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삭풍이 몰아치는 밤이었다. 북방의 척박한 땅, 기암괴석들이 앙상한 이빨을 드러낸 산맥은 그 어떤 생명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살벌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낡았지만 몇 년은 더 버틸 것처럼 튼튼하게 지어진 무복을 걸친 청년, 무영은 거친 바람을 등지고 비좁은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짧은 검 한 자루가 묵묵히 밤의 어둠을 받아내고 있었다.

“젠장, 이런 곳에 주막이 있을 리가 없지.”

무영은 푸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흩어졌고, 이내 다시 정적만이 남았다. 산 중턱까지 오르자 비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굵은 빗방울이 바늘처럼 살갗을 찔렀고, 천둥소리는 불길한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몸을 피할 만한 동굴이라도 찾아야 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무영은 타고난 방랑자였다. 어느 문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강호를 떠돌며 스스로 무예를 익혔고, 그 과정에서 웬만한 사냥꾼들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바위틈새를 살피던 그의 눈에 멀지 않은 곳에 움푹 들어간 바위 그늘이 포착되었다. 제법 넓어 보여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발걸음을 재촉해 그곳으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쿠우우우우웅-!**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산을 갈랐다. 무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지반이 거세게 울렸다. 단순한 천둥이 아니었다. 거대한 지진이 산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발아래 땅이 요동치고, 거대한 바위들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아비규환처럼 귓가를 때렸다.

“이런 젠장!”

그는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바위 그늘 쪽으로 향하던 그의 발밑이 갑자기 쩍, 하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균열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대지를 집어삼켰다. 균열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흙먼지뿐만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고대의 기운이 훅 끼쳐왔다. 그것은 단순히 오래된 기운이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존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한, 혹은 억겁의 세월 동안 닫혀 있던 문이 마침내 열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무영은 절묘한 보법으로 균열의 가장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몸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발끝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득한 심연이었다. 산사태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 드러난 것은 단순한 땅굴이 아니었다. 폭풍우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거대한 인공 구조물의 흔적이었다.

새까만 구멍은 흡사 거대한 짐승의 입 같았다. 그 안에서는 눅눅한 흙냄새와 함께, 이제껏 맡아본 적 없는 묘한 철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마치 존재 자체가 잊힌 듯한 고고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그 기운은 무영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위험했지만, 알 수 없는 이끌림에 그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런 곳에 이런 게 숨겨져 있었다니….”

무영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그는 허리춤에서 낡았지만 튼튼한 밧줄을 꺼냈다. 한쪽 끝을 튼튼한 바위에 묶고, 다른 쪽 끝을 심연 속으로 던져 넣었다. 밧줄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둠은 순식간에 그를 집어삼켰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발밑에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땅이 아니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석판이었다. 밧줄을 고정시킨 채 몸을 지탱하며, 무영은 품속에서 화접자(火摺子)를 꺼내 불을 붙였다. 희미한 불꽃이 주변을 비추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여기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이 아니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거대한 석벽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벽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떤 문파의 것도 아니었고, 그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고대 유적의 양식과도 달랐다. 차라리 저 멀리 전설로만 전해지는 ‘천외인(天外人)’들이 남긴 것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수준이었다.

“이게… 대체 뭘까?”

무영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의 발소리는 깊은 정적 속에서 지나치게 크게 울렸다. 복도 끝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었다. 불꽃의 흔들림에 따라 벽면의 문양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일렁였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벽의 문양들을 자세히 살폈다.

거대한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사람이 아니었다.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가진 기이한 형상의 존재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들은 하늘을 나는 거대한 배를 타고 별들이 흩뿌려진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지도를 보는 듯한 정교한 별자리, 거대한 짐승들과 싸우는 알 수 없는 병사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듯한 거대한 눈동자였다. 벽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무영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이것은… 분명 고대 문명이다. 그것도 우리가 아는 역사 이전의….”

무영은 벽화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복도는 끝없이 이어졌고, 마치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기도 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가장 중앙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가장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오랜 탐색 끝에, 복도의 끝에 도달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원형의 석실이었다. 석실의 바닥과 천장은 돔 형태로 이어져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석조 구조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것은 제단 같기도 했고, 거대한 비석 같기도 했다. 높이는 석실 천장에 닿을 듯했고, 사방에는 방금 전 보았던 벽화 속의 기이한 문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무영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비석 앞으로 다가섰다. 비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대의 힘은 마치 그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비석의 표면에 닿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그리고 그 순간, 비석의 표면에 새겨진 모든 문자들이 섬광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잉-!**

고막을 찢을 듯한 거대한 울림이 석실을 가득 채웠다. 눈부신 빛이 무영의 시야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이미지와 소리, 감각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억겁의 세월 동안 봉인되어 있던 거대한 기억의 파편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크으읍…!”

무영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아득한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비석의 빛이 최고조에 달하자, 석실의 벽면에 그려져 있던 거대한 눈동자가 섬뜩하게 번뜩이며 무영을 응시했다.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은 시작이었다. 잊혀진 고대 유적이 품고 있던 비밀의 문이 마침내 열리는 순간이었다. 무영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석실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하지만 무영은 더 이상 이전의 무영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고대의 지혜와 함께, 깊은 심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는, 비석의 문양 중 하나가 마치 낙인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