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 정말 미쳤어!”
정서연 경위는 땀으로 축축한 이마를 쓸어 올렸다. 고급스러운 고동색 벽지가 돋보이는 서재 안은 마치 거대한 무덤 같았다. 아니, 무덤은 들어갈 수라도 있지. 이곳은 ‘밀실’이다. 그것도 완벽한.
사건 현장은 명망 높은 시계 수집가이자 은퇴한 재벌, 고동진 회장의 저택이었다. 회장은 자신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서재에서 심장이 멎은 채 발견되었다. 머리 옆에는 묵직한 청동 시계추가 흉기로 추정되는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문제는 서재 문이 육중한 황동 빗장으로 안에서 걸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창문은 모두 굳게 닫혔고, 철창까지 달렸다. 환기구는 성인 팔 하나 들어갈 틈도 없었다. 완벽한 밀실이었다.
“강지훈 씨는 대체 언제 오시는 거야? 이 양반은 맨날 이런 식이야!”
서연은 짜증스럽게 휴대폰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은 한참 지났다. ‘천재 탐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지만, 강지훈은 시간 개념은 우주 저편에 버려둔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독하게 사람 속을 긁어놓는 재주가 있었다.
“어어, 여기 오시네!”
막내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서연은 휙 고개를 돌렸다. 낡고 얇은 트렌치코트 차림의 강지훈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들어서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늘 들고 다니는 너덜너덜한 수첩과 연필이 들려 있었다. 언제나처럼, 세상만사에 흥미를 잃은 듯한 무심한 표정.
“강지훈 씨! 대체 몇 시예요? 지금 장난하세요?” 서연의 목소리는 자동적으로 한 옥타브 높아졌다.
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봤다. “정 경위님은 언제나 그렇게 활기차시군요. 마치 아침 일찍 울어대는 닭 같아요.”
“닭요? 지금 저보고 닭이라고 했어요?” 서연은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 됐다 됐어! 들어와서 현장이나 보세요. 당신이 이걸 풀지 못하면 우리 모두 오늘 밤은 못 자요!”
지훈은 서연의 짜증 섞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에는 찰나만 머물고 곧장 방 전체를 훑었다. 앤티크 시계들, 빼곡한 책장, 고풍스러운 가구들… 그리고 문. 특히 문에 달려 있는 황동 빗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빗장이… 굉장히 오래됐군요.” 지훈은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빗장의 표면을 스치자 묵은 먼지가 묻어났다.
“네, 고 회장님이 워낙 옛것을 좋아하셔서요. 문도 직접 잠그셨을 겁니다. 시신 옆에 빗장 잠금용 열쇠가 놓여 있었어요. 안에서 완벽하게 잠근 거죠.” 서연이 설명했다. “모든 증거가 회장님이 스스로 문을 잠그고 혼자 있다가 변을 당한 걸 가리키는데… 도대체 누가, 어떻게 들어와서 회장님을 살해하고 나간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지훈은 시신 근처에 가지도 않고, 빗장이 걸린 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그 빗장에 우주의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양.
“들어와서 살해하고 나갔다… 과연 그럴까요?”
“그럼 회장님이 혼자 자살이라도 했다는 말씀이세요? 머리를 시계추로 내려쳐서? 말도 안 되잖아요!” 서연이 울컥했다.
지훈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빗장과 문틈 사이를 오갔다. 다른 형사들이 혀를 내두르며 현장을 보전하는 동안, 지훈은 문고리, 문틀, 빗장 주변을 손으로 훑고 확대경으로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강지훈 씨,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문에서 꿀이라도 나와요?” 서연이 답답함에 한숨을 쉬었다.
“이 문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군요.” 지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에 번뜩이는 예리함이 스쳤다.
서연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저 문은 100년도 넘게 저택을 지켜온 문이고,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 아주 작은 틈도 없다고요.”
지훈은 덤덤하게 말했다. “정 경위님, 모든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범인이 의도적으로 숨긴 흔적이라면 더욱 그렇죠.”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문틈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핀을 꺼내 문 아래쪽의 아주 미세한 틈새에 넣어보았다. 핀은 겨우 들어가는 듯했다.
“범인은 이 문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훈이 말했다. “아니, 어쩌면 이 집의 구조를 아주 잘 아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르죠. 빗장을 보세요.”
서연이 지훈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육중한 황동 빗장은 견고하게 문틀에 박혀 있었다.
“저 빗장 끝부분을 잘 보세요. 아주 미세하지만… 둥글게 마모된 흔적이 보이지 않나요?” 지훈이 말했다.
서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정말 아주 미세하게, 빗장의 끝부분이 다른 곳보다 덜 각지고 둥근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무언가에 계속 스치거나 마찰된 것처럼.
“그게 뭔데요? 오래된 빗장이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서연이 반문했다.
“오래된 것과 사용 방식은 다릅니다.” 지훈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이 빗장은 안에서 걸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이 빗장을… 바깥에서 조작했습니다.”
“바깥에서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서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빗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얇은 실 하나도 제대로 안 들어가는 틈인데요.”
“그 미세한 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빗장을 조작할 수 있을 만큼 가늘지만 강한 것. 예를 들면… 아주 얇은 피아노 줄 같은 것이죠.”
지훈은 설명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미리 문틈으로 아주 가느다란 낚싯줄 같은 것을 넣었다. 빗장이 둥글게 마모된 것은 그 줄을 빗장에 걸어 조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피아노 줄…?” 서연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네. 회장님은 늘 같은 시간에 서재에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고, 그때 빗장을 걸었습니다. 범인은 그 습관을 이용한 거죠. 회장님이 빗장을 걸기 전, 이미 낚싯줄을 문틈으로 밀어 넣어 빗장 끝에 걸어두었을 겁니다. 그리고 회장님이 서재로 들어가 문을 닫고 빗장을 거는 순간, 범인은 문 밖에서 그 줄을 당겨 빗장을 다시 열어버린 거죠.”
서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회장님은 빗장이 잠긴 줄로 착각하고 있었던 거고요?”
“정확합니다. 문은 잠긴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범인은 그 틈을 이용해 서재로 들어와 범행을 저지르고, 다시 문을 열고 나간 뒤, 문을 닫고 남겨둔 낚싯줄을 이용해 빗장을 다시 잠근 겁니다. 그리고는 낚싯줄만 쏙 빼냈겠죠. 빗장 주변의 미세한 흠집은 그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고요.”
지훈은 마치 눈앞에서 범행이 재연되는 것처럼 생생하게 설명했다. 서연의 머릿속에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도 안 돼요! 그렇게 복잡한 트릭을… 누가 그런 짓을 해요?” 서연이 고개를 저었다.
“트릭이 복잡한 것이 아니라, 경위님이 익숙지 않은 것뿐입니다.” 지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고 회장님의 유산 상속인 명단을 확인해 봤습니까? 그중 정교한 공예나 조립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수사팀은 지훈의 말에 따라 고 회장의 상속인들을 다시 조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회장의 조카인 김민준이 어린 시절부터 정교한 모형 제작과 복원 기술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얇고 강한 와이어를 이용한 작업에 능숙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현재 사업 실패로 큰 빚을 지고 있었다.
“정말… 당신은 천재가 맞군요.” 서연은 김민준을 체포하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밀실 살인의 완벽한 트릭이 이렇게 허무하게 풀릴 줄이야.
***
모든 것이 일단락된 다음 날 저녁, 서연은 지훈을 한강 변 포장마차로 불러냈다. 싸늘한 가을바람에 어묵 국물이 김을 모락모락 피웠다.
“고마워요, 강지훈 씨. 덕분에 복잡한 사건 하나 깔끔하게 해결했어요.” 서연이 소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지훈은 어묵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더니 “저의 능력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히려 정 경위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하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에이, 이럴 땐 좀 더 인간적으로 말할 수도 있잖아요? ‘덕분에 고생 좀 덜했지?’ 라든가, ‘정 경위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같은 거요!” 서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훈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알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죠. 정 경위님 덕분에 제가 어제 집에 일찍 들어가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어묵 국물도 맛있군요.”
“푸흡!” 서연은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래요, 당신은 그게 최선이죠.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지훈은 무심하게 어묵 꼬치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 경위님.”
“네?”
“정 경위님은 닭이라고 하면 기분 나빠하지만, 혹시 제가 닭이라고 부르면 괜찮을까요? 아침마다 저를 깨워주는 닭… 같은 느낌으로요.”
서연은 마시던 소주를 뿜을 뻔했다. “지금 그걸 작업이라고 거는 거예요? 당신,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알기나 해요?”
지훈은 천연덕스럽게 콧잔등에 걸린 안경을 고쳐 썼다. “아,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의 뇌가 ‘정 경위님’이라는 단어를 ‘활기찬 사람’과 연관 지어 생각하다 보니, 비유법을 사용한 것뿐입니다.”
“변명은 늘 그렇게 비겁하더라!” 서연은 으르렁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천재적인 바보 같은 탐정은 그녀의 속을 뒤집어 놓으면서도, 언제나 그녀의 심장을 빗장 풀린 듯 허물어뜨리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다음에 또 밀실 사건이 터지면 그땐 또 나를 닭처럼 찾아댈 거면서!” 서연이 중얼거렸다.
지훈은 어묵 꼬치를 다 먹고는 슬쩍 웃었다. “그때는 닭이 아니라… 아름다운 새벽을 알리는 종달새라고 불러드리죠. 정 경위님.”
서연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천재 탐정의 뜬금없는 플러팅에, 한강의 밤바람도 순간 로맨틱한 향기로 물드는 듯했다. 어쩌면 이 빗장 풀린 심장을, 지훈만이 완벽하게 다시 잠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연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사건은 또 어떤 밀실이 될까. 그리고 그 밀실 속에서, 이 복잡한 남자와 그녀의 관계는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서연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