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독립적인 단편 소설

잿빛 먼지가 덮인 행성 키르의 하늘은 언제나 탁했다. 제국이 건설한 거대한 채굴 시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 가스가 대기를 텁텁하게 채웠고, 태양은 희미한 오렌지색 점으로 간신히 존재감을 알릴 뿐이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하늘은 꿈을 꾸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의 천장이었다.

“세리! 또 그 망할 코발트 먼지 뒤집어썼냐?”

낡은 정비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릭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세리를 맞았다. 그녀의 얼굴은 고글 자국을 제외하고는 온통 푸르스름한 광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끈적한 땀방울이 그 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시끄러워, 릭. 네 놈이 내 몫까지 광산으로 내려가던가.”

세리는 거친 손으로 얼굴을 대충 닦아냈다. 팔뚝엔 긁힌 상처와 새까만 기름때가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이곳 키르에서 모든 평민은 태어날 때부터 제국의 노예였다. 숨 쉬는 공기마저 제국의 소유였고, 땅 밑에서 캐내는 광물은 물론, 그들의 피와 땀방울까지 제국의 것이었다.

“카인 선장님은?” 세리는 고장 난 엔진 부품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릭은 턱짓으로 정비소 한편의 낡은 조종석 시뮬레이터를 가리켰다. 백발이 성성한 카인은 언제나처럼 고장 난 기체 회로도를 손에 든 채 골몰하고 있었다. 그는 한때 성운 제국의 유능한 함선 정비사였지만, 제국의 추악한 민낯을 본 뒤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 키르로 숨어든 사람이었다. 세리와 같은 젊은이들에게 그는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또 오리온 프라임으로 가는 징수선 항로를 보고 계신가 봐.” 릭이 시니컬하게 중얼거렸다. 오리온 프라임은 성운 제국의 수도 행성으로, 키르의 평민들에겐 전설 속의 꿈같은 장소였다.

징수선. 그 이름만 들어도 키르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제국이 정한 ‘징수일’이 되면, 거대한 제국 함선이 대기권을 뚫고 내려와 키르의 모든 생산품과 젊은이들을 ‘수확’해갔다. 반항하면 가차 없는 진압이 이어졌다. 지난달에는 어린 동생이 징수 대상에 포함되어 끌려가는 것을 세리는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날의 무력감과 분노는 세리의 심장에 굳은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카인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굳어 있었다.

“세리, 릭. 모두 모여라.”

카인의 낮은 목소리에도 묘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정비소 구석에서 잔일을 하던 아라가 재빠르게 조립식 테이블에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올려놓았다. 릭은 장난기를 거두고 카인 옆에 섰고, 세리 역시 먼지투성이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테이블 앞에 섰다.

카인이 프로젝터를 켰다. 홀로그램에는 익숙한 키르 행성의 지도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제국 함선의 항로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새로운 제국 포고령이 내려왔다.” 카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이번 징수일에 징수되는 키르의 자원은 두 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징수 대상 연령이 기존 17세에서 13세로 낮춰졌다.”

정비소 안은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릭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아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세리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13세. 아직 어린아이들까지 제국의 노동력으로 끌려간다는 뜻이었다. 제국은 이제 더 이상 숨기지도 않고 이 행성의 아이들마저 먹어치우려는 것이다.

“미쳤군.” 릭이 결국 튀어 오르듯 소리쳤다. “놈들이 드디어 이성의 끈마저 놓은 건가? 애들까지 끌고 가겠다고?”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선장님.” 아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의 함대는 너무 거대해요. 반항하면 모두 죽을 거예요.”

그 말에 세리의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 그것은 지난날 제국의 군인들이 동생을 끌고 갈 때,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던 절망과 똑같았다.

“그래,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세리가 비아냥거리듯 중얼거렸다. “늘 그랬으니까. 놈들이 원하는 대로 다 내어주고, 두려움에 떨면서 또 다시 침묵하겠지.”

카인이 세리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짙은 슬픔과 함께 어떤 결의를 담고 있었다.

“아니다, 세리.” 카인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엔 다르다.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그는 홀로그램 지도를 확대했다. 거기에는 키르 외곽의 버려진 위성 정거장이 표시되어 있었다. 제국이 한때 광물 수송을 위해 건설했다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폐기한 곳이었다.

“이번 징수선은 키르 대기권에 진입하기 전, 저 위성 정거장에서 최종 점검을 받는다. 놈들은 안전하다는 이유로 경계를 허술하게 할 것이다.” 카인의 손가락이 위성 정거장을 가리켰다. “우린 그 틈을 노릴 거다.”

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장님, 설마… 징수선을 습격하겠다는 겁니까?”

아라는 경악하여 입을 틀어막았다. 제국의 징수선을 습격한다는 것은, 감히 제국의 심장을 건드리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는 전면적인 반란을 선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징수선을 제압하고, 그 안에 실린 키르의 자원과… 끌려가는 우리 아이들을 되찾을 거다.” 카인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놈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평민이라고 해서 영원히 짓밟히고만 있지 않는다는 것을.”

세리의 가슴 속에서 차가운 절망이 뜨거운 희망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드디어 반격할 기회가 온 것이다.

“어떻게 할 겁니까?” 세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우리에게는 낡은 수송선 한 대와 몇 개의 구식 레이저 포탑이 전부입니다.”

“그 수송선은 네가 몰겠지, 세리.” 카인이 세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릭, 넌 정비된 포탑을 운용해. 아라, 넌 교란 장치를 해킹하고.”

“선장님은요?” 세리가 물었다.

“나는 지상에서 너희를 지원하고, 잠입조와 함께 징수선을 확보할 거다.” 카인의 계획은 무모할 정도로 대담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날 밤, 키르 행성의 정비소에는 잠 못 이루는 불빛이 새어 나왔다. 낡은 수송선 ‘방랑자’ 호는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세리는 방랑자 호의 낡은 엔진을 정비하며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켰다. 동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번엔 반드시.’

***

며칠 후, 키르 상공에는 세 개의 거대한 제국 징수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운 제국의 위용을 자랑하듯 은빛 선체는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하지만 세리 일행의 목표는 그 중 가장 크고 느린 ‘징수선 오메가’였다.

“아라, 제국 통신망 교란 시작해!” 세리가 조종석에서 외쳤다. 방랑자 호는 행성 외곽의 소행성 지대에 몸을 숨긴 채 징수선 오메가에 접근하고 있었다.

“교란 시작!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아라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방랑자 호의 낡은 엔진이 굉음을 내며 우주 공간을 가로질렀다. 세리의 손은 조종간을 굳건히 잡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우주 저편의 목표물을 향해 꿰뚫듯이 빛났다.

“릭, 준비해! 위성 정거장 도착하면 바로 발사다!”

“알았어, 세리! 내 손이 근질거려서 미칠 지경이라고!” 릭의 목소리에서는 긴장감과 함께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징수선 오메가는 느릿느릿 위성 정거장에 정박했다. 카인의 예상대로 제국군 병력은 징수선 경비에 소홀해 보였다. 정거장 외곽에는 순찰선 몇 대만 오갈 뿐이었다.

“돌입!”

세리의 외침과 함께 방랑자 호는 은폐막을 걷어내고 징수선 오메가를 향해 돌진했다. 낡은 레이저 포탑이 불을 뿜으며 위성 정거장 경비선의 실드를 꿰뚫었다.

“적이 나타났다! 방어막 올려!” 제국 경비선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세리는 방랑자 호를 미친 듯이 조종하여 징수선 오메가의 격납고 문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아라, 격납고 문 해킹!”

“시도 중! 제국 보안 시스템이 너무 강력해요!” 아라가 고통스러운 듯 외쳤다.

레이저 포화가 방랑자 호의 실드를 때렸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세리는 이 악물고 버텼다. “조금만 더! 아라!”

“성공! 문이 열립니다!”

육중한 격납고 문이 열리는 틈을 타 세리는 정확히 방랑자 호를 밀어 넣었다. 거대한 징수선 내부는 어두컴컴했고, 수많은 화물 컨테이너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 중에는 키르에서 강제 징수된 광물과 농작물,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갇혀 있을 수송선들이 보였다.

“카인 선장님, 잠입조 투입! 우리는 내부 경비선들을 무력화시킬게요!” 세리가 통신했다.

“알겠다! 너희는 기동성으로 승부해라! 나는 아이들을 찾아내겠다!” 카인의 결의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징수선 내부에서 제국군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며 방랑자 호를 향해 레이저 소총을 발사했다. 하지만 좁은 격납고 내부에서 방랑자 호의 기동성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릭이 조종하는 포탑은 정확하게 제국군을 제압했다.

세리는 방랑자 호를 이용해 징수선 내부의 핵심 제어 장치를 파괴하며 진격했다. 격납고 곳곳에서 폭발음이 터져 나갔다. 아라는 징수선의 내부 통신망과 보안 시스템을 계속해서 교란했다.

“젠장, 제국군 증원 병력이 몰려오고 있어!” 릭이 외쳤다.

사방에서 붉은 제국군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포기할 순 없어!” 세리는 조종간을 비틀며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그녀의 눈에 징수선 중심부로 이어지는 통로가 들어왔다. “릭, 최대 출력으로 저들을 막아! 아라, 저 통로의 방어막을 해제해!”

“알았어!” 릭이 포탑을 난사하며 제국군을 견제했다.

아라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방어막 해제 완료!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요!”

“상관없어!” 세리는 거침없이 방랑자 호를 통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곳은 징수선의 중앙 제어실과 연결된 통로였다. 그녀는 기체를 강제로 제어실 벽에 충돌시켜, 징수선의 모든 시스템을 정지시킬 계획이었다.

굉음과 함께 방랑자 호는 제어실 벽을 뚫고 들어갔다.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제어실 안의 제국군 장교들은 경악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든 시스템 정지! 징수선 오메가, 운용 불가능!” 아라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그때, 통신망이 다시 열렸다. 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리! 아이들을 찾았다! 격납고로 이송 중이다!”

세리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제어실에 남아있던 제국군 장교 한 명이 권총을 뽑아 세리를 향해 발사했다.

“세리!” 릭이 소리쳤다.

날아오는 총탄을 피할 새도 없이 세리는 방랑자 호의 콘솔에 머리를 박았다. 다행히 두꺼운 방탄 유리가 총탄을 막아냈지만, 충격으로 그녀의 머리가 울렸다. 세리는 고통 속에서도 콘솔의 마지막 버튼을 눌렀다. 징수선 오메가의 자체 폭파 장치 활성화 버튼이었다.

“젠장, 자폭장치를 건드렸어!” 장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릭, 아라! 탈출해! 카인 선장님과 합류해!” 세리가 소리쳤다.

“선장님은요?” 릭이 외쳤다.

“나는 괜찮아! 징수선이 폭발하면 제국의 다른 함선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어! 이게 우리의 메시지다!” 세리의 목소리는 강인했다.

방랑자 호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채였다. 세리는 미련 없이 조종간을 놓고, 카인과 아이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징수선의 자폭 시간을 최대한 끌었다. 거대한 징수선 내부에서 작은 방랑자 호는 마치 거대한 심장을 멈추기 위해 몸을 던진 한 조각 부스러기 같았다.

시간이 흘렀다. 격납고가 완전히 비워졌다는 카인의 마지막 통신이 들려왔다.

“세리, 탈출해!” 카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아니요, 선장님. 이대로 충분해요.” 세리의 눈에 키르의 희미한 오렌지색 하늘이 아른거렸다.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징수선 오메가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우주의 어둠 속으로 산산조각 났다. 폭발의 섬광이 키르 행성 상공을 한동안 환하게 비추었다. 마치 잿빛 하늘 아래 억눌려 살던 평민들의 분노와 희망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 것처럼.

***

방랑자 호는 간신히 키르 행성의 대기권으로 재진입했다. 낡은 기체는 여기저기 부서지고 연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임무는 성공이었다. 카인은 탈출시킨 아이들과 함께 방랑자 호를 맞이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렸지만, 눈빛에는 새로운 희망이 어렸다.

“세리… 정말 잘했다.” 카인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세리의 얼굴은 피곤했지만, 눈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그녀는 우주 저편, 성운 제국의 수도 오리온 프라임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제국은 이 작은 반란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평민들을 침묵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선장님.” 세리가 낮게 중얼거렸다. “저들의 시대는 끝났어요.”

잿빛 키르 행성의 하늘 아래, 작은 반란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불씨는 머지않아 성운 제국을 집어삼킬 거대한 불길이 될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