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302호의 비정상적 중력장

이현은 뻑뻑한 눈꺼풀을 비비며 낡은 현관문을 밀고 들어섰다. 열여덟 평짜리 오피스텔, 302호. 번잡한 도시의 톱니바퀴 속에서 겨우 버티고 있는 자신의 작은 우주였다. 삐걱거리는 문이 닫히자, 바깥의 소음은 거짓말처럼 차단되었고, 고요한 침묵이 이현의 귀를 잠식했다.

“하아… 오늘 하루도 무사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키보드 워리어의 숙명인 어깨 통증을 풀기 위해 두어 번 크게 기지개를 켰다. 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놓고, 거실 한쪽에 놓인 작은 책장으로 향했다. 습관처럼 마실 물을 찾는데, 이상했다. 분명 아침에 다 마신 생수병을 분리수거함에 넣고 새 물통을 꺼내 냉장고 문 쪽에 두었을 터인데, 없다. 냉장고 문을 한 번 열어본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바닥에 두었나?

아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물병을 바닥에 두는 버릇은 없었다. 게다가 이현은 냉장고 문을 닫으며 문 안쪽 수납공간을 다시 확인했다. 그 순간, 냉장고 문 안쪽, 항상 비워두던 가장 윗칸에서 차갑게 식은 생수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저기에 뒀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병을 꺼내 들었다. 딱히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퇴근 후 피로가 뇌 활동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피곤해서 헷갈렸을 뿐.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거실로 향했다.

소파에 몸을 푹 파묻고 휴대용 단말기를 꺼냈다. 습관처럼 피드들을 쭉 훑어보다가, 문득 코끝을 스치는 퀴퀴한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분명 어제 환기를 시켰는데, 마치 며칠 동안 묵혀둔 빨래 더미에서 나는 듯한 냄새였다.

“환풍기가 또 고장인가?”

궁시렁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리모컨이,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것처럼 스르륵 움직였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거리.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테이블 한가운데로 미끄러져 갔다.

이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잠시 숨을 멈추고 리모컨을 응시했다. 착각이었을까? 피로가 너무 쌓여서 헛것을 본 건가? 아니, 저건… 분명히 움직였다. 그것도 제 발로 움직인 것처럼.

“뭐야…”

겨우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심장이 발광하듯 뛰어대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서 리모컨에 다가갔다. 손을 뻗어 리모컨을 쥐었다.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 아무것도 없다.

이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도 없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바람 한 점 들어올 틈이 없었다. 묵직한 공기만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피곤해서 미쳤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중얼거렸다. 정신 차리자, 이현. 이건 분명 스트레스 때문이야. 요즘 프로젝트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잖아.

애써 불안감을 떨쳐내려 했지만, 한번 시작된 의심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침실로 향하는데, 문득 거실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계는 3시 3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삐빅.**

갑자기 시계의 숫자가 일렁였다. 마치 화면이 물속에 잠긴 것처럼 일렁이더니, ‘3:37’이라는 숫자가 잠시 흐릿하게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2:15’로 바뀌어 나타났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대로 ‘3:37’을 표시했다.

이현은 눈을 비볐다. 분명히 봤다. ‘2:15’.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선명하게 시각이 바뀌는 것을 목격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졌다.

“젠장…”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 하지만 혼자 사는 오피스텔이다. 보안 시스템도 나름 철저한 편인데. 외부 침입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현은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현수야, 너 혹시 집에 혼자 있을 때 이상한 일 겪어본 적 있어?]
[갑자기 리모컨이 움직인다거나, 시계 시간이 바뀐다거나…?]

답장은 빠르게 도착했다.

[뭔 소리야 이 시간에? 야근하다가 꿈꿨냐? ㅋㅋ]
[아니면 드디어 미친 거냐? 너 요즘 너무 갈려. 휴가 좀 내.]

현수의 평범한 반응에 안도하면서도, 이현은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착각이 아니라면?

그때였다. 주방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숨을 헐떡이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씽크대 앞, 바닥에는 멀쩡하던 유리컵이 깨져 있었다.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뿌려진 유리 파편들. 마치 누군가 높은 곳에서 던진 것처럼.

“이건… 아니야.”

이현은 뒷걸음질 쳤다.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유리컵은 아침에 씻어서 건조대에 올려두었던 것이다. 그 어떤 진동에도 떨어질 리 없는 위치. 게다가, 너무나 깔끔하게 박살이 나 있었다.

공포가 이현의 이성을 잠식하려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이 익숙한 공간이, 마치 자신을 조롱하듯 기괴한 현상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거실에서 다시 한번 기척이 느껴졌다.

‘툭… 툭…’

마치 아주 작은 돌멩이가 천천히 바닥을 구르는 듯한 소리. 이현은 숨을 죽이고 주방 문 너머의 거실을 응시했다.

소파 옆, 협탁 위에 놓여있던 작은 공기 정화 화분의 흙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조그만 흙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치며 튀어 오르고, 화분 가장자리에 쌓여있던 흙이 천천히 바닥으로 쏟아졌다.

이현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침묵 속에서, 흙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귓전을 울렸다. 단순히 흙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중력을 거스르듯, 흙 알갱이들이 몇 센티미터 위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작은 손이 흙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그리고 흙 알갱이들이 모여, 바닥에 아주 느린 속도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분명한 형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들이 또렷해졌고, 이현은 경악스러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흙으로 그려진 것은, 기하학적인 문양이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선들과 원, 그리고 알 수 없는 기호들. 마치 고대 외계 문명에서나 볼 법한, 정교하고 섬뜩한 패턴이었다. 이현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

이건 폴터가이스트가 아니다. 단순한 유령의 장난이 아니야.

그것은… 뭔가 다른 것이었다. 차원을 비틀고, 시간을 교란시키며, 중력을 가지고 노는, 알 수 없는 법칙으로 움직이는 존재. 아니면… 현상.

이현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는 흙으로 그려진 그 기하학적인 문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양의 마지막 선이 완성되는 순간, 거실 전체가 갑자기 섬광처럼 환해졌다.

**찌이이잉-!!**

귀청을 찢는 듯한 고주파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거실 바닥에 그려진 흙 문양이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바닥을 뒤덮은 푸른빛은 마치 액체처럼 일렁이며 천천히 위로 솟아올랐다.

그 빛은 화분 주변의 공기를 왜곡시켰다. 벽에 걸린 시계는 ‘3:37’과 ‘2:15’ 사이를 미친 듯이 오갔고, 소파 위에 놓인 가방은 갑자기 형태가 흐릿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이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푸른빛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인지, 아니면 공포 때문인지,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리고, 푸른빛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거실 한가운데, 흙 문양 위로, 공간이 일그러졌다. 마치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물결치던 공간이, 이내 서서히 투명한 막처럼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찢어진 공간 너머에는, 검은 심연이 펼쳐져 있었다. 그 심연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별들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살아있는 듯한… 무언가의 조각들.

이현은 깨달았다. 이 현상은 단순히 물건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이 공간 자체를 뒤틀고, 다른 차원과 연결하려는 듯한… 어떤 거대한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때, 심연 속에서 가장 크고 밝은 한 점이 이현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현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저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벌어지는 이 기괴한 일들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그리고 저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이현의 숨통을 조여오는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그를 이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