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 숨을 죽였다. 심장이 귓가에서 북을 치듯 울렸다. 아르카나 학원 지하 5층, 봉인된 비상 통로를 겨우 해킹해 들어선 순간부터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러왔다. 이곳은 지도에도 없는 구역이었다. 선배들의 으스스한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던 ‘금지된 심연’. 진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애써 무시했다. 그는 그저 답을 찾고 싶었다. 한 달 전, 홀연히 사라진 친구 에르나의 흔적을.
수십 년은 불이 켜지지 않은 듯한 복도는 으스스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진이 아는 마법 언어와는 확연히 다른, 고대 문양들이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닳아 해진 문양들은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듯했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흡사 심해 속 생명체의 발광기관 같았다. 진은 중력 부츠의 엔진음을 최소화하고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의 마력 감지기가 미약하지만 일정한 파동을 잡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생명체의 파동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마력의 흐름도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고대하고, 이질적인 무엇이었다.
공기는 습하고 차가웠다. 코끝을 맴도는 것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옅은 비린내, 그리고 미묘한 오존 냄새였다. 이곳은 결코 평범한 지하 창고나 연구실이 아니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에르나가 이곳에 있을 리 없어. 아니, 있어서는 안 돼.
푸른빛을 따라 도착한 곳은 거대한 원형 공간이었다. 중앙에는 낡은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마력을 가진 존재에게는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진동이자,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불길한 속삭임이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에 진은 팔뚝을 쓸었다.
철문에 손을 대자, 표면에 새겨진 금지된 문양들이 섬뜩한 열을 내뿜었다. 이건 그냥 마법진이 아니었다. 봉인되어야 할 무언가를 억누르는 결계였다. 진은 휴대용 마력 분석기를 꺼내 들었다. ‘수치 한계 초과. 존재 불확실. 생체 에너지… 마력… 우주 에너지… 혼합 감지.’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진은 이를 악물었다. 두려움에 도망치고 싶었지만, 에르나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젠장, 도대체 무슨…!”
진은 마력 분석기를 철문 중앙에 단단히 부착했다. 정교한 해킹 도구들이 얽히고설켜 잠금장치를 파고들었다. 낡은 철문의 잠금장치가 무시무시한 마찰음을 내며 풀렸다. 끼이이잉-! 금속성 비명과 함께 철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진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 천장에는 별들이 박힌 듯한 푸른 마력석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순간, 진은 토악질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강렬한 혐오감이 위장을 뒤틀었다.
공간의 중앙에는 거대한 검붉은 촉수들이 뒤엉켜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마치 살아있는 심장과도 같은 유기체가 존재했다.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주변 공기가 기분 나쁜 진동을 일으켰다. 촉수들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 셀 수 없이 많은 유리관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유리관들 안에는…
인간의 형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잔해*였다.
온몸이 뒤틀리고 뼈대가 꺾인 채, 피부는 투명한 막처럼 변하고 그 안으로 푸른 마력 광선이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었다. 어떤 유리관 속 인간은 얼굴이 통째로 일그러져 있었고, 어떤 인간은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에너지 저장고처럼, 심연의 심장을 위한 끔찍한 연료처럼 존재했다. 그들의 눈은 공허하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 끔찍한 광경은 악몽 속에서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시는군요.”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은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심연의 심장보다 더한 공포가 그를 덮쳤다. 숨을 멈춘 채 천천히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아르카나 학원의 최연소 비전 마법 교수이자 진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 중 하나인, 아젠트 교수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의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갑고, 무표정했으며, 눈빛은 깊은 심연을 담고 있었다.
아젠트 교수는 한 손에 고대 문양이 새겨진 수정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지팡이 끝에서는 검붉은 마력이 흘러나와 중앙의 ‘심연의 심장’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마치 심장에 생명을 불어넣듯, 그 끔찍한 유기체는 더욱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궁금했지, 진 학생? 이 학원의 진정한 힘이 어디서 오는지.” 교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진을 꿰뚫는 듯했다. “저 심연의 심장은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란다. 모든 마력의 근원, 모든 존재의 시작이자 끝…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굶주림.”
교수의 말은 마치 잘 벼려진 칼날처럼 진의 심장을 갈랐다. 존경했던 교수가, 눈앞의 끔찍한 학살에 연루되어 있었다니.
“이곳에 갇힌 자들은 누구입니까?” 진은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왜 이런 짓을…!”
“갇혔다고? 아니다.” 아젠트 교수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진이 알던 그 어떤 미소보다 차갑고 비인간적이었다. “그들은 기꺼이 자신을 바쳤지. 아니, 바치게 되었지. 학원의 영광을 위해, 마법 문명의 진보를 위해. 저 심연의 심장이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별들의 먼지나 다름없었을 게야. 너희가 누리는 모든 힘, 모든 지식, 모든 영광은 저 심연의 심장이 끓어내는 마력에서 비롯된다.”
교수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렀다. 중앙의 심연의 심장이 더욱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공간 전체가 진동했다. 유리관 속의 인간 잔해들은 더욱 고통스러운 형상으로 일그러지는 듯했다. 진은 그들의 무언의 비명 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한 유리관 속에서 에르나와 비슷한 머리색을 발견했다. 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제 너도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진 학생.” 교수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저 심연의 심장의 일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힘의 계승자가 될 것인가.”
교수가 지팡이를 진에게 겨눴다. 지팡이 끝에서 검붉은 마력의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구체 안에서, 마치 우주 공간의 암흑 물질처럼 불안정한 에너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진은 뒷걸음질 쳤지만, 이미 그의 등 뒤는 단단한 철문에 막혀 있었다. 구체는 점점 커지며 맹렬한 기세를 뿜어냈다.
이곳에서 죽거나, 혹은… 저 끔찍한 심장의 일부가 되거나.
진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력 구체가 맹렬한 속도로 진에게 날아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