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404호의 침입자

지훈은 낡은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주말 오후, 햇살은 창을 넘어 거실 한 귀퉁이에 겨우 닿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방 안은 늘 어둑하고 축축한 기운이 감돌았다. 고시원을 탈출해 겨우 얻은 작은 아파트였다. 누군가에게는 초라할지 몰라도, 지훈에게는 생애 처음으로 온전히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이었다. 하지만 이따금 이 집이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다.

“흐음…”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와 며칠째 치우지 않은 맥주 캔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리모컨을 집어 들려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테이블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플라스틱 컵이 스르륵, 아주 미세하게 미끄러지며 중심을 잃었다. 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컵을 응시했다. 착각인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컵은 이내 중심을 잡고 멈춰 섰다.

“뭐야, 술이 덜 깼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소파 등받이에 기댔다. 벽에 걸린 낡은 시계의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똑, 똑, 똑. 마치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처럼 고막을 두드렸다.

밤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지훈은 느지막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러 주방으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틀자, 처음에는 미지근한 물이 나오더니 갑자기 쇳소리를 내며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깜짝 놀라 손을 떼자마자 다시 차가운 물로 바뀌었다.

“젠장, 또 이러네.”

이 아파트의 수도관은 늘 말썽이었다. 뜨거운 물이 나왔다 차가운 물이 나왔다 제멋대로였다. 지훈은 한숨을 쉬며 차가운 물에 대충 그릇을 헹궜다. 그때였다. 거실의 형광등이 깜빡이더니 잠시 어둠 속에 잠겼다가 이내 다시 밝게 켜졌다.

“이 빌어먹을 낡은 아파트!”

지훈은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하루빨리 돈을 모아 제대로 된 아파트로 이사 가리라 다짐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웹툰을 보던 중이었다. 방문이 삐걱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고개를 들었다.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어라?”

분명히 닫고 들어온 기억인데. 바람 때문인가?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지훈은 다시 웹툰에 집중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지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새벽 두 시.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집어 들었다. 평소 같으면 금세 잠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책장을 넘기는데,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책장이 흔들렸다. 그 충격으로 책 몇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진인가?”

지훈은 벌떡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다. 하지만 거리의 불빛은 고요했고,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 404호 안에서만 느껴지는 진동이었다. 그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혜진아. 야, 우리 집 좀 이상하다. 누가 이사 온 것 같아.]

혜진은 지훈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유일한 절친이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혜진에게서 답장이 왔다.

[미쳤냐? 귀신이라도 붙었냐? 이사 턱도 안 냈으면서.]

혜진의 시큰둥한 반응에 지훈은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 순간, 주방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숨을 헙 들이켰다. 소리가 너무 명확했다. 냉장고 문이 저절로 열렸다 닫힌 소리였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건 바람이나 노후 문제가 아니야.”

심장이 쿵쾅거렸다. 거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주방을 흘깃거렸지만, 냉장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저 자신의 상상이었기를 바랐다.

그때, 현관문 잠금장치에서 ‘딸깍’ 하는 쇠붙이 소리가 났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분명히 누군가 문고리를 흔들고 있는 소리였다. ‘누구지? 이 시간에?’

그는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다가갔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딸깍!’ 하고 문이 안에서 잠겼다. 락커가 움직이는 소리가 선명했다.

“이게 뭐야!”

지훈은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섰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고 당겨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 잠근 것이 아니라, 안에서 잠긴 것이 분명했다.

“누구야! 누가 장난하는 거야?!”

그는 소리쳤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작은 유리 화병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지훈은 눈을 비볐다. 헛것이 아니었다. 유리 화병은 그의 머리 위에서 한 바퀴 돌더니, 거실 벽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주변의 모든 가구들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낡은 소파의 스프링도, 오래된 책장의 나무도, 심지어 천장의 형광등마저도 미세한 진동을 일으켰다. 마치 이 아파트 자체가 살아있는 거대한 생물처럼.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다시 쥐었다. 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이상하게 변조되어 들렸다. 기계음 같기도 하고, 비명 같기도 한 기괴한 소리였다.

“여보세요? 혜진아? 야, 우리 집 미쳤어! 나 갇혔어!”

수화기 너머에서 혜진의 목소리 대신,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아파트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쿵, 쿵’ 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바닥에서부터 벽, 천장까지, 모든 것이 살아있는 듯 요동쳤다. 창문 밖은 여전히 평화로운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였지만, 404호 안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

지훈의 눈앞에, 어두운 복도 끝에서 희미한 푸른 빛이 깜빡였다. 마치 ‘이리로 오라’는 듯이, 마치 그 빛이 모든 기괴함의 근원이라는 듯이. 그의 심장은 이제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이 아파트라는 기괴한 던전에 갇혔다는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