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무너진 콘크리트 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발아래 부스러지는 파편들이 밟을 때마다 섬뜩한 소리를 냈다.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멸망의 날 이후, 단 한 번도 푸른 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습관처럼 등 뒤의 배낭을 고쳐 메는 손길에서 낡은 가죽의 삐걱거림이 느껴졌다. 며칠 전 겨우 찾아낸 비스킷 부스러기조차 바닥을 드러냈다. 오늘은 반드시, 기필코 ‘환영 상가’ 구역에서 뭔가 건져야 했다.

환영 상가는 재앙이 닥치기 전, 이 도시의 가장 번화했던 구역 중 하나였다. 지금은 그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빌딩들과 거대한 잔해들이 뒤섞인 거대한 무덤일 뿐이었지만, 가끔 운이 좋으면 다른 생존자들이 손대지 못한 구역에서 아직 쓸 만한 보급품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젠장, 벌써 해가 지겠네.”

낮은 탄식이 메마른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건물 외벽에 박힌 깨진 시계는 멈춘 지 오래였지만, 몸으로 익힌 시간 감각은 정확했다. 어둠이 내리면 움직임은 제한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어 나오는 존재들의 위협은 배가 된다.

나는 허물어진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 쓰러진 버스 옆으로 몸을 숨겼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웅성거림. 동물이 아니다. 사람이다. 무장한 생존자 집단, 아니면 약탈자들일 수도 있었다. 섣불리 나서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배를 짓누르는 허기조차 잊고 숨을 죽였다. 녹슨 철근이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이 유리창을 스치는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만이 내 심장 박동처럼 격렬하게 울렸다.

다행히 그들은 이쪽으로 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목적지는 환영 상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찬란한 약방’이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였다. 재앙이 닥치기 전, 그곳은 신기하게도 대규모 상가 안에 홀로 자리 잡은 구멍가게 같은 약국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만큼 다른 생존자들의 눈에 덜 띄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무너진 갤러리 건물의 잔해를 딛고 올라섰다. 굽이진 철근과 깨진 대리석 사이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한때 화려했을 바닥은 곰팡이와 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후각을 자극하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알 수 없는 이물질의 비린내가 뒤섞여 역겨움을 유발했다.

어느새 찬란한 약방의 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간판은 반쯤 떨어져 나간 채, 철골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찬란한’이라는 글자가 조롱하듯 빛바랜 채로 남아 있었다. 가게 문은 이미 부서져 있었다. 잿빛 먼지가 가득한 실내는 어두컴컴했고, 오래된 약품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제발, 뭔가라도.”

나는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찢어진 진열대를 훑었다. 대부분의 약품은 습기에 젖거나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쓸모없게 변해 있었다. 실망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 구석에 놓인 쓰러진 캐비닛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보다 덜 훼손된 듯한 모습이었다.

조심스럽게 캐비닛을 일으켜 세웠다. 녹슨 경첩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안에는 낡은 상자들이 몇 개 쌓여 있었다. 기대 반, 불안감 반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눈을 빛냈다.

유통기한이 간신히 한 달 정도 남은, 밀봉된 영양제 앰플 열댓 개가 나타난 것이다. 멸망 이후 생산된 조악한 영양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순도 높은 물건들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며칠은 든든하게 버틸 수 있을 터였다. 심지어 작은 비상 구급상자도 하나 있었다. 소독액, 붕대, 그리고… 항생제. 희귀한 물건이었다.

“됐다…!”

기쁨에 찬 숨을 내쉬었다. 배낭에 조심스럽게 영양제 앰플과 구급상자를 챙겨 넣었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슥-차악.

마치 젖은 나뭇잎이 바닥을 쓸고 지나가는 듯한 소리. 심장이 쿵 떨어졌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약방 문턱에, 검고 축축한 형체가 서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도마뱀과 인간의 형상을 불쾌하게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피부는 물기 어린 비늘로 덮여 있었고, 뼈가 드러난 듯한 날카로운 발톱은 바닥을 긁어대고 있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 기형적인 얼굴에 박힌 네 개의 눈동자였다. 붉고 섬뜩한 그것들이 나를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녀석은 이 구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변이체 중 하나인 ‘그림자 파충류’였다. 주로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며 사냥감을 덮치는 놈들이다. 방금 전 녀석이 냈던 소리는 녀석의 비늘 덮인 꼬리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였을 것이다. 내가 캐비닛을 여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좁은 공간에서 그림자 파충류와 맞붙는 건 미친 짓이었다. 녀석의 속도는 사람을 압도했고, 독을 품은 발톱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었다.

그림자 파충류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한 발짝씩 다가왔다. 녀석의 숨결에서 비린내가 진동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낡은 철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별다른 무기는 없었다. 고작 이거 하나뿐.

“크르르르….”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녀석의 네 개의 눈동자가 내 움직임을 읽는 듯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벽에 바짝 붙어 캐비닛 뒤로 몸을 숨겼다. 좁은 공간은 오히려 녀석의 기동성을 제약할 수도 있었다.

“왔으면, 돌아가야지.”

속으로 되뇌었다. 살아야 했다. 나는 캐비닛 뒤에서 주위를 살폈다. 유일한 탈출구는 부서진 문이었다. 그림자 파충류는 이미 문을 막아선 채, 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녀석이 캐비닛으로 돌진했다. 거대한 몸집이 부딪히자 낡은 나무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캐비닛 잔해를 박차고 녀석의 옆구리로 돌진했다. 온 힘을 다해 철 파이프를 녀석의 단단한 비늘에 내리쳤다.

캉!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비늘이 움푹 들어갔다. 고통스러웠는지 녀석의 울음소리가 더 격렬해졌다. 나에게 시선이 고정되자마자, 녀석은 빠르게 꼬리를 휘둘렀다.

휘익-!

강렬한 바람 소리가 귀를 때렸다. 피했다. 꼬리가 벽에 부딪히며 벽돌 파편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 틈에 나는 약방을 가로질러 문으로 내달렸다. 녀석의 움직임이 꼬리를 휘두르느라 잠시 멈춘 찰나였다.

“젠장!”

뒤에서 녀석이 다시 내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이 닿는 대로 부서진 문턱을 넘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복잡한 상가 거리, 잔해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하늘. 이곳은 녀석이 나를 추격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었다.

나는 무작정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은 터질 듯이 격렬하게 뛰었다. 뒤에서는 녀석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그림자 파충류는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청각도 뛰어났다.

그때,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과거의 잔해. 낡고 불안정하게 깜빡이는 네온사인 간판이었다. ‘네오 게임존’. 재앙 이전, 이 거리의 한때를 상징했던 오락실 간판이었다.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오락실 안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부서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대형 아케이드 기기들이 있었다.

“할 수 있어…!”

나는 방향을 틀어 네오 게임존으로 몸을 던졌다. 녀석이 미처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었는지, 잠시 주춤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철컥!

오락실의 찢어진 천막을 걷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 텅 빈 실내는 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지만, 과거의 화려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낡은 오락기들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나는 곧장 오락실의 가장 안쪽, 거대한 격투 게임 기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뒤에서 녀석이 따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이 막힌 공간. 이제는 정면 대결이었다. 나는 가장 덩치가 큰 격투 게임 기기의 뒤로 몸을 숨겼다. 먼지 쌓인 컨트롤러가 손에 닿았다.

“크르르르….”

녀석이 내 앞을 막아선 게임기들을 넘어뜨리며 다가왔다. 굉음과 함께 낡은 플라스틱과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림자 파충류가 게임기들을 쓰러뜨리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이제다.

녀석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숨어있던 게임기 뒤에서 튀어나오며 재빨리 손을 뻗어 낡은 컨트롤러 박스 위에 튀어나와 있던 전선 뭉치를 잡아챘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녀석의 벌어진 입 속으로 전선 뭉치를 밀어 넣었다. 동시에 철 파이프로 녀석의 머리를 강타했다.

쿠웅!

고압 전선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녀석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스파크가 튀었고, 녀석의 비늘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선은 원래 연결되어 있던 게임기의 전원에 불안정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누전 상태였을 것이다.

“크아아악!”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을 밀치고 그대로 바깥으로 내달렸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림자 파충류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뒤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주저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팍이 격렬하게 오르내렸다. 팔에는 녀석의 발톱에 스친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독은 없는 녀석이었지만, 당장은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야 했다.

배낭을 끌어안았다. 영양제 앰플과 항생제. 오늘은 살았다. 하지만 이 도시는 매일 더 위험해지고 있었다. 녀석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후퇴하게 만들었을 뿐. 다음에 만난다면, 더 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둠이 깔린 도시의 불 꺼진 창문들을 올려다봤다. 불 꺼진 심장처럼 고요한 도시. 하지만 그 안에서, 매일 새로운 위협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싸움은, 오늘 밤도 끝나지 않았다. 내일은 또 어떤 끔찍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또다시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게 전부였다.