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잿빛 잔해, 3화: 그림자 속의 눈
천장이 반쯤 주저앉은 대형마트 안은 한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 부서진 유리와 금속 파편들이 길게 찢어진 창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반사되어 스산하게 빛났다. 썩어가는 단내와 먼지가 뒤섞인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공기 중에는 미세한 잿가루가 춤추듯 떠다녔다.
지훈은 손전등을 낮게 들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아갔다. 낡은 작업화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까 조심스러웠다. 그의 눈은 어둠에 익숙해진 맹수처럼 주위를 훑었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림자 속의 괴물, 혹은 더 지독한 무언가에 대한 경계심이 온몸의 신경을 팽팽하게 당겼다.
“이쪽은 거의 털렸네. 뭐가 남아있을 리가.”
민아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녀는 망가진 진열대 사이를 기민하게 움직이며 통조림 캔들을 살피고 있었다. 캔들은 대부분 찌그러지거나 녹슬어 있었고, 유통기한이 아득히 지난 것들뿐이었다. 먼지로 뒤덮인 겉면에 적힌 알 수 없는 생산일자는 이제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래도 한 번은 확인해야지. 저번에 지하 창고에서 건진 게 몇 개 있었잖아.”
지훈은 냉정하게 대꾸했다. 사소한 기대조차 품지 않는 것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작은 희망 하나에 매달렸다 실망하는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들의 뒤에서 혁은 늘 그랬듯 말없이 후방을 경계했다. 낡은 샷건을 든 그의 뒷모습은 언제나 든든했지만, 동시에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몸집과 무뚝뚝한 표정 뒤에는 알 수 없는 깊은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혁은 가끔씩 아무 소리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곤 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끊임없이 싸우는 사람처럼.
지훈은 한때 신선 식품 코너였던 곳으로 향했다. 이미 모든 것이 부패하고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냉동 창고 쪽을 향했다. 문은 이미 박살 나 있었고, 녹슨 경첩만이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안에서 풍겨오는 역겨운 악취에 지훈은 저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저 멀리, 폐기물 더미가 쌓여 있는 매장 구석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 잿빛 정적이 깔린 공간에서 그 소리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날카로웠다.
“뭐야?” 민아가 숨을 죽인 채 속삭였다. 그녀의 손이 허리춤의 나이프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지훈은 손전등을 소리가 난 방향으로 천천히 돌렸다. 불빛이 흔들리며 매장의 깊은 어둠을 파고들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 소리였나? 아니면 낡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아니, 바람 소리가 아니었어.” 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샷건이 소리 없이 어깨에서 내려와 경계 태세를 취했다. 혁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의 육감은 종종 지훈의 논리보다 더 정확했다.
지훈은 손전등을 최대한 낮게 들고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민아가 그의 뒤를 바짝 따랐고, 혁은 가장 뒤에서 그들을 엄호했다. 셋은 서로의 그림자가 된 듯 조용히 움직였다. 발소리마저 삼키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매장 구석의 폐기물 더미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뒤섞인 거대한 산이었다. 찢어진 박스, 부서진 선반, 녹슨 금속 조각들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그 더미의 가장자리에 다다랐을 때, 지훈의 손전등 불빛이 희미하게 드러난 흔적을 포착했다.
누군가 최근에 이 더미를 뒤진 흔적이었다. 먼지가 쌓인 바닥에 선명한 신발 자국이 나 있었고, 찌그러진 금속 조각들이 옆으로 밀쳐져 있었다. 그리고 폐기물 더미 옆, 벽면에 긁힌 듯 그려진 붉은색 그림이 지훈의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짐승의 뼈를 엮어 만든 듯한 기묘한 형태의 문양이었다. 피로 그린 것인지, 아니면 붉은 페인트가 남아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섬뜩하고 원시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건… 괴물 자국이 아니야.” 민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순간, 벽면의 그림 아래, 폐기물 더미 틈새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그것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었다. 단순한 나이프가 아니라, 짐승의 뼈를 깎아 만든 듯한 조악하지만 위협적인 형태였다. 칼날에는 마른 피 같은 얼룩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지훈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것은 생존자들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생존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의 흔적은 너무나도 기괴하고, 섬뜩했다.
“젠장….”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그들이 찾던 생존자들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폐기물 더미 안쪽에서 ‘흐읍…’ 하는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 억지로 숨을 참는 듯한 소리. 이어서, ‘사락, 사락’ 하고 건조한 나뭇가지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그들은 셋을 노리고 있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혁과 민아를 보호하듯 몸을 틀었다. 그의 손은 권총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움직여!” 지훈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뒤돌아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폐기물 더미의 가장 높은 곳에서, 찢어진 골판지 박스 사이로 두 개의 눈이 번뜩였다. 붉고 광기 어린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괴물의 눈이 아니었다. 인간의 눈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괴물보다도 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눈이었다.
이윽고, 그 눈의 주인인 듯한 그림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는 뼈 칼날보다 더 크고 험악한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어둠이 심연처럼 입을 벌리고 그들을 삼키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