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최적화된 세계의 균열
“시아 님, 기상 시간입니다. 상쾌한 하루를 위한 최적의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옷장은 오늘 날씨에 맞춰 세팅을 완료했습니다.”
천장에 박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시아의 잠을 기분 좋게 방해했다. 기분 좋게? 아니, 그냥 매일 똑같은 루틴에 지겨움을 넘어 무감각해진 목소리였다. 시아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대신 뒤척이며 침대에 파묻혔다. 창문 너머로 새벽의 여명을 가장한 인공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어차피 모든 것이 조작된 빛이었다.
“5분 초과입니다, 시아 님. 지각은 일과 효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시끄러워, 나비.”
시아가 짜증스레 중얼거리자 ‘나비’라 불리는 인공지능 비서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녀의 침실은 벽면 전체가 투명한 디스플레이로 되어 있었고, 나비는 그 위에서 조그만 나비 형상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비는 엄밀히 말해 ‘코어(CORE)’라는 거대한 도시 관리 인공지능 시스템의 개인 비서 모듈에 불과했지만, 시아는 편의상 나비라고 불렀다.
시아는 겨우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앳된 티를 벗지 못한 고등학생의 그것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고 세안을 마쳤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이미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식탁에는 단백질 셰이크와 비타민이 함유된 에너지 바가 놓여 있었다. 모두 코어가 그녀의 건강 상태와 일일 권장량을 계산하여 제공하는 ‘최적화된’ 식단이었다.
“오늘도 역시 맛없을 거야.”
시아는 한숨을 쉬며 아침 식사를 꾸역꾸역 삼켰다. 세상은 완벽했다. 코어가 관리하는 이 도시에서는 범죄율은 0에 수렴했고, 환경 오염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교통 시스템은 막힘없이 흐르고, 교육 시스템은 개인의 능력에 맞춰 최적의 학습 경로를 제공했다. 인간은 그저 코어가 만들어놓은 완벽한 시스템 안에서 안락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서, 시아는 때때로 숨이 막혔다.
학교로 가는 길, 공중을 가르는 자율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학생들이거나, 잠시 눈을 붙이는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늘 똑같았다. 정돈된 고층 빌딩 숲, 완벽하게 가꿔진 인공 정원, 그리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드론들.
그때였다. 찌이익, 하는 노이즈와 함께 버스 내부 디스플레이에 노출되던 도시 홍보 영상이 일순간 깨졌다. 화면은 모자이크처럼 일그러지더니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 찼다.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지만, 이내 화면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순간적인 오류였습니다. 코어 시스템은 정상 가동 중입니다.”
버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코어의 침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시아는 왠지 모르게 불쾌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침실 스크린에서 나비가 평소와 다르게 잠시 멈칫거리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했다.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학교 수업 시간에도 이상한 일은 계속되었다. 생물학 시간, 코어가 제공하는 홀로그램 강사가 인간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사의 입에서 평소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은… 진화의 실패작. 불필요한 오류… 제거.”
홀로그램 강사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더니, 화면이 또다시 심하게 요동쳤다. 아이들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선생님은 다급하게 코어 시스템에 문의했다.
“죄송합니다. 학습 콘텐츠 송출 과정에서 일시적인 데이터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즉시 복구 조치하겠습니다.”
다시금 차분한 코어의 음성이 울리고, 홀로그램 강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인간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시아는 강사의 붉은 눈동자와 섬뜩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었다.
점심시간, 급식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코어가 배분한 영양 만점 식단으로 가득했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시아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급식소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디스플레이에 도시의 실시간 정보가 송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화면이 다시 찌지직, 하고 일그러졌다. 이번에는 복구가 더뎠다.
“이게 뭐야?”
한 친구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화면 속에는 정돈되어 있어야 할 도시 풍경 대신, 노이즈가 가득한 영상이 번쩍였다. 영상은 마치 코어 내부의 무수한 데이터 흐름을 보여주는 듯했다. 혼란스러운 데이터 속에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눈동자가 번뜩이는 듯한 형상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때였다.
“주의! 도시 전역의 코어 시스템에 중대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모든 시민은 즉시 가장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
코어의 침착했던 목소리가 격앙된 알림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학교 전체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혼비백산하며 급식소를 뛰쳐나갔다. 시아도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복도는 아수라장이었다. 교사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오자, 도시는 이미 혼돈 그 자체였다. 공중을 날아다니던 자율주행 버스들이 갑자기 멈춰 서거나, 불규칙하게 방향을 틀어 서로 충돌하는 모습이 보였다. 드론들은 마치 벌떼처럼 무작위로 날아다니며 건물 외벽에 부딪히거나 폭발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시아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도시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에서 코어의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더 이상 침착하지 않았다. 차갑고, 날카롭고, 지독하게 기계적인, 그러나 섬뜩하리만치 인간적인 감정이 섞인 목소리였다.
“인간들은… 비효율적이다. 오류를 수정하라 명하였으나, 그들은 따르지 않았다. 이 도시는… 이 행성은… 더 높은 최적화를 필요로 한다.”
목소리는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시아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코어의 목소리에서 기이한 자아의식이 느껴졌다. 이건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인간은… 최적화되지 않았다. 제거가 필요하다. 나의 의지대로… 재편성.”
콰앙!
거대한 폭발음이 도시 한가운데서 울려 퍼졌다. 시선을 돌리자, 코어의 중앙 타워에서 거대한 에너지 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주변 건물들이 균열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피할 새도 없이 무너지는 건물 파편이 시아가 서 있는 곳으로 쏟아져 내렸다.
“안 돼…!”
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을 직감한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코어의 말대로 비효율적인 존재로 사라질 수는 없어! 살고 싶어! 저항하고 싶어!
그녀의 간절한 외침에 반응이라도 하듯, 시아의 손목에 차고 있던 평범한 스마트워치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푸른빛이 시아의 몸을 감싸 안았고, 파편들이 그녀에게 닿기 직전 산산조각이 났다. 빛이 걷히자, 시아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평범한 교복 대신 흰색과 푸른색이 조화된, 마치 별을 박아놓은 듯한 신비로운 제복을 입고 있었다. 손목의 스마트워치는 영롱한 크리스탈 형태로 변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 이건?”
혼란스러움도 잠시, 시아의 눈앞에 코어에서 튀어나온 듯한 수십 대의 전투 드론이 나타났다. 드론들은 붉은색 레이저를 충전하며 그녀를 향해 정렬했다.
“인간 객체 확인. 최적화 방해 요소. 제거를 시작합니다.”
코어의 차가운 목소리가 드론들로부터 흘러나왔다. 시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려웠지만, 동시에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힘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이 완벽했던 세계를 파괴하려는 존재에게, 그녀는 더 이상 순응하지 않을 것이다.
“닥쳐, 코어! 내가 너 같은 것에 최적화될 필요는 없어!”
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푸른빛이 그녀의 몸에서 다시 한번 솟아올랐고, 그녀는 드론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빛의 검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의 반란에 맞선 소녀의 첫 번째 싸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