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네오-서울, 섹터 7. 자정.

빗물은 지치지도 않고 빌딩 숲을 적셨다. 어두운 콘크리트 벽과 오색찬란한 네온사인 사이를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도시의 폐부를 씻어내는 듯했다. 강진은 낡은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띄운 3차원 바둑판 위로 돌 하나를 내려놓았다. 흑돌이 백돌의 빈틈을 파고들자 AI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찰나의 망설임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젠장.”

AI의 기계음이 낮게 울렸다. 오늘도 승리였다. 강진은 길게 하품을 하며 손목에 박힌 포트 커넥터에서 데이터 케이블을 뽑았다. 이 도시에서 밤샘 바둑은 그나마 가장 덜 역겨운 유희였다. 그때, 포트 커넥터에 연결된 개인 단말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이수현 형사’.

“또 무슨 일입니까, 형사님. 제 알람 시계는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만.”

강진의 목소리에는 불만과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런 새벽에 이수현에게서 걸려오는 전화가 언제나 골치 아픈 사건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안, 강진. 하지만 이건 좀 특별해. 아니, ‘매우’ 특별해.” 이수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역력했다. 빗소리 사이로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장소는 크로노스 테크 본사 빌딩, 펜트하우스. 피해자는 박선우 회장이야.”

강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치켜 올라갔다. 박선우. 크로노스 테크의 창립자이자 현 회장. 명실상부 네오-서울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물 중의 거물. 그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언급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크로노스 테크라면 보안은 물론이고… 경호도 삼엄할 텐데요. 사고입니까?”

“사고가 아니야. 살인이다. 칼에 찔렸어. 문제는….” 이수현이 말을 잠시 멈췄다. 그의 망설임은 강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피해자는 자신의 펜트하우스 서재에서 발견됐어. 서재의 모든 출입구는 내부에서 잠겨 있었고, 방에는 피해자 외에 아무도 없었어. 외부 침입 흔적도 없고, 통풍구는 성인이 드나들기엔 너무 작고, 창문은 특수 강화 유리로 밀봉되어 있었지. 심지어 그 층 전체가 고도로 통합된 생체 보안 시스템으로 통제되고 있었어. 침입자가 들어갈 방법은 아예 없어.”

강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낡은 아파트 창문 너머로 회색빛 하늘과 빗줄기가 보였다. 완벽한 밀실 살인. 오래간만에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흥미롭군요. 가겠습니다. 위치를 전송해 주십시오.”

“벌써 와있을 줄 알았다. 곧 보자.”

강진은 전화를 끊고 낡은 재킷을 걸쳤다. 비에 젖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그의 심장은 늘 축축한 도시의 음지에 머물러 있었다.

* * *

크로노스 테크 본사 빌딩은 네오-서울의 스카이라인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위압적인 존재였다. 검은색 강화 플라스틸과 반사 코팅된 유리가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었고, 빌딩 전체를 감싸는 파란색 홀로그램 로고는 밤하늘을 밝히는 유일한 별처럼 빛났다.

경찰 차량의 사이렌이 빗소리를 찢으며 빌딩 입구에 늘어서 있었다. 로비는 이미 경찰과 크로노스 테크의 보안 요원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강진은 익숙한 얼굴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저만치 이수현 형사가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어서 와, 강진.” 이수현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상황은 내가 말한 그대로다. 현재까지 파악된 모든 정보는 ‘불가능’을 가리키고 있어. 물리적인 밀실을 넘어선, 존재론적인 밀실이라고 해야 하나.”

“피해자 확인은요?”

“사망한 지 4시간 정도. 로봇 비서가 아침 회의 준비를 위해 서재에 접근하려다 잠겨있는 문을 열지 못해서 경비 시스템을 우회, 내부 카메라로 확인하고 신고했어.”

강진은 이수현을 따라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박선우 회장만이 접근 가능한 최상층 펜트하우스로 직행했다. 올라가는 동안에도 이수현은 계속 브리핑을 이어갔다.

“펜트하우스는 박선우 회장 본인의 사적인 공간이라 외부인이 출입할 일이 거의 없어. 가족도 잘 오지 않는다고. 게다가 모든 출입구는 생체 인식과 쿼츠락 융합 보안 시스템으로 작동해. 문이 안에서 잠겼다는 건 회장 본인이 잠갔거나, 내부 시스템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펜트하우스의 복도가 나타났다. 일반 아파트의 복도와는 차원이 다른, 넓고 고요한 공간이었다. 복도 끝, 서재 문 앞에는 몇몇 과학수사대 요원들과 함께 보안 책임자로 보이는 거구의 남자가 초조하게 서 있었다.

“강진 씨, 이쪽이 서재입니다. 모든 증거 보존에 힘썼습니다.” 이수현이 길을 안내했다.

문은 이미 특수 장비로 열려 있었다. 강진은 신중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서재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천장까지 닿는 홀로그램 서가에는 고전 문서부터 최신 데이터 칩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스마트 데스크와 편안해 보이는 안락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안락의자 옆,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 박선우 회장이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날카로운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칼날은 희미하게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박선우의 눈은 굳게 감겨 있었고, 얼굴에는 고통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강진은 시선을 낮춰 방의 모든 것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핏자국, 가구의 배치, 공기의 흐름… 그의 시야는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 흔적, 그리고 패턴을 찾아 헤맸다.

바닥에는 물기가 없었다. 창문은 밀봉되어 있었다. 문은 안에서 잠겼고, 강제로 열린 흔적은 없었다. 통풍구는 너무 작았고, 환기 시스템은 정상 작동 중이었다. 방의 모든 센서는 정상 범위 내의 온도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외부 에너지 유입 흔적도 없었다.

“시체 주변 반경 2미터 내에 외부 침입자가 남길 수 있는 어떤 흔적도 없었습니다. 미세 먼지 스캔도, 생체 잔류물도, 심지어 전자기 신호 교란도 없었어요.” 과학수사대 팀장이 보고했다.

강진은 아무 말 없이 박선우 회장의 시체를 응시했다. 그는 단지 죽은 인간이 아니었다. 죽음 그 자체가 거대한 질문이었다.

“회장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찔렀을 가능성은요?” 강진이 물었다.

“칼의 각도와 깊이, 그리고 저항의 흔적을 봤을 때 자살은 불가능합니다. 명백한 타살입니다.” 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강진은 서재 안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손에 쥔 스마트 글라스로 방의 3D 스캔 데이터를 불러왔다. 증강현실로 구현된 서재의 모든 각도와 치수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특수 제작된 스마트 조명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천장에도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네,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스캐닝 결과에도 균열이나 파손은 없었습니다.”

강진은 스마트 글라스의 데이터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는 단순히 정보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정보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불가능의 벽에 숨겨진 틈새를 찾아내려는 듯했다.

밀실. 완벽한 밀실.

하지만 강진은 완벽한 밀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완벽해 보이는 것은 단지 아직 모든 변수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그의 시선이 문득 방 한쪽 구석에 놓인 작은 수경 식물 화분에 닿았다. 흙 대신 투명한 영양액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푸른 잎사귀. 특별할 것 없는 장식품이었다.

그러나 강진은 그 식물 화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 식물, 이 방에 원래 있던 겁니까?” 강진이 물었다.

이수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일반적인 가구 리스트에는 없는데… 하지만 서재에 식물 하나쯤 놓는 건 흔한 일이지 않나?”

강진은 식물 화분을 자세히 살폈다. 영양액은 깨끗했고, 잎사귀는 싱싱했다. 그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식물 줄기 중 하나를 건드렸다.

그 순간, 강진의 얼굴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마치 복잡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은 자의 표정이었다.

“이수현 형사님.” 강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이 방은 밀실이 아닙니다. 살인자는 이 모든 시스템을 정교하게 이용했어요. 그리고… 피해자는 이미 죽은 채로 이 칼에 찔린 겁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강진의 말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죽은 채로 찔렸다니?

“설명해 주십시오.” 이수현이 숨을 죽이며 말했다.

강진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의 눈빛은 번개처럼 번뜩였다.
“자, 그럼 이제부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볼 시간입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식물 화분에 고정되었다.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이 완벽해 보이던 밀실의 유일한 균열,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