익숙지 않은 악취였다.

“이게… 이게 대체…!”

현수는 휴대폰을 들었다.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누군가 침입한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아직 이 아파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손은 빠르게 휴대폰 화면을 더듬었다. 하지만 액정은 까맣게 꺼져 있었다.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다.

현수는 미친 듯이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이제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이 기괴한 아파트에서, 정체 모를 존재와 함께.

그때, 현수의 귓가에 차갑고 섬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찾았다….’

바로 그의 귓구멍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너무나 생생해서 현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획 돌렸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공기만이 차갑게 뺨을 스칠 뿐.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극심한 공포가 현수를 덮쳤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는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 순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리모컨이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와 현수의 머리를 스쳤다. 현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젠장, 이건 꿈이 아니었다. 환각도 아니었다.
무언가가, 이 집에 들어와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이 집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 무언가는 자신을 향해 뚜렷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현수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차가운 땀이 온몸을 적셨다.
그는 고개를 들어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거실 저 너머,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희미하고 불분명한 형체였다.
하지만 그 형체는 분명히,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수의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확신이 치솟았다.
이건 단순한 유령이 아니었다.
이것은, 살아있는 무언가였다.
아니, *살아있었던* 무언가였다.
죽었지만, 여전히 움직이는.

그것은 마치, 도시 전체를 잠식하기 시작한 어떤 전조처럼 느껴졌다.
현수는 이를 악물었다.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그것의 손이, 혹은 무엇이 되었건, 뻗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손은 차갑고, 끔찍하게도, 축축했다.
그리고 그 손가락 끝에서, 뭉개진 살덩이의 냄새가 풍겨왔다.

끝없이 이어진 밤이었다.
현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