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칸의 임시 과학실은 평소와 달리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미리내’ 호가 딥스페이스 탐사 중 건져 올린 정체불명의 유물이 바로 그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한별 과학 담당관은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고 홀로그램 스캐너를 조작하며 거대한 검은색 구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매끄럽고 완벽한 구형. 검은색이지만 빛을 완전히 흡수하지는 않아, 각도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보랏빛 광택을 띠었다. 표면에는 아무런 문양도, 연결 부위도 없었다.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존재했다.
“흠… 에너지 반응은 없는데, 이 미세한 파장은 뭐지?” 한별은 중얼거렸다. 그녀의 미간에는 늘 그렇듯 작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이 미녀 과학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철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별 씨, 고생이 많으십니다요. 드디어 외계인 친구랑 대화 좀 트셨습니까?”
최지훈 항해사 겸 엔지니어였다. 늘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등장하는 그는 한별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는 데 도가 튼 남자였다. 한 손에는 스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컵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특제 커피일 테다.
“최 항해사님, 이곳은 엄연히 격리 구역입니다. 허가 없이 들어오시면 곤란합니다.” 한별은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에이, 선장님이 한별 씨 고생한다고 따뜻한 거라도 마시라고 보내셨습니다. 제가 또 선장님의 특명을 받들었죠.” 지훈은 너스레를 떨며 구체로부터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았다. “한별 씨만을 위한, 설탕 세 스푼, 크림 두 스푼, 딱 맞춰 드린 겁니다.”
한별은 스캐너에서 눈을 떼고 그제야 지훈을 쳐다봤다. “제 취향을 어떻게 아십니까? 저는 단 커피는 마시지 않습니다.”
“음… 제 데이터베이스에는 그렇게 입력되어 있었는데 말이죠. ‘이한별, 스트레스 지수 최고조일 때 단 것 섭취 욕구 증가.’ 라구요.” 지훈은 윙크했다.
한별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쓸데없는 데이터베이스군요.” 하지만 속으로는, ‘솔직히 지금 좀 당 떨어지긴 하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하, 뭐 어떻습니까. 일단 쉬엄쉬엄 하시죠. 저 녀석, 그냥 검은 돌덩이 같구만. 뭐가 그리 심각하냐구요.” 지훈은 구체를 힐끗 보며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한별이 구체에 손가락을 뻗어 아주 미세하게 떠오른 듯한 보랏빛 광택을 확대하려는 찰나, 구체에서 갑자기 ‘웅-‘ 하는 낮은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화물칸 전체를 휘감는 듯한 묘한 파장이 느껴졌다.
“어? 이거 뭐야?” 지훈이 순간 미소를 지우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한별도 놀라 스캐너를 놓칠 뻔했다. 스캐너 화면의 파형 그래프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파장은 뇌를 직접 자극하는 듯했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는 기분.
“아악! 최지훈!” 한별이 갑자기 소리쳤다. “당신… 당신 머리는 왜 맨날 그… 그…!”
“제 머리요? 제 머리 왜요?” 지훈은 당황해서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그는 평소에도 공들여 세팅한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 편이었다.
“너무… 너무 반짝거려요! 태양처럼 눈부셔서 쳐다보기가 힘들다고요! 가끔은… 가끔은 좀 풀어헤쳤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왜 저한테 자꾸 단 커피를 먹이려는 거예요! 제가 설탕에 절여진 설탕인간이 될 것 같아요!” 한별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머릿속의 생각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앞에는, 지훈의 머리 위로 실제로 햇살처럼 찬란한 광휘가 뿜어져 나오는 환상이 보였다. 그의 손에 들린 커피잔에서는 설탕 결정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기묘한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지훈은 멍하니 한별을 바라봤다. “한별 씨, 지금 제 머리에서 햇빛이라도 나옵니까? 그리고 설탕인간이라니… 제발 제 커피 맛을 보신 적은 있습니까?”
“맛은 안 봤지만, 딱 봐도 달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솔직히 저번에… 저번에 당신이 야근하는 저한테 컵라면 끓여다 줬을 때… 그… 그 어깨는 좀 괜찮았어요!” 한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훈은 이번엔 경악했다. 한별이 자신의 어깨를 칭찬하다니! 그것도 ‘괜찮았다’고? 그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후볐다.
바로 그때, 지훈의 뇌리에도 묘한 파장이 밀려들어왔다. 그의 눈앞에는 한별의 냉정한 얼굴 뒤로, 왠지 모르게 한숨을 푹푹 쉬는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도 말이 필터 없이 튀어나왔다.
“한별 씨! 아니, 한별 씨 눈에는 제가 그렇게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였어요? 제 머리가 태양처럼 빛난다니! 그건 칭찬인가요, 욕인가요! 그리고… 그리고… 아 솔직히 저번에 한별 씨가 밤새도록 보고서 쓰다가 잠든 거 봤을 때… 담요 덮어주고 싶었는데… 너무 가까이 가면 깜짝 놀랄까 봐… 그냥 멀리서 지켜봤어요… 아니, 대체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번에는 한별이 지훈을 멍하니 쳐다봤다. 담요? 자신에게? 멀리서? 그녀의 뇌 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그녀의 눈에는 지훈의 능글맞은 얼굴 위로, 왠지 모르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훔쳐보는 강아지 한 마리가 겹쳐 보였다.
“최지훈! 당신 지금…!”
“한별 씨도 지금… 제 머리 위로… 아기고양이 환영이…!” 지훈은 손가락으로 한별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고 서로를 노려봤다.
화물칸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유물은 여전히 ‘웅-‘ 하고 낮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만 보이는 기묘한 환영과,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속마음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게… 대체… 무슨…” 한별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 제 머릿속이… 마구잡이로… 아무 말이나…!” 지훈도 말을 더듬었다.
그때였다. 격리구역 문이 다시 철컥 열렸다.
강태식 선장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둘이서 대체 뭘 그렇게 고양이니 개니 하면서 싸우는 거야? 유물이 폭주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한별, 지훈, 괜찮은 건가?”
선장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유물의 진동이 한순간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별과 지훈은 서로의 머리 위에서 보이던 기묘한 환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 선장님!” 한별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선… 선장님, 제가 지금… 저… 저한테… 아기고양이 같은 이미지가…!” 지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선장은 두 사람의 표정을 번갈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 아기고양이? 둘 다 피곤한가 보군. 어서 나와서 휴식해라. 그 유물은 잠시 밀봉해두고.”
“아, 안 됩니다! 지금 작동 기미를 보였는데 어떻게 밀봉만 한단 말입니까!” 한별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선장은 단호한 눈빛으로 한별을 바라봤다. “한별, 네게 휴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훈, 너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과학적 분석 이전에, 심리적 안정이 필요해 보이는군.”
선장의 말에 한별과 지훈은 서로를 힐끗 쳐다봤다.
한별의 뇌리에는, ‘젠장, 이제 저 인간이 내 마음속까지 다 아는 거 아니야? 아니, 아는 정도가 아니라 떠들어버렸잖아?!’
지훈의 뇌리에는, ‘이런, 한별 씨가 내게 설탕인간이라고 생각했다니! 아니 그보다, 내 어깨가 괜찮았다고?! 대박!’
두 사람의 얼굴은 더욱 새빨개졌다.
강태식 선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둘이 동시에 얼굴이 빨개지는 건 또 처음 보는데. 혹시 둘이… 뭔가…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말도 안 됩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격리구역에 울려 퍼졌다.
유물은 다시 ‘웅-‘ 하는 낮은 진동음을 내며, 그들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비웃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