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출력 올려! 이대로라면 내일 아침까지 이 지루한 항성계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카이의 목소리가 조종실을 울렸다. 그는 함장석 대신 보조 모니터에 얼굴을 박고 행성 스캔 데이터를 훑고 있었다. 그의 눈은 별처럼 반짝였지만, 피곤에 절은 진의 눈은 그렇지 않았다. 진의 표정은 마치 오랫동안 씹다 버린 껌처럼 지쳐 보였다.
“카이, 이 출력은 이미 아르고 호의 최대치에 가깝네. 그리고 ‘지루한’이라는 표현은 자네 혼자만의 생각이지. 난 이 항성계의 평화로움이 아주 마음에 들어. 연료도 절약되고, 부품 마모도 적고… 얼마나 완벽한가?”
진은 한숨을 쉬며 메인 콘솔의 에너지 효율을 다시 확인했다. 그의 손놀림은 매끄러웠지만, 그의 등은 이미 몇 날 밤샘 조종으로 굽어 있었다. 엉망진창이 된 진의 머리카락은 중력 제어장치가 고장 난 미역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평화로움? 진, 우리는 탐험가야! 평화로움은 탐험가에게 독이라고! 안 그래?” 카이가 몸을 돌려 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온통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거기다 세피로스 III는 절대 평화롭지 않아. 고대 문명의 유적지가 잠들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잖아? 어딘가에서 엄청난 모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문이라기보다… 술집에서 떠도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지. ‘잃어버린 유적’, ‘고대 병기’, ‘숨겨진 보물’. 그딴 소리에 현혹되어 빚만 지고 돌아온 탐험가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우리 아르고 호의 수리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잊었나? 그건 전부 자네의 ‘소문’ 탐사 때문에 생긴 일이야.”
“이번엔 다를 거야!” 카이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스크린 위를 빠르게 스쳤다. “봐, 여기 이 에너지 이상 수치. 이 미세한 중력 왜곡. 분명 인공적인 흔적이야! 그것도 엄청나게 오래된 문명의 흔적일 거라고!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어!”
진은 카이의 열정에 한숨만 내쉬었다. 하지만 그 역시 알았다. 카이가 이렇게 흥분했을 때는, 그가 뭔가 ‘진짜’를 찾아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카이의 직감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으니까. 지난번에도 벼랑 끝에 몰린 카이를 구했던 건 바로 그 직감이었다.
“알았네, 알았어. 자네 말대로라면, 대기권 돌입 준비를 해야겠군.” 진이 마침내 항복 선언을 했다. 그의 꿍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포기 외에도 미약한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카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지! 역시 진이야! 역시 내 명콤비!”
“명콤비는 개뿔. 매번 자네 뒷수습이나 하는 신세지.” 진은 투덜거리면서도 능숙하게 아르고 호의 대기권 돌입 시퀀스를 가동했다.
아르고 호는 세피로스 III의 붉은 대기권으로 서서히 진입했다. 행성은 온통 붉은 사막과 깎아지른 듯한 황량한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생명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아니, 아예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 같았다. 행성 전체가 거대한 상처처럼 보였다.
“예상 착륙 지점은 이 좌표로 설정하겠네. 스캔 결과, 이곳의 지반이 가장 안정적이야.” 진이 착륙 지점을 모니터에 띄웠다. 거대한 협곡의 한가운데였다. 거대한 절벽들이 붉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었고, 그 사이로 끝없는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흠, 협곡이라… 딱 좋아! 고대 문명은 항상 자신들의 비밀을 깊숙이 숨겨두는 법이니까. 이런 곳이라면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 카이는 안전벨트를 다시 조였다. 그의 눈은 이미 협곡의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르고 호가 착륙 패드 없이 거친 지면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착륙 충격은 거의 없었다. 진의 조종 실력은 언제나 완벽했다. 덕분에 카이는 이 행성의 중력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카이가 외쳤다. 그는 이미 탐사용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허리에 휴대용 스캐너와 다목적 도구를 매달았다. 그의 모습은 마치 모험을 떠나는 소년 같았다.
“잠깐, 카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르고 호의 방어막은 최대로 올릴 거야. 그리고…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콜 사인 보내게. 알았지? 섣불리 혼자 행동하지 말고.” 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카이를 붙잡았다. 진은 이제 그가 떠들었던 위험한 농담들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걱정 마! 내가 누군데! 우주 최고의 고대 유적 탐험가 카이 아니겠어? 금방 다녀올게!”
카이는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고는 해치 문을 열었다. 뜨거운 사막 바람이 후끈하게 불어 들어왔다. 그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 언덕과 그 아래로 아득히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행성의 거대한 입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장관이었다. 스캐너를 들고 협곡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이봐, 진. 여기 반응이 더 강해지고 있어. 협곡 아래쪽이야! 정말로 뭔가 있어! 스캐너가 미쳐 날뛰고 있다고!”
카이는 조심스럽게 협곡 아래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의 스캐너는 계속해서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거대한 암벽 한가운데에 뭔가 인위적인 문양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이런… 이런 제기랄…!”
그것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었다. 세월의 풍파에 마모되어 형태가 희미해졌지만, 거대한 강철 문이 바위에 완전히 파묻힌 채 녹슬어 있었다. 높이만 해도 족히 30미터는 넘어 보였다. 문은 단 하나의 이음새도 없이 매끄럽게 암벽과 일체화되어 있었고, 그 표면에는 기묘한 기하학적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복잡하고 아름다웠다.
“진, 들려? 찾았어! 찾았다고! 문이야! 거대한 문이라고! 내 스캐너가 미쳐 날뛰고 있어!” 카이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기쁨이 묻어났다.
“보내주는 영상으로 확인했네. 믿을 수가 없군… 저게 정말 자네가 찾던 고대 유적의 입구란 말인가?” 진의 목소리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의 평소 침착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카이는 문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조심스럽게 문양을 쓸어보았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수만 년의 세월이 그 위에 내려앉은 듯했다. 스캐너를 문양에 갖다 대자, 격렬한 진동과 함께 액정 화면에 복잡한 에너지 패턴이 나타났다. 패턴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분명해! 이건… 봉인되어 있던 문이야. 엄청난 에너지가 잠들어 있어.” 카이가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를 담은 듯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여느냐는 거지.”
그는 주머니에서 만능 해킹 장비를 꺼내 문양 중앙에 붙였다. 장비가 붉은빛을 내며 문양과 동기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장비의 액정에는 ‘오류: 프로토콜 불일치’라는 메시지만 깜빡거렸다.
“안 돼.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통하지 않아. 너무 오래되거나, 아니면… 우리 문명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기술이 적용된 것 같아.” 카이는 답답한 듯 헬멧을 벗으려다 참았다.
카이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고대 문명 관련 자료들이 스쳐 지나갔다. 특정 주파수? 고유한 에너지 패턴? 아니면… 단순한 물리적 스위치?
그때, 그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문양 한가운데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움푹 파인 부분이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끼워 넣어야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곳만 유독 깨끗하고 매끄러웠다.
“진! 혹시… 아르고 호에 고대 유물 같은 거 남은 거 없어? 아주 작고, 특이하게 생긴 거 말이야! 네가 ‘쓸데없는 돌덩이’라고 부르던 것들 중 하나라도!”
“고대 유물이라니? 내가 그런 걸 왜 가지고 있겠나! 난 고물 수집가가 아니라고! 잊었나? 내 취미는 전파망원경으로 별똥별 구경하기야!” 진이 투덜거렸다. “잠깐만… 아, 이거 말인가? 자네가 예전에 ‘쓸모없지만 아름답다’며 줍자고 고집했던… 둥근 수정 구슬? 행성 칼레스 7에서 주웠던 그거?”
“수정 구슬? 맞아! 그거!” 카이가 환하게 웃었다. 그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났다. “빨리 가져다줄 수 있어?”
“지금 자네 위치까지 걸어오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리겠네! 기다리게! 이 나이에 협곡 등반이라니…”
진은 아르고 호에서 뛰쳐나와 협곡 아래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숨소리가 통신으로도 거칠게 들려왔다. 카이는 진이 도착할 때까지 문양을 연구했다. 수정을 넣어야 할 듯한 그 공간은 묘하게 손에 익은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얼마 후, 헐떡이는 진이 카이 앞에 도착했다. 그의 손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빛이 감도는 둥근 수정 구슬이 들려 있었다. 구슬은 마치 작은 은하계를 품고 있는 듯한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여기… 이걸 말하는 건가? 진짜 이런 게 필요할 줄이야…” 진이 숨을 고르며 구슬을 내밀었다. 진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지만, 그의 눈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카이는 구슬을 받아들었다. 차가운 수정의 감촉이 손안에 전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구슬을 문양 한가운데 파인 곳에 맞춰 보았다.
**정확히 일치했다.**
구슬이 제자리를 찾자, 문양 전체가 희미한 푸른빛을 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구슬 자체에서도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문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기계 장치가 깨어나는 듯한, 마치 잠들어 있던 행성 자체가 뒤척이는 듯한 굉음이었다.
**크으으으으으… 웅장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닫혀 있던 문이 마침내 그 거대한 입을 벌리자, 그 안에서 차가운 공기와 함께 칠흑 같은 어둠이 쏟아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깊이와 고요함이 느껴졌다. 마치 우주 자체의 심연과 같은, 끝없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어둠이었다.
“진… 봐… 이건…” 카이의 목소리는 경외심으로 가득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우주선 엔진처럼 격렬하게 요동쳤다.
진은 말없이 카이의 옆에 서서, 서서히 열리는 문 안쪽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경이로움과 함께 미묘한 두려움이 교차했다. 그는 카이처럼 무모하지 않았다. 그 어둠 속에서 풍겨오는 압도적인 기운은 그의 본능적인 경고 신호를 울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히 감지되는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존재가 기지개를 켜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요함 속에서도 감지되는 웅장한 생명감.
“카이… 저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 전혀 알 수 없군.” 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이는 대답 대신, 헬멧의 헤드라이트를 켰다. 강렬한 빛이 어둠 속으로 뻗어 나갔지만, 그 어둠은 빛을 집어삼키는 듯,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빛은 겨우 몇 미터 앞에서 허무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라… 그거야말로 우리가 찾던 거 아니겠어?”
카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미지의 심연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둠 속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진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스캐너를 켜고 카이의 뒤를 따랐다. 이 모험이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